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질책'과 '직장내 괴롭힘' 가르는 네 가지 기준

백승현 2024. 11. 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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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적 규제가 도입된 지 5년이 지났고, 어느새 직장 내 괴롭힘은 명실공히 가장 핫한 노동법 이슈가 됐다. 전형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직장 내 갑질이나 따돌림, 태움 문화를 넘어 방죽을 흐리는 한 마리 미꾸라지 같은 각종 오피스 빌런과 이른바 을질 문제까지,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사례와 이슈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누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는 넓은 당사자성으로 인하여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유별나게도 인사 실무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조직장이나 직원들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최근 있었던 모 강의에서도 질의응답 시간에 있었던 참석자의 질문이다. “업무를 하다 보면 부하직원에게 강하게 질책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직장 내 괴롭힘 이슈 때문에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명확한 기준이 있나요?”

똑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 없고, 같은 말이나 행동이라도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직장 내 괴롭힘 사례이기에, 다른 사례만을 가지고 이런 말은 된다, 안된다와 같은 일도양단식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하급자에 대한 업무상 질책이 어떤 경우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는지에 대한 몇 가지 판결례들을 통하여, 업무상 적정한 지시와 지도의 범위에 대한 기준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우선, 업무에 관한 지시나 질책을 하는 과정에서 누가 보더라도 인격에 대한 멸시와 조롱을 포함하는 욕설, 폭언이 포함되는 경우라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청주지방법원 2023년 3월 17일 선고 2022가단55982 판결 사안에서, 대표이사인 피고는 약 25년간 자신의 전담 운전기사로 근무하며 피고 개인 주택 등의 잡무를 담당하던 피해 직원의 뒤통수를 때리는 등 폭행하고, "병신같이", "돌대가리냐, 치매냐", "이게 미쳤나", "개××", "앞으로 운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냐" 등 욕설이 섞인 폭언을 자주 하였는데, 피해 직원의 사망 후 유품을 정리하다 피해 직원의 휴대전화 녹음파일을 듣고 피고의 폭언 사실을 알게 된 유가족들이 피고를 상대로 제기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고, 법원은 이러한 폭언 등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고, 가해자인 피고에게 6000만원에 달하는 위자료 지급 책임을 인정하였다.

반면 상급자가 일견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일 수 있는 과격한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대전지방법원 2021년 11월 9일 선고 2020구합105691 판결 사안에서 팀장 직에 있던 피신고인은 인턴인 피해자가 장소 대여 업무를 실수하자 "야 너 미쳤냐?", "미친놈이냐?" 등 욕설에 가까운 폭언을 하였고, 팀에서 추진하는 사업 개편 과정에서 다른 피해자들에게 "니들 대학 나왔잖아. 근데 이것도 못 하냐. 대학 나온 사람이 이 정도는 해야지"와 같은 인격 모독성 발언을 하였으며, 용역업체가 수행한 업무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다른 피해자에게 “업체나 담당자나…”, “니가 그러고도 담당자냐?”와 같은 폭언을 하였는데, 법원은 이러한 발언들이 상급자로서 하급자인 피해자들의 업무의 오류에 관해 지적하거나 업무수행을 독려하기 위한 발언으로서 일회적 발언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대로 위 사례들과 같은 노골적인 욕설이나 폭언이 없더라도, 업무상 질책이 지속적·반복적·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도 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2021년 6월 17일 선고 2020가단239162 판결 사안에서 어린이집 원장인 피고는 학부모로부터 보육교사인 원고에 대한 민원을 받자 원고에게 ‘최선을 다하는데 이렇게 근무를 하느냐’, ‘근무를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다’라며 여러 차례 원고의 근무태만에 관하여 질책하고, 몇 개월 뒤 어린이집 교사회의 자리에서 원고의 업무분장표가 공란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지적하면서 ‘어떻게 빈칸이 올 수가 있느냐’, ‘어떻게 하실 것이냐’, ‘일을 안 하겠다는 소리냐’와 같이 여러 차례 반복하여 질책하였으며, 다른 교사들 앞에서 원고에게 ‘선생님이 죄송합니다 한 마디면 끝날 일이다’라며 여러 차례 반복하여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피해자인 원고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실신하거나 쓰러지기까지 하였다. 법원은 이러한 피고의 발언들이 일상적인 지도나 조언, 충고의 수준을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해당함을 인정하고, 원고에 대한 위자료 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판례들을 종합해보면, 법원은 업무상 질책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특정한 표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이 발생한 전체적인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여 ①지속성과 반복성, ②공개성, ③업무 관련성, ④표현의 수위 등과 같은 기준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업무상 질책이 이루어진 제반 상황을 고려하였을 때 일회성 발언보다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행위일 경우, 일대 일의 면담보다는 다른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경우, 업무와 관련이 적고 개인적인 모욕이나 비하의 의도가 강한 경우, 인격 모독적인 표현이나 욕설, 폭언 등이 포함된 경우일수록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업무상 필요한 지시나 질책을 할 때 적절한 의사소통 방식을 통하여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지양하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득이하게 상대방에게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강한 질책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적어도 위의 기준들을 염두에 두고 업무와 관련한 내용에 한정하여 비공개적이고 일회적으로, 가능한 한 모욕적이고 비하적인 표현을 지양함으로써 객관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송우용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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