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부 협상가' 박형욱 등판에 전공의 반색…의정 대화 키맨 될까
전국 14만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를 약 2개월간 이끌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대정부 협상가'로 정평이 난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가 등장하면서 그가 의정 대화의 물꼬를 틀 '키맨'(중심인물)이 될지 주목된다. 특히 임현택 전 의협회장과의 '겸상'을 거부해온 전공의들은 박형욱 교수에 대해선 열성적인 지지에 나섰는데, 의정 대화의 걸림돌이던 '의협에 대한 전공의의 불신'이 해소될지도 관심이 쏠린다.
14일 의협에 따르면 전날 밤 투표권이 있는 대의원 244명을 대상으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투표를 실시한 결과,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는 대의원 233명 중 123명에게서 표(득표율 52.79%)를 받고 당선됐다. 박형욱 위원장은 이번 위원장직에 출마한 후보 4명 중 유일한 의대 교수 출신으로 현재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증원책에 대해 현직 의대 교수로서 의대생의 입장을 대변할 것으로 보인다.
1968년생인 박 비대위원장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예방의학과 전문의이지만 변호사이기도 하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를 계기로 법 공부를 시작했고, 사법고시를 거쳐 사법연수원(37기)을 수료한 후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2009년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연명치료 중단 판결이 내려진 '김 할머니 사건'의 항소심과 상고심 소송에서 대학병원 측을 대리했다. 김 할머니 사건은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이 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는 가족의 요구를 대법원이 받아들인 사건이다.
변호사로서의 활동 경험은 전공의들의 권리를 보호·주장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는 "전공의들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은 인권유린"이라며 "정확하게 사실인정을 하고 사과하거나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이런 게 있어야 전공의들 마음이 풀릴 것 같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활동했다. 의협과 보건복지부 참여한 의료현안협의체에 협상단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의사집단을 대표해 정부와의 대화에 나선 유경험자다. 그는 현재 의협 최고 의결기구인 대의원회 부의장과 국내 의료 관련 각종 학회를 이끄는 대한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전공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전공의 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의협 중앙대의원에게 "의협 비대의원장으로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를 추천한다"며 "각 병원 전공의 대표 72명이 해당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또 "정치 욕심 없이 여러 면에서 중도를 지키고 계신다고 판단하고 있고, 신뢰를 바탕으로 젊은 의사들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입장을 냈다.
의협 한 대의원은 "다양한 집단의 의사결정 구조를 잘 알고 있는 그가 대정부 협상력을 가질 것이라는 평이 많다"며 "다만 전공의들이 강경노선으로 대응하는 만큼 (노선이) 더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박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에서 "현재의 의료농단 사태는 급격히 해결하기가 어렵다"며 "정부 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어 "정부가 의료폭탄이라는 시한폭탄을 장치했다.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시한폭탄부터 멈춰야 한다"며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또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에 돌아오려면 윤석열 대통령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비대위원장은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박 비대위원장은 "당장 협의체 참여는 어렵다고 본다"며 "의료현안협의체 2기로 직접 정부와 만나 회의에 참여해봤는데, 거기에서는 의대 증원 규모 논의가 전혀 없었다. 정부가 사실과 다르게 의료계가 '불통이다' 이런 이미지를 낙인찍게 했다"고 토로했다.
선배 의사들(의협, 의대 교수)과 전공의·의대생 등 후배·예비 의사들과의 관계 개선에는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그의 당선 직후 SNS에 "당선 축하드립니다. 이제 시작입니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박형욱 비대위원장도 전공의·의대생의 견해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당선 소감에서 "비대위 운영에서 그동안 소외된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비대위를 15인 이내로 꾸리되 전공의와 의대생을 각각 2~3명씩 배정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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