‘개미’는 모여봤자 ‘개미’일 뿐이라고?...대세의 힘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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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시절 이야기다. 교내 한 특강에서 강연자가 오는 길에 무언가를 사왔다며, 청중 앞에 종이 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가방 속 물건의 가격을 가장 근접하게 맞히는 사람에게 가방 안에 든 것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100달러” “500달러” 목소리가 나오더니, 급기야 한 학생은 본인도 내용물이 뭔지 모르면서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강연자가 이것을 목적으로 500달러 이상 썼을 리 없을 것이고, 그래서 가격은 500달러 아래일 것”이라고 말이다. 경매장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 속 학생들의 ‘입찰’ 가격은 200달러 언저리로 수렴해갔고 어느덧 우승자가 나왔다. 가방 속에는 애플사의 아이팟(MP3 플레이어)이 들어있었고 199달러짜리였다. 이처럼 개인들이 힘을 합치면 무서운 결과가 나올 수 있다.
2020년 전후 미국 주식시장을 말할 때 빼놓기 힘든 집단이 있다. 2013년 미국에 생긴 주식 거래 앱 로빈후드를 이용하는 이른바 ‘로빈후드 개미’라 불리는 미국 개인 투자자들이다. 로빈후드는 0% 거래 수수료로 출시 7년 만에 1300만명이 넘는 고객을 모집했다. 고객들 평균 주식 보유 잔액은 2000달러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뭉치면 강했다. 예를 들어 2021년 미국 유명 헤지펀드 멜빈 캐피털은 게임스톱 주식을 두고 로빈후드 개미들과 전쟁을 치렀는데 결국 5조원 이상의 손실을 입고 파산했다.
이 로빈후드 개미 집단이 2020년 3월 코로나 폭락장 당시 어떤 투자 행태를 보였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는 시사점이 크다. 캘리포니아대(UCLA) 재무금융학 석학 이보 웰치 교수가 연구해 권위 있는 학술지인 ‘저널 오브 파이낸스’에 2022년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로빈후드 투자자들은 팬데믹 폭락장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주식 보유를 늘렸다. 계속해서 주식계좌에 현금을 추가하며 주식을 더 사들였는데, 결론적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세력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투자는 빛을 봤다. 주식시장은 두 달 만에 많이 회복했고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다.
또한 로빈후드 개미의 대표성 있는 ‘집단 포트폴리오(많은 수의 로빈후드 투자자들이 보유할수록 높은 비중이 주어지는 가상의 포트폴리오)’ 수익률의 경우, 시장 대비 초과수익률을 달성(2018년부터 2년 동안의 수익률 기준)할 정도로 우수했다고 한다. 물론 투자자별 포트폴리오는 집단 포트폴리오와 상이하겠지만 종합적으로 따져 다른 전문 투자자들에게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집단의 힘은 강하다. 그들의 생각이 곧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대세라고도 할 수 있다. 찰스 다윈의 자연 선택설에 따르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종(種)은 도태된다. 늘 변하는 환경 속에서 개인의 유일한 의무는 대세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깨어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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