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기술이전 대박, 다 이유가 있구나… "세상이 환영할 연구해야"
엔진연료체 연구하며 화학공정에 익숙
기계硏서 연구매진중 융합연구단 합류
기술난제 해결해 현장적용 확인
메탄 대신 수소로 이상연소 문제 해결
CPOx기술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기계연 역대 최대 규모 성과까지
2년 협의기간 거쳐 KBR社에 기술이전
다양한 지식·정보공유 가능한 교육 필요
이준기의 D사이언스 이대훈 한국기계연구원 박사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한국기계연구원 내 L3 연구동 409호 문 앞에는 '영업중'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다. "연구실에 웬 영업중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지"라는 생각에 옅은 웃음이 지어진다. 그 옆에 써 있는 '기계와 머리는 굴려야 산다'를 푯말을 본 순간, 웃음이 빵 터진다. 문을 열고 연구실에 들어서자 안쪽 문 앞에 '나가라 일터로, 나에겐 빚이 있다'라고 붙여 놓은 재치 있는 문구가 눈길을 또 한번 사로 잡는다.
이 연구실의 주인공은 이대훈 한국기계연구원 박사다. 그는 "'영업중', '기계와 머리를 굴려야 산다', '나가라 일터로 나에겐 빚이 있다' 등의 문구는 제가 연구에 임하는 마음가짐이자 연구 지향점을 표현한 것 같다다"고 소개했다.
이 문구들은 그가 지난 7월 미국의 글로벌 화학공정 엔지니어링 기업에 기계연 내 역대 최대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안겨준 원동력이기도 했다. 고객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이 박사의 노력과 열정이 10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는 "내가 못하면 지구상에 있는 어떤 연구자도 못한다라는 각오로 즐겁게 연구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화학·에너지 산업을 선도하며 기술 라이센싱을 받는 석유화학 분야의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기술 개발과 기술 확산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피력했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부장
◇기계·화학 융합연구에 눈떠… 플라즈마·수소 연구 '박차'
이 박사는 대학원 시절부터 기계와 화학, 소재를 넘나드는 융합연구를 의도치 않게 경험했다. 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며 엔진 관련 연료체 연구를 한 덕분에 촉매, 플라즈마 등 화학공정 관련 분야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석·박사 시절 '내 전공이 뭐지'라고 되물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연구를 했다"며 "돌이켜 보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찍부터 융합연구에 눈을 떴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방면에 걸친 연구 경험은 이 박사가 기계연에 들어올 때 커다란 도움이 됐다.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다른 동기들이 대부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나 국방과학연구소 등에 취업했지만, 그는 융합연구 경험 덕분에 항공우주 분야와는 좀 거리가 있는 기계연에 입사했다. 기계연에 들어와서도 또다른 융합연구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 박사는 "기계연에 입사해 처음 연구한 것이 플라즈마 반응기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수소 개질기와 플라즈마 버너 등 촉매와 관련한 화학 공정분야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연한 기회에 '대형 융합연구단' 합류… 석유화학 공정 연구에 '올인'
기계스럽지 않은 연구에 매달려 오던 이 박사에게 2014년 뜻하지 않게 대형 융합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대학원 시절은 물론 연구소에 들어와서 운명처럼 따라 다닌 융합연구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당시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지원하고, 한국화학연구원이 주관기관으로 선정된 '화학공정융합연구단(단장 박용기 화학연 박사)'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당시 실장님이시던 송영훈 박사님이 화학공정융합연구단에 우리도 참여하게 됐다"면서 "화학연으로 출퇴근하며 연구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 때부터 융합연구단 일원으로 다른 소속 기관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를 새롭게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뒤늦게 융합연구단에 합류한 탓에 연구를 어디서부터 해야 할 지 막막했다. 우선, 처음 접해 생소했던 석유화학 공정에 대해 공부하며 하나씩 지식을 쌓았고, 앞으로 연구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 발굴에 집중했다. 실험실을 기계연이 아닌 화학연으로 옮겨 3년 가까이 연구에 매달렸다.
이 박사는 "예전에 촉매, 플라즈마 등 화학공정 분야를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융합연구단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촉매를 이용한 나프타 분해 공정에 대해 빠르게 눈을 뜰 수 있었다"면서 "촉매를 이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촉매 방식 나프타 분해(NCC)공정'을 어떻게 구현할 지 솔루션을 찾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업도 못 푼 '기술 난제' 해결… 석유화학 플랜트 적용 가능성 입증
NCC 공정은 원유를 정제해 얻어지는 나프타를 고온에서 분해해 플라스틱의 원료인 올레핀(에틸렌·프로필렌) 화합물을 생산한다. 이를 위해 850도 이상의 고온에서 가동해야 하는데, 촉매를 이용하면 이보다 낮은 650도에서 운전이 가능해 연료 비용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이 공정은 'K-COT'로 불리는 데, 글로벌 석유화학 엔지니어링 전문기업인 케이비알(KBR)사가 기술과 설비 전반에 걸쳐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이 박사는 "K-COT 공정은 부생가스인 메탄을 열원으로 공급할 때 촉매 재생기 상부에서 '이상 연소(After Burning)' 문제가 생겨 메탄을 사용할 수 없었다"며 "KBR사는 이런 문제를 당시 공동 연구를 하고 있던 화학연에 요청했고, 이에 대한 솔루션을 찾기 위한 연구를 맡아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상 연소는 공급한 연료가 촉매층에서 연소되지 않고, 촉매가 없는 상단에서 연소되는 비정상적 운전 현상을 뜻한다.
융합연구단 소속으로 KBR사가 안고 있는 이상 연소 해결 방안을 찾던 중 이 박사는 메탄을 수소로 바꿔 공급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꺼냈다. 부생가스로 나오는 메탄을 촉매에 반응시켜 수소로 바꿔 촉매 재생기로 공급함으로써 이상 연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2단계 연구에 합류한 조성권 박사와 힘을 보태 기존 촉매 방식 NCC 공정의 촉매 재생기에 연료유 대신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열원으로 공급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촉매 부분 산화 기술(CPOx)'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박사는 CPOx 기술을 실제 플랜트에서 이를 검증해 석유화학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데이터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
◇쉽지 않은 해외 기술이전 성사…기계연 역대 최대 규모 '대박'
이 박사의 CPOx 기술에 KBR사는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전 세계 정유 및 석유화학 플랜트 엔지니어링 분야를 호령하는 글로벌 기업이 군침을 흘렸고, 자연스럽게 기술이전 협상 테이블에 안게 됐다.
그는 "연구개발만 하던 입장에서 글로벌 기업과 기술이전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부담이었고, 고충이었다. 그들의 협상 패턴과 방식을 전혀 모른 채 협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요구한 것들을 해결하면 또다른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커다란 난관과 어려움에 봉착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끈질지게 그들이 요구하는 데이터를 어떻게 해서든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더욱이 정유·석유화학 산업의 엔지니어링, 건설, 서비스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 오고 있는 KBR사가 보유한 기술·시장 정보 등을 공유하지 않아 CPOx 기술료를 어떻게 산정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협상카드를 어떻게 제시해야 할 지 막막했다고 토로했다.
이 박사는 "첫 만남 때 멘붕으로 시작했던 기술이전 협상이 기계연 기술사업화실과 변호사, 변리사, 협력 기업 등 주변의 도움으로 어두웠던 긴 터널을 서서히 빠져 나오게 됐고, KBR사와 기술협의를 처음 시작한 지 2년 만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연구 시작 단계부터 현장 수요에 기반한 목표 설정을 통해 문제 발굴, 솔루션 개발, 공정 적용성 확보를 추진해 이룬 성과"라고 평가했다.
◇어두운 긴 터널 뚫고 기술협상 '담판'… "정보·경험 공유" 필요
KBR사와의 기술이전 규모는 비밀유지계약(NDR)로 인해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100억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기계연 역대 최대 규모의 해외 기술이전 성과이자 출연연 중에서 이런 규모로 기술을 이전한 사례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 박사는 난관을 뚫고 해외 기술이전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핵심 요인들을 짚어줬다. 그는 "우선 기술개발 전략이 좋았다. 협상 과정에서 협력 기업 등 외부 리소스도 잘 활용했다"며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우리의 기술에 대한 신뢰를 강하게 주기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 데이터를 악착같이 제시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해 고객이 우리의 기술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 거 같다"고 피력했다. 기술 사용에 있어 권리상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특허침해분석(FTO)나 특허 기반 연구개발(IP-R&D) 통해 철저하게 조사하고, 기술의 현장 적용 가능성을 제시했던 점도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박사는 "돌이켜 보면 한 달 내 끝날 거 같았던 기술이전 협상은 1년 가까이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의외로 협상은 조정이 아닌 'YES'나 'No'에 가까운 논의가 많았고, 기술만으로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이전을 진행하다가 협상이 불발되고, 엎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기술이전을 하기 위해 해야 일들과 기술이전을 하면 생기는 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POx 관련 기술료 수익은 KBR사가 플랜트 공장을 짓고 가동하는 2∼3년 후에나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출연연 연구자들이 기술이전과 사업화 분야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선 관련 정보와 경험 공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박사는 "출연연 연구자들이 기술이전에 더 많이 오픈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계약서 이해나 기술가치 평가 등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교육 등이 필요하다"며 "기업들이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팔기까지 데스밸리가 존재하듯, 기술사업화 과정에도 데스밸리이 있는데 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이 환영해 줄 만한 기술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며 "선수에만 의존하는 성과 창출이 아닌 선수와 협회, 시스템이 함께 움직일 때 지속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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