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은 없다”는 트럼프 2기 이스라엘 대사···‘서안 합병’ 신호탄?

선명수 기자 2024. 11. 14. 15: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새 이스라엘 대사 지명자, ‘팔 주권’ 부정
이스라엘, 서안 합병 ‘영토 야욕’ 노골화
서안지구, 트럼프 2기서 새 ‘화약고’ 되나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정부의 새 이스라엘 대사로 지명된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2018년 8월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 현장을 찾아 발언하고 있다. 허커비 전 주지사는 팔레스타인 민족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강경한 친이스라엘 인사로 꼽힌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새 정부의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로 팔레스타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온 인물을 지명하며 트럼프 2기 정부의 중동 정책이 더 확고한 ‘친이스라엘’에 방점을 찍었음을 시사했다. 그간 이스라엘이 영토 확장 야욕을 드러냈던 요르단강 서안지구 일부 합병이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CNN 등에 따르면 전날 트럼프 당선인이 새 정부의 주이스라엘 대사로 지명한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69)는 “팔레스타인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등 팔레스타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온 인물이다.

그는 외교 경험이 전무한 전직 개신교 목사 출신으로, 트럼프 당선인이 인선을 발표하며 “허커비는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이스라엘도 그를 사랑한다”고 밝힌 것처럼 미국 보수진영 내 열렬한 이스라엘 지지자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반대해온 인물이다. 그는 2008년 공화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이스라엘에서 땅을 빼앗으려는 정치적 도구”라고 주장한 바 있다.

허커비는 “‘아랍인’과 ‘페르시아인’은 존재하지만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정체성은 없다”며 “그들이 국가를 건립하고 싶으면 이스라엘 국경 내부가 아닌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이웃 아랍국가들로 가서 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지지해온 ‘두 국가 해법’에 대해서도 “비이성적이고 불가능하다”고 반대하며 이스라엘 외 “나머지 세계”에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위한 “땅이 많다”고도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조 바이든 정부의 대처를 여러 차례 비판했고, 전쟁 발발 1년을 맞은 지난달 7일에는 하마스가 기습 공격했던 이스라엘 남부 국경 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다.

차기 트럼프 정부의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된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2009년 8월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을 방문해 분리 장벽을 둘러 보고 있다. UPI연합뉴스

특히 허커비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합병을 지지해온 인물로, 향후 이 문제가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중동 갈등의 새 뇌관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은 분쟁지역이다. 일부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지만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사실상 점령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이곳에 자국군을 주둔시킨 것은 물론 유대인 정착촌을 만들어 자국민 50만명을 집단 이주시켰고, 꾸준히 정착촌을 확대하며 호시탐탐 합병 기회를 노려 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 1기 정부 임기 말 서안지구 일부 합병을 시도했으나 논의가 무산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점령과 정착촌 건설을 국제법을 위반한 ‘불법 점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 당선 이후 이스라엘 강경파를 중심으로 ‘서안지구 합병론’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스라엘 정부 내 대표적 극우 인사인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서안 정착촌에 이스라엘 주권을 적용할 중요 기회”라며 합병 의지를 노골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허커비 지명은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 야욕에 힘을 실어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허커비는 2017년 이스라엘 방문했을 당시 “‘서안(West Bank)’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유대 사마리아(서안지구를 지칭하는 이스라엘 성서 용어)’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정착촌이나 점령이란 것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 안에 있는 유대인 정착촌 전경.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국제법을 위반한 불법 점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당장 이스라엘 정치권은 허커비 지명을 격하게 환영하고 있다. 앞서 네타냐후 총리 역시 지난 8일 서안지구 합병을 강력하게 요구해온 극우 성향 야히엘 라이터를 주미 대사로 임명하는 등 ‘서안 합병론자’인 두 외교관이 양국 관계를 조율하게 됐다.

역대 미국 정부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이스라엘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왔으나, 바이든 정부 들어선 가자지구 전쟁을 놓고 양측이 엇박자를 내왔다. 이번 인선으로 미뤄볼 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에 비해서도 더 강하게 이스라엘과 밀착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승리 일주일 만에 특정 국가의 대사 인선을 직접 발표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첫 대통령 임기 당시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분쟁 지역인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했고,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주권 역시 인정해 논란을 일으켰다.

또 미국 내 팔레스타인 대표부를 폐쇄하고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는 한편,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아브라함 협정을 주도해 팔레스타인을 외교적으로 고립시켰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