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게 나빠? 폭력이 나빠!
야한 걸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친구들에게 우머나이저(여성용 흡입식 자위기구)를 선물하고, 틈날 때마다 비엘(BL·Boys Love의 줄임말로 남성 간 로맨스를 다룬 작품을 뜻함)을 추천하는 30대 A씨. 그녀에게 물었다. 왜 남자끼리 하는 만화를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여자가 나오는 편이 더 야하지 않나. “큰일 날 소리!” A씨가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여자들이 비엘을 좋아하는 이유는 폭력적이어도 불편하지 않아서야. 이걸 말하려면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990년대 만화책을 빌려 읽던 시절, 성에 막 눈뜬 초딩 A양은 빨간 딱지가 붙은 성인 만화 코너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책을 찾는 척하며 빨간 딱지가 붙은 책장으로 향할 때의 설렘. 그 앞에 슬쩍 멈춰서 숨죽여 몰래 읽던 스릴. 한마디로, 야한 건 재밌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보급되고 엽기 사이트 팝업창으로 뜬 성인물을 접하게 되면서, 자신의 몸과 ‘야동’ 속 여인들이 불편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나도 저런 구도와 프레임으로 보이는 걸까?’ 그건 설렘도, 기대도 아닌 싫고도 두려운 감정이었다. 한 여자가 길을 걷다가 봉고차에 납치돼 강간당하는 일본 동영상을 본 날, 그 두려움은 정점을 찍었다.
“그때부터 야한 게 재밌지 않았어. 하지만 난 야함을 느끼고 싶었고 야설(야한 소설), 야망가(야한 만화의 일본어식 표현)를 찾아보다 알게 된 비엘이란 장르는 그야말로 유레카였지. 현실 속 나를 떠올리지 않게 하는, 여성이라곤 안중에도 없는 보-이들의 사랑이라니!”
때마침 보이그룹이 나타났고, 그들의 팬픽(팬이 직접 쓰는 소설)을 읽으며 ‘역극’에 빠지기 시작한 중학생 A양. “역극이 뭐냐면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과 역할극을 하는 거야. 작품 속 캐릭터나 연예인 이름, 이미지를 따서 주인공을 만들기도 하는데, (보이그룹인) ‘신화’라 치면 혜성과 에릭인 척하는 거지. ‘학교에 전학 온 말간 전학생의 얼굴을 쓱 쳐다본다. 가만 보니 내 취향이다. 다가가서 말을 건다. 네가 혜성이야?’ 그럼 상대방이 대사와 지문을 치며 이어나가.”
아니, 너무 좋은 창작 조기교육이잖아? “맞아. 비엘 만화를 참조해서 ‘어떻게 하면 더 야하게 만들까?’ 연구하고 그랬지. 근데 다른 얘기지만 엔(n)번방이 내가 알기론 ‘역극’ ‘일탈계’를 하는 여학생들이 타깃이 된 거야. ‘너 이렇게 야하게 놀면서 몸 사진까지 찍었네? 내 말 안 들으면 네가 무슨 짓 했는지 너희 아빠에게 보낸다.’ 이런 식으로 가해자들이 협박하니까 ‘제발 비밀로 해주세요’ 하면서 (가해자들의) 범죄가 시작된 거지. 근데 막말로 내 몸 사진 아빠한테 보내든 말든 ‘뭐래, 우리 아빠 내 똥 닦아준 사람임’ 이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면, 내가 성적인 걸 추구했고 좀 야해지고 싶었다, 이게 죄가 아닌 세상이면 그냥 무시할 수 있잖아.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너무 마음이 아프고….”
A씨는 말을 이어갔다. “야한 온라인 생활을 즐기던 초딩 출신으로서 이제는 나이 들어가는 여자로서 자주 생각해. 어떻게 하면 자라나는 새싹 여자 친구들이 안전하게 성적 판타지를 즐길 수 있게 할까. 그래서 이런 생각도 했어. 어린 여자 친구들이 마구 놀러 올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야망가랑 비엘을 잔뜩, 취향껏 차려놓고 즐기게 하는 거지.”
일단, 나부터 가고 싶다. 내 친구 딸내미들, 10살 정도 되면 데려가고 싶다. 그래서 가르쳐주는 거다. 오르가슴이란 여성 생식기인 질의 빠른 수축과 이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이걸 잘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것을 연마하되 너무 자신의 존재를 걸지는 말라고. 세상엔 여러 레이어의 보호막들이 있으니. 이를테면 비엘이라거나, 로판(‘로맨스 판타지’의 줄임말) 웹툰이라거나, 섹스 토이라거나. 하나씩 도전해보자고. 어느 일요일 나른한 오전 혼자 있을 때 말이야.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야망가 A씨의 플레이리스트
① 네이버 웹툰 ‘문스트럭’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833052
야한 만화가 낯선 분들에게 입문용으로 추천한다. 영모 작가의 그림 실력이 매우 뛰어나고, 옴니버스로 구성된 단편들의 설정과 스토리가 흥미롭다. 플랫폼 특성상 야한 묘사가 너무 노골적이지도 않고 대중적으로 어필될 만한 요소가 많아 보인다. 완전 신작.
② 비엘 웹툰 ‘물가의 밤’
https://www.bomtoon.com/bom/cartoon/main
봄툰 등 유료 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 비엘 감상 경험이 있는 중급자에게 추천한다. 남성이 임신할 수 있다는 ‘오메가버스’ 세계관인데다 주인공이 조폭이라 매우 강압적인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비엘만의 독특한 매력 요소가 많아 선정했다. 잡솨봐.
③ 퍼플티비
https://www.youtube.com/@PupleTV/featured
아는 만큼 보이고, 즐길 수 있다. 야한 콘텐츠도 좋지만 무엇보다 내 신체에 대한 이해와 성적 쾌감에 대한 공부가 뒷받침되면 더욱 즐거운 성생활이 가능하다. 키스하는 법부터 오르가슴을 느끼는 법까지, 아주 다양하고도 실제적인 성교육 콘텐츠를 담고 있다.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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