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소 학원’ 도전기…숙제 봐주던 아빠가 ‘영재’ 된 사연

김은형 기자 2024. 11. 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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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생각하는황소’ 학원 입학 테스트 현장. 한겨레 자료사진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2024년 11월14일 새벽.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날이다.

나는 수능시험 세대는 아니지만, 학력고사 전날 어땠더라? 그 긴장과 불안은 30년이 더 지났어도 다시 떠올리기 싫다. 수능시험이, 대학 입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6년, 요즘은 사실상 12년 동안 이날의 결과를 위해서 달려온 학생들에게 수능시험 따위 중요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게 더 맥빠지는 일이다.

물론 모두가 6년간, 12년간 착실히 준비하는 건 아니다. 수험생 당사자도 아닌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일 수능시험이라고 오전 수업만 마치고 와서 14시부터 24시까지 휴대폰과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낸 우리 집 청소년 같은 학생도 있다. 왜 휴대폰 관리를 엄격하게 안하냐고 꾸짖는 분! 주소 좀 알려주세요. 현관에다가 쓰레기 투척이라도 하고 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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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리 집 청소년도 요새 입학 시험 전쟁으로 다시 화제가 됐던 ‘O소 학원’ 학생이었던 적이 있다. 문득 궁금해진다. ‘초등 수능’이라고 불릴 정도로 입학 경쟁이 치열하다는 O소 학원과 실제 입시 결과의 상관성은 얼마나 될까? 사교육의 결과는 언제나 신비로운 베일에 둘러싸여 있다. 학원마다 재원생들의 대학 입학 성공 사례를 붙여 놓고 자랑하지 않냐고? 그 목록에는 ‘이 학원 두 달 다닌 게 내 인생 최대 실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최소 3분의 1은 되니 그 목록을 믿어서는 안 된다. 여튼 지금은 전국구 인기 학원이 된 우리 아이 ‘O소 학원 체험기’를 써보고자 한다.

I군(그러니까 우리 집에 상주하는 그 휴대폰성애자)은 초등학교 4학년 진급을 앞두고 이즈음 O소 입학시험을 봤다. 지금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인기학원이라 여러 친구들이 시험을 본다고 해 따라서 등록을 했다. 나처럼 학원 정보가 많지 않은 일하는 엄마일수록 유명 대형 학원에 대한 의존도는 높다. 아직 소문나지 않은 진짜 괜찮은 학원을 찾아내는 건 이른바 사교육 전문가(a.k.a 열혈 전업맘)의 영역이다.

아이는 턱걸이 합격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학원의 강점이라고 주장하는 게 ‘엉덩이 힘을 길러준다’는 거다. 그날 배운 수업의 연습문제를 다 풀어야 집에 보내주기 때문에 4시간에서 길면 6~7시간까지 학원에 앉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시작된 코로나 시국으로 자습시간이 없어지고 두 시간 수업만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엉덩이 힘을 기를 기회를 놓친 셈인데, 그나마 두 시간으로 끝냈기에 1년 동안 학원 다닐 수 있었지 원칙대로 대여섯 시간씩 앉아 있어야 했다면 때려치우는 시간이 더 빨라졌을 것 같다.

두 달 정도는 그럭저럭 버텼다. 하지만 4,5,6학년 3년 치 공부를 1년 동안 몰아서 하는 커리큘럼을 허겁지겁 따라가며 점차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소근육 발달이 더딘 4학년에게 중고등 입시학원 스타일의 판서식 수업에서 필기를 끝까지 ‘그려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4학년이 보는 교재에 웬 고등학교 때 풀던 삼각형 한 귀퉁이 면적을 구한다거나 이제는 기억도 까무룩한 순열 조합의 공식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가 말이다. 요즘 학부모의 가슴을 웅장하게 하는 이른바 ‘극심화’ 문제들이었다.

숙제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아이 말고 부모의 전쟁. 저녁 약속도 안잡고 퇴근해 숙제에 매달리는 날들이 시작됐다. 공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아빠에게 이 임무가 돌아갔고, 일주일에 두세번씩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소리 지르고 읍소하는 대환장 스펙터클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 ‘엉덩이’ 학원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숙제를 끝내야 하는 게 이 학원의 특징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어느 날 동영상 수업 때 교사가 아이들한테 묻는 걸 슬쩍 곁에서 보니 절반은 숙제를 돕는 과외 교사가 있다고 손을 들었다. 추측건대 나머지 중 절반은 우리 집처럼 부모가 갈아 마실 테고, 많아야 4분의 1이나 이 학원의 ‘엉덩이’ 교육이념을 제대로 수행했을까 싶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이가 수학 자체에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수학을 못하는 애야” “수학 진짜 싫어”하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고등학생이나 척척 풀 문제를 앞에 두고 “나는 수학을 못해”라고 짜증을 내는 에스에프적 상황을 앞에 두고 종료 버튼을 누를 때가 왔다는 걸 깨달았다. 중학교 선행에 들어갈 즈음 학원을 그만뒀다. 자신이 수험생처럼 쌍심지 켜고 수학을 공부하며 아이를 가르친 남편은 지금도 이 학원을 보낸 게 최대 실수라는 말을 종종 한다. 아이들은 작은 성취를 쌓으며 큰 도전을 배워나간다고 하는데 첫 수학 학원부터 큰 성취를 위한 큰 좌절을 경험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극심화 알러지’에 영향을 준 건지는 알 수 없다.

물론 모두가 우리 애 같은 경험을 한 건 아니다. 함께 학원에 들어갔던 친구 대략 10명 중 2명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3년 동안 착실히 학원에 다녔다. 그처럼 ‘성실’ 유전자를 타고 난 아이들은 사춘기 나이에도 질풍노도가 그들만은 피해 가는 듯 변함 없이 교육방송 청소년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부럽다, 부러워.

다만 교재의 강도로 봤을 때 당장 내일 대입 시험을 치러도 될 것만 같은 까다로운 커리큘럼을 통과한 이 학원 출신들이 중학교 들어와 압도적인 성적을 내는가 하면 딱히 그렇지는 않은 거 같다. 그 학원을 다니지 않았어도 좋은 성적을 내는 친구들은 많다. 중학교만 와도 이럴 진대 대학 진학과 그 학원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극심화, 몇 년 치 선행 같은 말들이 초등 부모들을 지속적으로 유혹할 수 있는 것일 테다.

그래서 O소 학원을 뛰쳐나온 이후 I군의 수학 공부는 어떻게 됐을까? 다른 대형 학원과 친구가 다닌다는 공부방식 소형 학원 등을 몇달씩 전전했으나 강력한 ‘숙제 거부’ 유전자의 발현으로 중도포기한 뒤 아빠표 수학에 도전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빠의 수학 실력만 나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어 그 아빠가 수능 시험에 도전해볼까 고민 중이라는 후문이 떠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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