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같은 옛 도살장·삼국지 새긴 ‘빛의 문’… 역사 오롯이 머금은 ‘메가시티’[박경일기자의 여행]
서남쪽 조용한 부촌 ‘쉬자후이’
서학 학자 ‘서광계’ 이름딴 곳
고딕양식 성당 등 이국적 매력
작년 문 연 핫플 ‘쉬자후이 서원’
광섬유물질로 만든 ‘패루’ 눈길
1912년 예수회 고아들이 만든
투산완 박물관 목조작품 모사
라오시먼역 ‘11번버스 여행’
1553년 현성의 자취 따라다녀
단돈 2위안으로 색다른 경험
도살장의 재탄생 ‘라오창팡’
근대건축 보전한 복합문화공간
가축 옮기려 넓게 지은 통로와
원통형 중정 어우러져 독특한 멋
상하이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중국은, 한국인에게 ‘좋은 여행지’일까
중국은 한국인에게 ‘로망의 여행지’가 아니다. 한국인 여행자에게 중국이 ‘매력적인 여행목적지’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양국 관계의 갈등이나 상대 국가 국민에 대한 비호감이 단단히 한몫을 한다. 중국인들의 매너가 때로 무례하게 느껴진다거나, 유명 관광지마다 내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혼돈상태’라는 점도 한국인 여행자들이 중국을 기피해온 이유다. 중국여행을 결심했다고 해도 적잖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입국 비자’ 제도가 걸림돌이었다. 서방의 인터넷 포털사이트 접속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도 적잖이 불편했다. 구글 지도도, 네이버 포털사이트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도 중국에서는 ‘먹통’이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중국 정부가 돌연 내년 말까지 한국인 여행자의 무비자입국을 허용했다. 급작스러운 조치 뒤의 속셈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어찌 됐든 중국여행이 한결 쉬워졌으니 여행자 입장에서는 반길 만한 일이다. 비자 발급 과정 없이 오늘이라도 비행기 표만 사면 당장 떠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은 ‘심리적 거리’를 크게 좁힌다. 무비자 입국 조치 이후, 중국여행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건 그래서다.
한 나라를 여행하는 방식은, 그 나라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달라진다. 순서는 비슷하다. 초기에는 굵직굵직한 명소를 찾아가지만, 이해가 높아지면서 점차 세밀한 무늬와 결을 들여다보게 된다. 중국여행에 관한 한 한국 여행자들은 아직 ‘초심자’다. 명소 위주의 관광이 대부분이다. 익숙한 여행자들이 소도시까지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경관을 넘어 문화나 생활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일본과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 중국을 여행하는 몇 가지 방법
한국인이 중국을 여행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중국의 내로라하는 경관 명소나 역사가 스민 공간을 따라가는 방법이다. 예를 들자면 ‘장가계(장자제·張家界)’나 ‘계림(구이린·桂林)’ 또는 삼국지 배경을 따라가는 ‘장강삼협(長江三峽) 크루즈’가 이런 부류다. 중년 이상의 한국인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전통적 여행이다. 여행자들은 수묵화 속 풍경 같은 기이한 절경 앞에서 감탄하거나 ‘삼국지’ 속 인물의 생생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중국을 여행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경제 발전과 성장의 가장 앞줄에 서 있는 이른바 중국의 ‘1선(一線) 도시’의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에 입이 딱 벌어지는 거대 도시를 탐험하는 여행이다. 1선 도시 여행의 주된 관심사는 도시의 휘황함과 욕망이다. 옛것보다 새로운 것에 더 관심이 간다. 미식과 쇼핑이 중심이 된다는 것도 특징이다. 주로 젊은이들이 중국을 여행하는 방식이다.
이제 다른 방식의 중국 여행을 제안한다. 가까운 시간을 더듬어 가면서 중국을 차분하고 진지하게 하는 여행에 대한 얘기다. 중국은 사실 ‘여행하기 불편한’ 나라다. 중국어를 모르면 스마트폰도 무용지물이고, 식당의 메뉴판 한 줄도 읽을 수 없다. 대도시만 벗어나도 대중교통편이 잘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중국 여행은 다른 여행지가 대체할 수 없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좋든 나쁘든 ‘중국의 시간’은 우리와 연결되고 겹쳐지기 때문이다.
# 쉬자후이. 서(徐) 씨 성을 가진 사람들
중국 상하이(上海) 서남쪽에 상하이의 16개 구(區) 중 하나인 ‘쉬자후이(徐家匯)’가 있다. 먼저 그곳으로 간다. 한국 관광객에게 상하이 쇼핑이라면 마천루 즐비한 ‘난징루(南京樓)’부터 떠올리지만, 쉬자후이는 난징루의 떠들썩함과 대조되는 차분한 분위기의 고급 쇼핑가다. 휘황하기로는 난징루가 으뜸이지만, 상하이 사람들은 ‘진짜 부자는 쉬자후이에 있다’고 할 정도다.
쉬자후이란 지명(地名)은 명나라 말기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서광계(徐光啓)에서 왔다. 400여 년 전쯤 서양의 과학과 문명을 익혀 중국 근대의 문을 열었던 인물이다. 고위직 관료이면서 상하이 최초의 천주교 신자였고,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리치의 친구였다. 평생 과학적 실천을 주장해온 그는 대포를 만들었고, 고구마재배법에 몰두했고, 천체를 관측하고 달력을 개정했으며, 기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서광계의 후손, 그러니까 ‘서(徐)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해서 ‘쉬자(徐家)’이고, 중국어로 ‘후이’라 발음하는 ‘물 돌아 나갈 회(匯)’ 자는 주변에 3개의 하천이 한데 모여서 흐른다고 붙여진 것이다. 본래 이곳의 지명은 하천의 이름을 딴 ‘파화후이(法華匯)’였는데, 중국이 국가의 무게중심을 과학기술 발전과 개혁개방의 가치 쪽으로 옮기면서, 서광계의 업적과 정신을 기념한다며 쉬자후이로 개명했다.
모든 시작은 종교였다. 서광계는 1603년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했다. 천주교를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그는 서양 학문, 즉 ‘서학(西學)’을 접했다. 서구의 정밀한 수학적 사고에 매료된 그는 서양의 과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지금도 한자문화권에서 널리 쓰이는 기하와 수학 관련 용어들이 죄다 그의 번역을 거친 것이다. 기하, 평행선, 직각, 예각, 삼각형, 유리수, 무리수….
# 명나라의 과학이 조선으로 전해지다
수학자이자 농학자이며, 정치가이자 군사전문가였던 서광계의 바탕에는 늘 서양의 수학과 과학적 사유가 있었다. 서광계가 서양의 과학을 만난 장면을 복기해보자. 때는 16세기 말, 명나라 말엽 국운이 쇠퇴하면서 중국 전통과학은 힘을 잃고 있던 시기였다. 새로운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외부세계의 자양분이 절실히 필요했던 상황. 그때 때마침 대항해시대를 맞이해 동쪽으로 확장되던 초기 유럽의 르네상스가 중국까지 전해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서양과 중국의 두 과학적 전통은 충돌하고 교류했다.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서광계다. 그는 중국이 주창하고 있는 이른바 ‘과학굴기(굴起)’의 뿌리로 인정받고 있다.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그가 수시로 불려 나오는 이유다.
쉬자후이에는 서광계의 묘와 기념관이 있다. 무덤은 서광계가 농사서적을 쓰면서 고구마 재배실험을 하던 농장 자리였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훼손되고 복구되기를 반복했다는 서광계의 묘는, 특이하게도 5개의 봉분이 이어진 모양이다. 서광계의 가문은 대대로 천주교인이었는데, 묘에는 서광계와 부인, 그리고 손자 부부 4쌍까지 모두 10명의 가족이 함께 묻혔단다. 묘 앞의 대리석 십자가 앞면에는 라틴어 비문이 새겨져 있다.
묘 근처에는 서광계 기념관도 있다. 기념관에는 조선의 실학자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쳤던 그의 생전 업적이 정리돼 있다. 당시에 명나라의 일은, 명나라에서 끝나지 않았다.
서광계의 농업 관련 저술은 조선 후기 농학발전과 농사기술 향상의 큰 영향을 미쳤다. 농업 외에도 천문·역법·기하·수리 등 자연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조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미 명나라의 국력이 쇠퇴할 대로 쇠퇴한 상황이라 없던 일이 되긴 했지만, 서광계는 조선이 후금과 가까워질 것을 우려해 ‘조선을 속국으로 삼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 중국에서 만난 프랑스 고딕양식 성당
쉬자후이에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잘 보지 못했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장소들이 있다. 상하이 여행 얘기를 하면서 쉬자후이를 앞세운 이유다.
먼저 성당. 쉬자후이에는 ‘쉬자후이 천주교당’이 있다. 프랑스풍의 고딕양식으로 고풍스럽게 지어진 유서 깊은 성당이다. 유럽의 어디쯤 와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성당 안팎의 면면은 이국적이다. 바깥에서 보는 첨탑도 그렇고, 내부에서 보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도 그렇다.
성당이 처음 지어진 건 1905년. 성당이 세워진 곳이 하필 쉬자후이인 건, 서광계로부터 출발하는 종교적 전통 때문이다. 서광계 가문과의 인연으로 예수회가 쉬자후이에 본부를 세운 이래, 이곳은 오랫동안 종교적 공간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선교 방식은, 선의를 베풀어 이교도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었다. 선교사들이 쉬자후이 주변에 수도원을 비롯해 학교, 박물관, 도서관, 천문대, 고아원 등을 지었던 이유다.
성당은 종교활동이 금지됐던 문화혁명 10여 년간 창고로 방치됐고, 이후에도 한동안 폐쇄됐다가 개혁개방의 시기인 1979년 11월에 다시 문을 열었고, 지난 2017년에 대대적으로 보수작업을 거쳤다.
쉬자후이 성당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성당이 지어진 자리에 있던 예수회신학원의 소성당에서 김대건 신부에 이은 한국의 두 번째 신부, 최양업이 사제서품을 받았다. 최양업은 지금으로부터 187년 전, 열여섯의 나이에 7개월에 걸쳐 5000㎞가 넘는 길을 걸어 마카오로 갔다. 아편으로 혼란에 빠진 마카오를 피해 최양업은 필리핀 마닐라, 중국 창춘(長春)을 거쳐 이곳 상하이의 쉬자후이에 와서 오래 머물렀다. 서광계도 그렇고, 최양업 신부도 그렇다. 좋건 싫건 중국은, 조선이 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이기도 했다. 종교와 사상, 지식이 흐르던 자취가 중국에 아직도 남아 있다.
# 상하이의 떠오르는 핫플, 쉬자후이 도서관
쉬자후이 성당 앞마당 한쪽에는 3층짜리 도서관이 있다. ‘쉬자후이 서원(書院)’으로 이름을 내건 도서관이다. 2023년 1월 문을 연 도서관은 감각적인 설계로 현지 주민들에게는 물론이고,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도서관을 설계한 이는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 도서관을 건축한 지난해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자 덩달아 그가 설계한 쉬자후이 도서관에도 눈길이 쏠렸다. 여담이지만 치퍼필드의 건축작품은 한국에도 있다. 서울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사옥이 그의 설계다.
쉬자후이 도서관은 연 면적 6000여 평 규모의 대단위 복합도서관이다. 말이 도서관이지 책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전시강좌도 열리고, 문화상품을 판매하며, 관광명소로도 활용된다. 도서관은 성당 건축의 화려함과 대조된다. 외부가 우아한 느낌이라면, 내부 공간은 놀랍다. 정면으로 펼쳐지는 좁고 긴 아트리움이 깊은 공간감을 선사한다. 가장 인상적인 건 아트리움 공간 안쪽의 세워진 ‘빛의 문(光界之門)’이다.
빛의 문은 3D 프린팅 기술로 재현한 실물 크기의 패루(牌樓). 패루는 과거 중국에서 큰 거리에 길을 가로질러 세웠던 문(門)의 형태를 한 건축물.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기념할 만한 공간의 장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만든 것인데, 이즈음에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차이나타운 입구를 알리는 공통적인 상징물이 됐다.
빛의 문이 플라스틱 광섬유로 모사한 건 실존하는 패루다. 진짜 패루는 도서관에서 멀지 않은 ‘투산완(土山灣) 박물관’에 있다. 패루가 건너온 100년이 넘는 시간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서 그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 10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패루
투산완 박물관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고아원 자리에 세워진 박물관이다. 사회사업의 형태로 운영되던 고아원은 1864년에 만들어져 1960년까지 명맥을 이었다.
당시 선교사들은 고아들에게 자립의 생계수단으로 공예를 가르쳤다. 체계적인 서양식 교육에 힘입어 고아원은, 뜻하지 않게 일약 중국 미술교육의 산실이 됐다. 여러 세대에 걸쳐 유명한 예술가를 배출하면서, 고아원은 이른바 ‘상하이 스타일’의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다.
도서관의 ‘빛의 문’이 모사한 패루는 이 고아원의 고아가 만든 것이다. 1912년 독일 선교사의 지도 아래 고아 수십 명이 1년여에 걸쳐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높이 5.8m, 너비 5.2m의 패루는 4개의 기둥으로 세운 3개의 문이다. 패루는 직접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밀하고 정교한 조각으로 뒤덮여 있다. 기둥마다 금방이라도 꿈틀거리며 날아오를 것 같은 용이 장식돼 있으며, 몸체에는 삼국지 등장 인물의 이야기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바닥에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사자를 자그마치 42마리나 조각해 놓았다. 박물관 입구에 전시해놓은 패루 앞에 서면, 말을 잃은 채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이렇게 공들여 만든 패루는 19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태평양 만국박람회’에 출품됐다. 1933년에는 잇따라 열린 시카고 만국박람회와 뉴욕 만국박람회에 차례로 참가했다. 이후에 패루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미국 인디애나대의 수집품이 됐다. 그러다 결국 1980년대 초에 한 미국인의 손에 넘어가 분해돼 판매되기에 이르렀다. 팔리지 않고 남아 있던 분해된 패루는 1985년 북유럽의 한 건축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는 남아 있는 패루 조각을 다 수집해 이듬해 스웨덴으로 가져갔다.
중국이 수소문 끝에 패루를 중국으로 되가져 온 건 2009년 6월. 자그마치 100년이 넘는 해외 망명을 거쳐 패루는 자신이 만들어진 상하이 쉬자후이로 되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패루는 7개월의 복원 기간을 거쳐 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 때 투산완 박물관을 개관하면서 박물관 입구 전면의 공간에 전시했다.
투산완 박물관의 패루는 쉬자후이 도서관에서 3D 프린터로 모사한 패루와 함께 보길 권한다. 파란만장한 과거를 품은 조용하고 무거운 패루와 빛으로 그려낸 미래적인 가벼운 느낌의 패루를 비교해볼 수 있어서다.
# 버스 타고 옛 성벽을 돌아보다
상하이 여행에서 과거의 시간을 따라가는 여정으로 ‘11번 버스’ 타기를 추천한다. 중국 상하이시에는 ‘상하이현(縣)’이 있었다. 1292년에 처음 등장했으니 700여 년 전의 일이다. 상하이현에는 성(城)이 있었다. 1553년 지어진 성은 신해혁명 이듬해인 1912년에 허물어져서 도로가 되고 말았지만, 수백 년의 세월에도 옛 현성(縣城)의 자취가 군데군데 남아 있다.
시내를 원형으로 순환하는 11번 버스 노선은 옛 성의 성벽을 정확하게 따라간다. 1962년 이래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는 버스 노선이 옛 지도의 성벽과 정확하게 겹친다. 옛 성에 붙여졌던 성문 8개의 이름이 버스 정류장 명칭으로 지금까지 남았다.
버스의 출발지는 지하철 라오시먼(老西門)역에서 가깝다. 지하철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노선은 짧다. 순환선 노선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라오시먼역으로 되돌아오는 데 20분쯤 걸린다. 버스는 성황묘와 예원, 난징루 등 상하이의 대표적 관광지를 지나가니 관광을 겸해 타는 것도 좋겠다. 버스요금은 2위안. 타는 법도 간단하다. 버스에 탈 때 1위안짜리 동전 두 개를 요금통 안에 넣으면 된다.
상하이에서 과거의 시간을 따라가는 여행지로 추천하는 또 한 곳이 라오창팡(老場坊)이다. 공간재생을 통해 독특한 느낌으로 재탄생한 라오창팡은 1933년 상하이시에서 만든 도살장이었다. 영국의 도살장을 모방해서 지은 라오창팡은, 근대기 설립된 도살장 중 완벽하게 보전된 유일무이한 건물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지상 5층 건물로 소 1000마리, 양 1500마리, 송아지 300마리, 돼지 300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이곳에서 하루 최대 1200마리의 가축이 도축됐다.
옛 도살장에서는 독특한 공간적 경험을 해볼 수 있다. 겉에서 보면 건물 형태는 직사각형. 외벽은 격자형 창호에 원형 모양의 패턴을 배치했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서면 공간은 원형이다. 중앙에 원통형의 중정을 뒀는데, 도살장으로 쓰던 중정으로 이어지는 회랑과 통로가 보여주는 조형적인 미감이 인상적이다. 가축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죽으러 가는 길이 그려내는 선이 미감을 빚어낸다는 게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운 느낌이랄까. 미로처럼 이어지는 비대칭의 기이한 공간은 도대체 지루할 틈이 없다. 상하이에는 근대건축을 역사문화 자산으로 바꿔낸 곳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기 라오창팡을 으뜸으로 꼽는 이유다.
■상하이와 루쉰
상하이 훙커우(虹口)에는 근현대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루쉰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이 ‘우치야마(內山)서점’ 옛터. 혁명 좌절로 실의에 빠져 상하이로 온 루쉰은 일본의 사회운동가 우치야마 간조(內山完造)가 운영하던 이 서점을 자주 드나들었다. 좌파 진보 서적을 주로 팔았던 이곳은 진보인사들이 모이는 교유 공간이었다. 옛 모습으로 재현해놓은 공간에서 그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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