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대학에 못 갈 수도 있다, 인생엔 그런 결핍도 필요하다
무엇부터 적어야 할까요. 소위 영재고, 과학고, 특목고, 자사고 아이들 이야기 말고 보통의 아이들, 일반고 아이들에 대한 글도 필요하지 않겠냐고 독서모임 멤버와 함께 글을 쓰자고 말해놓고선 선뜻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쓰다 만 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쓰다 만 글들을 뒤로하고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쓰다 보니 오늘 14일이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네요. 이제 저는 빼박 예비 고3 엄마가 되었고요. 무슨 이야길 써야 하나 싶을 때, 결핍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어요. 큰아이가 세네 살쯤 되었을 무렵일까요. 친한 동생과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결핍이 크게 없잖아. 뭐든지 풍족하고 아쉬운 게 없고... 그렇게 키우는 게 괜찮을까? 뭔가 그런 부족함, 결핍 같은 게 있어야 간절한 마음도 생기고, 힘들 일을 노력하면서 배우는 게 있을 텐데 말이야."
"맞아. 그렇다고 없는 결핍을 일부러 만들어줄 수도 없잖아."
아마도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봤을 거라 생각해요. 정서적, 경제적 결핍은 부모가 노력하면 조금은 채워줄 수 있는 것이라 보는데요. 어느날은 성적으로 인한 결핍은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성적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부모들을 오랜 시간 동안 많이 봤습니다. 부모가 느끼는 결핍이든, 아이가 느끼는 결핍이든 간에요.
고백하건대 저는 사교육에 한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놨던 것 같습니다. 만약 내가 그 선을 넘는다면 그건 내 의지가 아니라 아이가 원할 때다, 하면서요. 남들 눈에는 참 한가한, 좋게 말해 낭만적인 엄마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중학교 2학년 아니 중학교 3학년 1학기가 될 때까지 학원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로 공교육이 무너졌을 때, 학교는 안 가도 학원은 간다는 분위기에서도 아이는 끝내 학원에 발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밀어 넣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선택을 했던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아이가 원치 않아서.
아이 말이라면 다 들어주는 엄마라서가 아니에요. 교육적으로 강한 신념을 가진 엄마라서도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사교육에서 만큼은 그렇게 되었어요. 학원을 가지 않겠다는 아이의 고집을 꺾기 어려웠다고 쓰지만 본질적으로는 아이와의 갈등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에게 학원에 가자고 꼬시고 싶지 않았어요. 학원에 가는 것을 이유로 보상을 해주고 싶지도 않았고요. 공부를 하는 건 아이 몫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학원을 보내지 않는다고 불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중학교 때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만했습니다.
그런 아이에게도 공부에 대한 결핍을 스스로 느끼던 순간이 오긴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를 마치고, 그다음은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는 마치고. 처음엔 영어, 두 번째는 수학, 세 번째도 수학이었어요.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저는 응당 부름에 응했습니다. 아이가 원했으니까요.
직장맘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사교육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동네 네트워크가 없었어요. 믿는 구석은 어린이집을 함께 다녔던 두어 명의 엄마들이 전부였어요.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이었을까요? 다행히 도움을 요청하면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덕에 필요할 때 맞춤형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지요.
그렇다고 결핍이 해소되었을까. 그건 아니었습니다. 이 결핍은 단기간에 채워질 수 없는 것이었어요. 대입을 중1 때부터 준비한 아이(혹은 초등학교 때부터)와 선행 없이 고등학교에 와서 그때부터 준비하는 아이가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거니까요. 누군가 묻더라고요. 큰아이 친구 중에 공부를 꽤 잘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엄마와 어떻게 계속 친하게 지낼 수 있냐고요. 저는 아주 명쾌하게 답했습니다.
"출발이 달랐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출발이 같았다면 비교가 되어서 불편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우리 둘은 출발도, 그 과정도 너무 달랐기 때문에 그렇게 불편하진 않아. 그 친구는 5살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대형 학원가를 돌던 이 동네에서 나름 로열 코스를 밟았는데, 그런 아이와 알아서 하길 지켜봐 주었던 내 아이가 성적이 비슷하기를 바라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내 아이가 무슨 영재도 아니고.
지금 성적이 크게 차이가 난다고 내 아이에게 실망할 수도, 그 친구 아이가 부럽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처음부터 길이 달랐으니까. 열심히 공부해 주는 친구 아이는 대견하고, 따라가기 어려울 텐데 포기하지 않고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이정도라도 해주는 내 아이도 기특해. 솔직히 조금 더 열심히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긴 하는데 바란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더라고."
말은 이렇게 해도 자책한 순간도 있었어요. 꿈을 이루는 길이 하나는 아니라고,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그런 길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모든 아이들이 대입이라는 길로 모여들 무렵은 저도 좀 혼란스럽더라고요. 어릴 적부터 내가 좀 더 학습적인 면에서 케어를 잘했으면, 직장 때문에 할머니 댁에 아이를 맡기지 않았으면, 운전을 해서 학원가 라이드를 열심히 했으면, 학원을 다니라고 좀 더 강하게 설득을 했으면, 다른 엄마들처럼 내 일을 포기하고 아이를 위해 희생을 했다면... 지금 이 상황이 달라졌을까 자책하게 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이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거였어요. 어쨌든 내 아이는 억지로 시킨다고 할 아이도, 꼬신다고 넘어올 아이도 아니니까요. 저 스스로 생각한 대로 나아가는 아이니까요. 그렇게 살라고, 그래도 된다고 제가 그렇게 이제껏 키웠으니까요. 솔직히 대입 앞에서 흔들리고 조급하고 답답한 건 아이보다 저였습니다.
다시 결핍으로 돌아와 봅니다. 결핍이 없는 아이들을 고민하던 시절로요. 그렇다면 지금은 오히려 배울 수 있는 게 천지인 것 같아요. 사방이 결핍투성이니까요. 우선 아이는 용돈도 충분하지 않고요. 성적도 그래요. 친구 관계도 그렇지요. 엄마 아빠에게 받는 사랑도 어린 시절과는 조금 다른 걸 느끼겠죠. 성적이 잘 나오면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세상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있을까 싶을 만큼 냉담한 모습에 외로울 것도 같아요. 생각보다 표정 관리가 쉽지 않긴 합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결핍을 겪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확률이 높아요. 원하는 공부는 할 수 있을까요? 원하는 대학에 가더라도 원하는 공부는 할 수 없을 수도 있지요. 취업 문턱은 높을 거예요. 원하는 회사에 가지 못할 수도 있지요. 원하는 회사에 가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을 거예요. 만족하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을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피해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공부, 원하는 회사에서 좋아서 하는 일을 하는 운 좋은 아이도 있을 겁니다. 아주 드물게요.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 결핍투성이 일들은 실제 제가 겪어온 일들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저는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많은 결핍의 시간을 겪으며 맞서는 법, 견디고 견디는 법, 꺾이더라도 계속하는 유연함, 때로는 포기하는 법, 도망치는 법, 그렇더라도 되돌아오는 법 등을 배웠어요. 결핍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어떤 자극이 된 순간은 분명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당시 저에게 가장 큰 결핍이자 가장 채우고 싶은 결핍은 '안전하고 편안한 가정'이었어요. 가정 밖에서 여러 이유로 상처 입은 마음을 온전히 치유할 수 있는 따뜻한 가정이요. 제가 가장 열망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가정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어쩌면 저의 이런 생각 때문에 아이들과의 갈등(그게 무엇이든)을 굳이 만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쓰면서 생각하게 되네요.
제 아이는 학교에서도 "집 가고 싶다"라고, 집에 있어도 "집 가고 싶다"라고 외치니까요. 세상에서 제 방이 가장 아늑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아이에게 "집 가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괜실히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대단히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잘 살아왔구나 싶었어요. 살면서 받은 그 어떤 인정보다 제게는 가장 행복감을 준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 나이였을 때 집은, 오래 있기 싫은 곳, 가능하면 늦게 들어오고 싶은 곳, 빨리 나가고 싶은 곳이었으니까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최고가 되지 못해도 꺾이지 않고, 계속 차선에 차선을 거듭하면서도 크게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고, 편안하지 않은 가정 때문이었어요.
그 결핍이 저를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했습니다. 뭐라도 해야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지만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는 걸 일찍부터 깨달았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결핍투성이인 아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처럼 견디는 법, 이겨내는 법을 하나씩 배워나갈 테니까요. 부디 이 '안전한 가정'에서 천천히 그리고 단단히 자신의 결핍을 채워나갈 수 있길 바라요.
헌데 그 기다리는 과정이 쉽지는 않더라고요. 저랑 아이는 다른 존재라서 그렇습니다. 급한 성격에 감정의 기복이 큰 저는 지켜만 보기 답답하고 기다리기 조급해서 다그칠 때가 있어요. 반면 느긋한 성격에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아이는 긴장이 될 뿐 불안하지는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느리지만 묵묵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요. 다른 만큼 쉽게 이해되지 않고 공감해주기도 어려운 'T라 미숙한 엄마'라서, 아마도 이 마음은 제가 많이 다독여야 할 것 같아요. 이래서 많은 엄마들이 '내려놓았다'라고 말하나봐요.
틈만 나면 아이 걱정을 하는 저에게 괜찮다고, 우리 애들 문제없을 거라고 말해주는 남편이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 견딜 일들을 육아동지 남편이 있어서 고비를 그때마다 잘 넘겨 왔어요. 지금 고2 학생들이 치르게 될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은 2025년 11월 13일입니다. 이날은 저희 부부의 20주년 결혼기념일이기도 한데요. 시험 결과에 상관없이 미리 행복을 예약해 두고 싶네요. 온 우주가 나서 학생들을 응원하게 되는 날, 오늘 저녁 고3 학생들의 가정도 그랬으면 하고 바랍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편집기자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일과 사는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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