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의 시계, 저커버그의 하이킥 [정삼기의 경영프리즘]

마켓인사이트 2024. 11. 1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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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
정삼기 씨에스케이파트너즈 대표 skchung@cskpartners.com
이 기사는 11월 13일 10:3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정삼기 씨에스케이파트너즈 대표

미국 대선이 끝났습니다. 트럼프 2기를 두고 전 세계는 정치·경제 풍향계를 가늠하느라 분주합니다. 하지만 역대급 무더위로 몸살을 앓던 지난 여름 이후 음미할 만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금투세 논란이 뜨거웠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해외에서는 노벨상 소식이 있었습니다. 모두 경제와 기업의 미래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만한 것들입니다.  

경제에 관한 얘기라면 워렌 버핏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3분기 말 버크셔헤서웨이 보유 현금이 3천3백억 달러(450조원)로, 2분기보다 5백억 달러가량 늘었습니다. 8월 초에도 그런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애플 주식 절반을 팔고, 2분기 현금은 1분기에 비해 900억 달러 늘었습니다. 당시는 미국 고용 지표 악화로 세계 주식시장이 공포로 떨던 때였습니다. 투자자들은 버크셔가 현금을 늘리면 어두운 징조로 받아들입니다.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도 그런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런 버핏의 움직임을 두고 이코노미스트는 미래 통찰력이나 초인적인 능력보다는 단순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보험 사업에서 조달된 저리 자금을 십분 활용하여 기업을 저가에 투자한다는 겁니다. 소위 ‘가치 투자(value investing)’의 본질입니다. 버핏은 현금을 늘리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자본이득세가 오를 것인데 미리 차익을 실현하는 것이고, 저평가된 괜찮은 기업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매우 단순합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워렌버핏.사진=CNBC 캡쳐


그런 버크셔가 지난 8월 말 시가 총액이 1조 달러를 돌파하였습니다. 94세 생일을 앞둔 버핏에겐 의미가 컸습니다. 버크셔 가치는 60년 전에 비해 5만5천배 커졌습니다. S&P 500 지수는 400배 증가하였습니다. 그런데, 2009년 이후를 보면 다릅니다. 버크셔는 연평균 수익률이 13퍼센트, S&P 500은 15퍼센트였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규모 때문입니다. 버크셔 산하에는 미국 2위의 화물 철도회사(BNSF), 3위 자동차 보험사(GEICO), 최대 전력회사(BHE), 수많은 제조업과 소매 브랜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재벌 그룹으로 더 커지기 힘듭니다. 유능한 경영자가 운영하는 좋은 기업에서 현금을 따박따박 챙겨왔습니다만 그런 방식에 녹이 슬고 있습니다. 혁신적인 사업도 드뭅니다. 실패한 딜도 여럿 있습니다. 프리시전 캐스트파츠(항공기 부품)와 크래프트-하인즈(식품)가 대표적입니다. 애플을 제외하면 버크셔 투자 포트폴리오 가치는 2019년 이후 올해 6월까지 50퍼센트 증가에 불과합니다. S&P 500은 120퍼센트 올랐습니다.  둘째, 과거 매몰입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창출하는 이익은 버크셔의 3배입니다. 나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두 빅테크는 버크셔보다 10년밖에 젊지 않습니다. 문제는 버크셔가 과거에 갇혀 있다는 겁니다. 애플을 제외한 투자 포트폴리오와 계열사는 올드 비즈니스입니다. 버핏은 진입 장벽이 견고한 비즈니스를 사랑합니다만, 디지털 전환이나 소프트웨어에는 관심이 없기에 민첩한 경쟁자가 나서면 마진이 줄 수밖에 없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 아마존의 전자상거래, 구글의 검색, 이들 기업의 데이터 센터는 20세기의 철도나 발전소처럼 21세기의 필수 인프라로 수익성도 훨씬 더 높습니다. 

이미지=챗 GPT


주변 세상도 변했습니다. 버핏이 발품을 팔아 기업을 발굴했던 힘은 기업의 공시자료 온라인화로 약해졌습니다. 버크셔의 현금 더미는 이제 2조2천억 달러의 실탄을 보유한 사모펀드 거인들에게 한참 밀립니다. 지배 구조는 구시대적입니다. 평균 연령이 68세인 이사회 때문만은 아닙니다. 버핏은 주주 서한에 최소한의 정보만 공개하고 투자자와는 거의 교류하지 않습니다. 장미의 계절 5월의 주주총회가 유일합니다. 빈약한 홈페이지에는 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도 없습니다. 질문이나 의견은 시골 오마하의 버크셔 본사로 보내는 우편만 허용됩니다. 

버핏이 투자 세계의 최고 구루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급격한 기술과 비즈니스 변화에는 ‘가치 투자의 가치’는 약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생산성이 여전히 세계를 리드한다(American productivity still leads the world)’라는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이를 암시합니다. 미국의 경제 파워는 생산성 증가에서 나옵니다. 올해 예상되는 미국 근로자의 생산량 평균은 17만 달러로, 유럽의 12만 달러와 일본의 10만 달러를 압도합니다. 1990년 이후 미국의 노동 생산성 증가율은 70퍼센트로 유럽과 일본의 25~46 퍼센트를 압도합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유무형 자본에 대한 투자입니다. 미국은 고속도로와 물류센터, 소프트웨어 등 유무형의 인프라 접근이 용이합니다. 민간과 정부의 강력한 연구개발 투자도 미래 성장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GDP 대비 투자 규모는 최고 수준입니다.

둘째, 비즈니스 역동성입니다. 20퍼센트라는 ‘기업 이탈률(churn rate)’은 가망 없는 기업은 빨리 퇴출되고, 신생 기업은 자금 조달이 수월하고, 어떤 기업이든 벤처성진화가 지속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2005년 특허 보유 5대 기업은 P&G, 3M, GE, 듀폰, 퀄컴이었고, 유럽은 지멘스, 보쉬, 에릭슨, 필립스, BASF였습니다. 2023년 미국은 퀄컴만 남고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IBM 4개사가 새로 등극하였습니다. 유럽은 지멘스 대신 바이엘만 들어섰습니다. 

셋째, 탁월한 디지털 역량입니다. 활기찬 혁신 라이프 사이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를 끌어들이는 대학, 정부의 강력한 연구 지원, 청년 기업에 대한 풍부한 자금 지원, 비즈니스 확장에 관대한 규제 장벽 등이 어우러진 결과입니다. 특히 AI를 앞세운 빅테크 주도의 혁신은 생산성 증가를 가속화합니다. AI에 대한 전 세계 민간 투자의 절반 이상을 미국이 차지합니다.  골드만삭스는 AI를 통해 향후 10년 동안 세계 GDP를 7퍼센트 증가시키고, 미국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 합니다. 

이런 역동성은 주식 시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주식시장이 압도적인 이유 (Why the American stockmarket reigns supreme)’ 기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000년 말에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했다면 2023년 말 2.7배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라면 1.6배입니다. 시가 총액은 전 세계 시가 총액의 61퍼센트를 차지합니다. GDP 점유율 대비 2.3배로 역대 최고입니다. 이런 위치는 엄청난 규모와 높은 수익률의 조합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주식시장이 다른 나라보다 수익률이 높은 데는 두 가지가 작용합니다. 기업들이 더 많은 이익을 내거나 아니면 투자자가 이러한 이익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후자의 효과가 큽니다. 기대 수익 대비 주가가 24배로, 유럽의 14배를 압도합니다. 주로 애플, 아마존, 메타, 엔비디아 등 "매그니피센트(Magnificent) 7" 같은 성장주 때문입니다. 현재보다 미래를 더 높게 평가한다는 겁니다. 유럽에는 GSK, 로슈, 네슬레, 루이비통 등 소위 ‘그래놀라스(GRANOLAS)’가 있지만 대부분 소비재로 미국의 빅테크에는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이런 변화를 보면 버핏의 가치 투자가 계속 빛을 발할지 의문입니다. 버핏은 아날로그 세계의 레거시 기업에 대해 뛰어난 감각을 발휘합니다. 그런 능력은 나이테가 겹겹이 두터워진, 실탄이 두둑한 투자가에게나 가능합니다. 버핏과 버크셔의 가치 대부분이 버핏이 60세 이후 축적되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는 다릅니다. 끼를 주체 못하는 노마드가 아니면 생존하기 힘듭니다. 뛰어난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졌다 하더라도 거친 바다와 같은 자본시장을 상대해야만 합니다. 

이미지=챗 GPT


디지털 세상의 대표적인 노마드 중 한 사람이 메타의 마크 저커버크입니다. 버핏이 거대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할 무렵 저커버그는 초등학교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제 막 40줄에 들어선 그는 매그니피센트 7 리더 중 막내입니다. 나머지는 50대 중반 60대입니다. 저커버그는 말 그대로 애송이입니다. 그런 그가 시가 총액 6위의 기업을 리드하고, 노회한 정치인들의 공격을 받아냅니다. 젊은 저널리스트를 상대로 서핑 보드를 코치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알립니다. 투자 세계의 구루는 다릅니다.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댄싱으로 답례합니다. 가끔 거액 재산가들과 밀리언 달러 식사를 하며 ‘투자의 비법’을 속삭이며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기업가와 투자가의 궤적은 극명하게 다릅니다. 기업가는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데스밸리를 건너야 하는 삶의 연속입니다. 투자 세계는 다릅니다. 비즈니스 본질보다는 금융 공학이 더 중요합니다. 기업 라이프 사이클 곳곳에는 엔젤, 벤처, 스케일업, 바이아웃 등 다양한 투자가들이 존재합니다만, 버핏은 어떤 유형도 아닙니다. 경쟁자가 드문 레거시 기업을 저렴하게 잡습니다. 반면 저커버그는 비즈니스 라이프 사이클을 헤쳐온 현재형이자 미래형입니다. 흔들리는 주가를 두고 AI 베팅이 지나치다는 시장 우려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버핏의 눈에는 무모한 짓입니다. 케이팝 저작권 투자 플랫폼인 뮤직카우에 5백만 달러를 투자한 힙합 대부 제이지를 두고 버핏은 ‘투자의 귀재’라고 극찬합니다. 그런 버핏이 플랫폼 기업에 투자를 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번 노벨상은 기술과 비즈니스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물리학상은 AI 대부 존 홉필드(미국)와 제프리 힌튼(캐나다)에게 돌아갔습니다. 힌튼은 머신러닝이 효율성과 생산성을 더욱 향상시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용어는 경제와 비즈니스 쪽 사람들에게나 어울립니다. 화학상은 ‘단백질 설계 예측’으로 데이비드 베이커(미국), 데미스 허사비스(영국), 존 점퍼(미국)가 수상하였습니다. 40대 후반의 허사비스는 컴퓨터 과학자이자 딥마인드 창업자로 10대 초에 체스마스터가 되고 게임 개발에 몰두한 인물입니다. 게임업계를 떠난 후에는 AI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딥마인드는 바둑으로 이세돌을 울린 AI 기업입니다. 40세가 채 안되는 점퍼는 화학자로 출발하여 컴퓨터 과학자로 변신한 인물로 저커버그 또래입니다.

노벨 위원회에서 물리학상을 오래 전 황혼기에 접어든 응용과학자들에게, 화학상을 젊은 컴퓨터 과학자들에게 준 깊은 이유를 헤아리기 힘드나, AI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최근 프로게이머 페이커가 롤드컵 통산 5회 우승이라는 소식으로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댓글이 재미있습니다. “한국은 레전드인 게… e스포츠 goat 보유국인데 게임은 질병”이라는 겁니다. (인터넷에서는 god를 goat로 바꿔 쓰는 게 밈입니다.) 게임 천재가 AI 전문가로 변신하여 세상을 바꾸는 기업을 창업하고 노벨상까지 타는 그런 환경이 우리에게는 공상과학 소설로만 보입니다. 

올해 우리나라는 정치권에서 때아닌 금투세 논쟁으로 뜨거웠습니다. 금투세는 폐지되었습니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았습니다. 모두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주식시장을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밸류업 프로그램과 금투세 폐지 약발은 오래 못 갔습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배구조 개편이니 가치 제고 등 여러 이유로 황제주로 치솟다가 추락하였습니다. 알짜 기업들의 상장폐지 소식도 줄을 잇고, 삼성전자의 미래가 안 보인다며 아우성이지만 주식시장은 여전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미국 경제와 주식시장의 역동성을 뒷받침하는 요인이 한국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이 고심하는 모습은 역력합니다. AI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며 정부 주도의 AI 자율제조 선도 프로젝트에 현대자동차, 포스코, 삼성중공업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AI는 과기정통부, 제조는 산업통상부 주관입니다만, 이제 AI는 특정 부처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차원이 되었습니다. 인터넷, GPS, 심지어 코로나19 팬데믹을 물리친 mRNA 백신까지 그 주인공이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트럼프 2기는 ‘AI 맨해튼 프로젝트’를 준비 중입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원자탄 개발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한국의 경제가 살고 주식시장이 길을 찾아 커지기 위해서는 기업의 유기적인 기술 적용과 생산성 창출과 경제 파이 확대가 절실합니다. 청년 기업이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역동적인 환경도 절실합니다. 이런 절실함에서 더욱 절실한 것은 국가 주도의 혁신 마중물입니다.

영화 ‘그랜 토리노(Gran Torino)’에서 월트는 6·25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자식과도 불편한 노인입니다. 아내가 세상을 뜨자 더욱 고립의 길로 갑니다. 그런 그가 옆집 소심한 동양계 청년과 불편한 관계를 시작하게 됩니다. 노인은 손자뻘 청년에게 손에 잡히는 세상살이 비법을 알려주고, 청년은 눈을 뜨고, 서로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노인은 청년 가족의 빌런 제거에도 나섭니다. 그는 청년에게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최애 재산을 남기며 스스로 ‘숭고한 멸종’을 준비합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 감독이자 주연인 할리우드 전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워렌 버핏과 동갑내기입니다.

(본 글은 The Economist의 ‘American productivity still leads the world’와 ‘Why the American stockmarket reigns supreme’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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