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직원 ‘강간미수’ 팀장 징계없이 사직시킨 대한항공…대법원 “피해자에 손해배상”
2년 뒤 회사에 신고…징계 없이 사직 처리
법원 “무징계 사직 사실상 강권”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사내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안내·동의 없이 가해자를 무징계 퇴사시킨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확정됐다. 회사가 징계위원회 회부, 비밀 보장 조치 등 가능한 방안에 대해 피해자에게 상세하게 설명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숙연)는 14일 사내 성폭행 피해자 A씨가 대한항공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총 18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2017년 A씨는 직속 팀장 B씨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 당시 소속팀에서 발생한 보안사고로 인해 A씨가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팀장 B씨는 사고와 관련해 논의할 게 있다며 자신의 집으로 A씨를 불렀다. B씨는 보안사고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돌변해 A씨에 대한 강간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A씨는 이같은 사실을 2년 뒤인 2019년 회사에 알렸다. 회사의 인사팀·법무팀은 A씨와 A씨의 변호사와의 논의를 진행한 뒤 B씨에게 사직을 권고했다. B씨는 면담 당일 사직서를 냈다. A씨는 성폭행 사건 발생에 회사의 책임이 있고, 별도 징계 없이 사직 처리한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우선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는 성폭행 사건 발생에 대한 회사 책임을 인정하며 15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한항공은 성폭행 사건은 팀장 B씨가 장기 휴가 중이고 A씨 역시 해당 기간 휴무였기 때문에 업무 연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사건 보안사고는 (B씨가) 복귀해 팀장으로 다루어야 할 사안이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수도 있었다”며 “B의 휴가 중 야간 시간 대에 사저에서 행해진 것이기는 하나 5일 후면 복귀할 예쩡이었다. 강간미수 행위는 피고의 피용자인 B의 사무집행에 관해 발생한 사고라고 봐야한다”고 했다. 2심 재판부 또한 “사무집행 관련성은 충분히 증명됐다”고 했다.
징계 절차 없이 사직 처리된 것에 대해서는 1심과 2심의 판단이 갈렸다. A씨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강간미수 사건의 경우 가해자를 반드시 징계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가 면담 과정에서 징계위 등 공식적인 절차를 밟을 경우 ‘피해자 노출’ 우려를 지나치게 강조해 A씨가 회사에 이견을 표출할 수 없게 했다고도 했다.
1심 재판부는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와 A씨가 가진 면담 자리에서 ‘사직 동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강간미수 가해자에 대한 사직처리는 법률대리인의 검토, 조력을 받은 피해자인 원고의 의사를 반영해 징계의 대안으로 선택됐다”고 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회사에 300만원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남녀고용평등법과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직장내 성희롱 실무 매뉴얼 등을 근거로 회사가 ‘객관적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회사는 신고인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제공해 가장 만족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도록 도와야 한다. 또 공식 절차를 이용하게 될 경우에도 비밀 유지를 위해 각별한 주의를 다할 필요가 있다”며 “(피고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이 피해가 공개될 염려가 있다는 점만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무징계 사직을 받아들일 것을 사실상 강권해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했다.
또 의견청취의무도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회사와 B씨와의 면담 과정에서 B씨가 원인을 A씨에게 돌리는 등 범의를 부정하는 발언을 들었으나, 이를 A씨에게 적절히 전달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2심 재판부는 “B씨 진술의 구체적 양상을 전달받고 형사고소할지 여부 등 대응방안을 정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사직서 제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점만 전달해 의견 청취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2심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들여 상소 기각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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