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늪 vs 혁신의 날개…韓·美 IT공룡들의 서로 다른 길 [박용후의 관점]
(시사저널=박용후)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삼성전자의 주가가 이제 '4만 전자가 코앞'이라고 난리다.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카카오는 주가 하락에 대한 걱정은 차치하고,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압수수색 소식이 들려오며 총수를 다시 구속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난무하고 있다. 쇼핑 플랫폼의 거인 쿠팡도 마찬가지로 현재 압수수색이 진행 중이다. 이런 사이 대외적 요소로 충격을 받은 대한민국의 시가총액은 2000조 원 아래로 내려갔다. 한국 증권시장 규모는 이제 비트코인 시가총액보다 낮다. 하루가 멀다 하고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을 팔고 떠난다. 벌써 일주일 동안 코스피에서 외국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미국 대선 직후인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 외국인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주식 1조 1247억 원을 순매도했고, 그 가운데 삼성전자는 국내 투자자를 포함해 1조 8204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금투세 폐지 같은 정부 정책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 암호화폐 투자자들 또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한국 시장을 빠르게 탈출해 미국으로 이주 중이다.
삼성전자의 개인 투자자는 2024년 6월 말 기준으로 424만 7611명, 카카오는 178만 9654명으로, 두 회사의 개인 투자자를 합치면 대한민국 개인 투자자 1403만 명의 절반 가까운 603만여명에 달한다. 이 두 회사의 주가만 올라가도 대한민국 개인 주주의 절반 가까이가 숨통이 트일 것이다. 현실은 잔인하다. 두 회사의 개인 주주들은 "이게 바닥일 거야"라며 희망을 꿈꿔보지만, "바닥이 아니라 지하실이 더 있다"고 한탄한다. 투자자들은 이제 늪에 갇혀 버렸다. 카카오의 주가는 2021년 6월 최고가 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이미 80%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주주들은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실낱같은 한 가닥 희망으로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재용 회장은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으며, 카카오 역시 김범수 의장을 비롯해 임원들이 로펌 직원들과 법적 대응에 몰두하느라 미래의 혁신에 대해선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른 회사의 예를 보자. 2024년 3월 시작된 파두 사태 관련 수사가 시작된 지도 9개월이 지났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주요 경영진은 출국금지를 당해 영업이나 기업 활동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래도 씩씩하게 엔비디아의 블랙웰 테스트를 통과하며 기술력도 검증받았고, 매출 라인을 다각화하여 출구를 찾고 있다. 파두 사태를 지켜본 미국에 클라이언트를 둔 비슷한 기업의 경영자들은 한국에 본사를 두지 말고, 상장도 미국에 하자고 입을 모은다. 출국금지에 묶여 어떤 꼴을 당하는지 눈앞에서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뒷걸음질치고 있는 사이, 미국은 대선에서 트럼프가 압승하며 다시 백악관의 주인으로 복귀를 앞두고 있다. 트럼프에 올인(All-in)했던 일론 머스크는 날개를 달았다. 그는 새 정부의 '정부 효율부' 수장을 맡았고, 규제에 가로막혀 있던 미국 시장 환경을 확 바꿀 것이라는 예상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일론 머스크가 뜻한 바대로 많은 것이 바뀔 것이고, 그에 따라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지난 10월 10일 자율주행 택시 사이버캡과 20인승 로보밴,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통해 그가 꿈꾸고 있는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줬다. 일부 언론과 비평가들은 혹평을 쏟아냈지만 지금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코로나19의 발원지로 기억하는 우한은 중국의 디트로이트가 되어 자율주행의 중심 도시로 탈바꿈했다. 바이두(Baidu)의 Apollo Go 서비스를 통해 500대 이상의 택시가 운행 중이며 연내 천 대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비약적인 성장 이면에는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존재한다. 미국이 큰 변화를 예고했고, 중국은 뛰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표적 모빌리티 기업이라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어떠한가? 검찰, 공정위, 금감원 등에 꽁꽁 묶여 혁신은커녕 생존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럽의 1등 모빌리티 플랫폼인 '프리나우'의 인수도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인다. 카카오모빌리티의 기술력과 운영 능력, 그리고 프리나우가 가진 시장 지배력이 합쳐진다면 유럽을 우리 품 안에 품을 수 있다는 원대한 꿈은 이미 내외적 요인으로 일장춘몽이 되었다. 또한 카카오 본체도 법적 리스크로 인해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 고위 관료가 "카카오는 기업 해체 직전까지 갈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업계에 돌기도 했다. 어쩌면 풍문으로 떠돌던 그 소문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규제가 풀린 미국의 첨단 기술에 치이고, 한국의 사정기관에 목이 졸린 카카오는 이제 경쟁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심지어 카카오에 행동주의 펀드가 이미 자리를 잡았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중국 바이두가 운영하는 자율주행 택시와 구글의 웨이모, 일론 머스크의 사이버캡 등이 실제 거리에서의 주행 경험을 통해 더 완벽해져 우리나라 운송 시장을 잠식할 수도 있다.
이미 대한민국 사람들의 일상은 미국 플랫폼 기업들의 서비스로 가득하다. 유튜브 사용량이 카카오톡을 넘어섰고, 젊은이들은 카톡보다 인스타그램 DM을 쓰는 게 대세다. 텔레그램, 페이스북도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다. AI 시장에서 이미 주도권을 많이 빼앗긴 대한민국은 네이버가 굳건히 지키고 있던 검색 시장에서도 오픈AI의 챗GPT와 퍼플렉시티(Perplexity)에 주도권을 내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영국 회사였던 딥마인드(DeepMind)가 미국 회사 구글에 인수되어 미국 회사가 된 사례처럼,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사정기관의 몽둥이에 두들겨 맞다가 견디지 못해 카카오가 외국 자본에 소유권이 넘어가거나 미국 회사에 인수될 수도 있다. 이 장면은 구한말 동학군을 때려잡던 그 시절의 상황과 겹쳐 보인다.
이 시점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삼성전자가 쇠락의 길을 걸어 망하거나 카카오가 해외 자본에 먹혀 외국 회사가 되기를 바라는가? 현 상황에서는 "그게 좋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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