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발하면 끝? 美·日처럼 직접 임대·운영해라”vs업계 “시행사 양극화 심해질 것”
LH 공공택지, 운영 가능한 리츠에 매입 우선권
리츠, 분양 단기수익 넘어 임대 수익도
자본력 갖춘 디벨로퍼에 인센티브
정부는 14일 발표한 ‘부동산 PF제도 개선방안’에서 시행사를 ‘한국형 종합 부동산회사’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지금까지 시행사(디벨로퍼)는 보통 자기자본의 5% 미만만 보유한 후 대출을 통해 토지를 산 후 PF사업의 분양, 준공 후 바로 청산해 차익을 얻는데 집중해왔다. 자기자본이 적은 시행사는 대출을 받기 위해 신탁사·건설사의 빚 보증으로 신용을 보강했고 이 때문에 시공사인 건설사들의 우발부채 부담도 쌓였다. 시행사의 단기 차익 위주의 영업행태가 금융권 전반의 리스크 확산 고리를 형성한 셈이다. 이런 관례를 깨고 부동산 개발부터 임대·운영까지 도맡는 ‘한국형 종합 부동산회사’를 육성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자기자본 비율이 높은 시행사와 안정적 자기자본을 갖춘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에 입지가 우수한 공공택지매입 우선권을 제공해 안정적 개발과 운영을 도모한다. 우량 용지를 리츠에 공급해 지역 내 랜드마크 상업시설 개발과 헬스케어리츠 등 특화형 개발도 유도한다. 이를 통해 운영 노하우를 축적한 전문 디벨로퍼가 나오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PF 시장은 분양에서 개발·운영 중심으로 구조가 선진화될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정부의 지원책에 부동산 개발 업계는 “이상적인 부동산 개발 구조일 뿐”이라는 반응이다. 정부의 지원책은 자기자본을 투입하는 디벨로퍼에 집중돼 있는데, 국내에서 당장 자기자본을 확충해 개발 이후 임대·운영 리스크까지 떠안을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디벨로퍼에게만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시행사들의 양극화가 커질 것이라는 반발도 나온다.
◇ LH, 공공택지 자기자본 높은 시행사에 우선 공급
정부의 ‘부동산 PF 제도 개선 방안’에 따르면 현재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시행사는 개발 단계까지만 담당한다. 그러다 보니 분양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치중해 단기·영세한 시행 행태를 보이고 있다. 반면 미국, 일본 등에서는 시행사가 금융사·연기금 등 지분투자자를 유치해 30∼40% 자기자본으로 토지매입 후 건설단계에서 PF대출을 받는 식으로 부동산 개발 사업을 진행한다. 이에 따라 단순 분양수익만이 아닌 임대수익까지 갖춰 수익구조가 안정적이다.
정부는 해외와 같은 종합 부동산회사를 육성하기 위해 먼저 리츠를 통한 개발·운영이 가능한 디벨로퍼를 육성할 방침이다. 현재 한국주택도시공사(LH) 공공택지는 디벨로퍼가 LH로부터 택지를 공급받아 오피스·상가 등을 개발해 분양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이 경우 디벨로퍼는 분양을 통한 이익 실현에 집중하게 된다. 공공택지는 수용 방식으로 조성됨에도 불구하고 택지를 분양받은 디벨로퍼가 분양이익을 독점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 수분양자들은 운영 노하우 부족으로 공실 등 비효율적인 운영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안정적 자기자본을 갖춘 리츠에 입지가 우수한 공공택지매입 우선권을 제공해 안정적 개발과 운영을 도모할 계획이다. 자기자본비율이 높은 경우 택지 공급 평가할 때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우선권을 준다. 또 우량 용지를 리츠에 공급해 지역 내 랜드마크 상업시설 개발과 헬스케어 리츠 등 특화형 개발을 유도한다. 만약 해당 사업에 대해 디벨로퍼가 필요하면 LH가 지분출자자로 참여해 사업 안정성을 보강할 방침이다.
정부는 리츠의 경우 주식의 30% 이상을 공모하도록 해 국민도 주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도 열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운영 노하우를 축적한 전문 디벨로퍼 육성을 유도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분양에서 개발·운영 중심으로 부동산 생산 구조를 선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업계 “리스크 너무 커 현실성 부족”
업계에서는 개발 이후 임대·운영까지 하는 것이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점을 알고 있지만, 당장 임대·운영의 리스크까지 안고 가기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시행업계 관계자는 “많은 디벨로퍼들 역시 개발 후 분양으로 끝내지 않고 임대와 운영까지 맡는 것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가져와 수익성에 유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며 “그러나 애초에 자기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디벨로퍼들에게 자기자본을 투입했을 때 주는 혜택은 사실상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대기업 계열 디벨로퍼인 SK D&D의 시가총액이 1327억원인데 반해, 미쓰이부동산의 시가총액은 33조원을 넘는다”며 “자기자본 비율을 높였을 때 제공되는 세제 혜택이나 용적률 완화 등의 인센티브가 정부에게는 유인책으로 보일지 몰라도, 정부와 기관의 직접적인 자금 투입이 없는 상황에서 자본이 부족한 디벨로퍼들에게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책으로 중장기적으로 부동산 시행 업계의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이번 대책의 정책 방향은 올바르나 대부분 2025년 법 개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부동산 PF 선진화 효과는 2025년보다 2026년쯤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중장기적으론 자본과 설계·MD·분양과 임대·운영 노하우까지 두루 갖춘 규모 있는 디벨로퍼와 영세 디벨로퍼 간 양극화는 더 심화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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