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그릇 사달라셨는데… 끝내 외면한 그날이 야속하여라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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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잔'이라는 노래가 나오면 늘 떠오르는 이름 아버지.
평생 모든 걸 퍼주신 아버지가 사 달라는 몇 푼짜리 우동 한 그릇을 사주지 않은 채 나는 그깟 밀가루가 뭐가 좋냐고 하며 아버지를 집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사그라져가는 숨길 속에서 찾던 막걸리가 아닌 딸을 위해 일부러 우동을 선택했을, 이게 마지막일 수 있다는 느낌이셨을지 모르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깟 밀가루 음식 한 그릇보다 못하게 치부해버린 어린 딸내미, 다 커버린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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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잔’이라는 노래가 나오면 늘 떠오르는 이름 아버지.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는 막걸리를 정말 좋아하셨다. 아니 사랑하셨다. 주전자를 쥐여 주고 막걸리를 받아오라던 그 어린 날, 사춘기 딸내미는 동네 사람들이 안부 인사를 하는 게 부담스러워 싫다며 울기도 많이 했었는데….
남달리 풍채가 좋았던 아버지, 돈 많은 사장님 같다고 동네에서도 사장님으로 불린 아버지. 풍채만큼이나 돈을 잘 벌고, 막걸리를 좋아하는 만큼 누구에게나 인심이 너무 후했던 아버지. 쉬는 날이면 얄밉게 커가는 딸내미를 업고 호탕한 웃음으로 너른 마당을 뛰던 아버지.
막걸리에 섞인 아버지의 호탕한 웃음 뒤에 숨어 그저 받기만 하고 좋아했던 우리 모두. 비어가는 막걸리 주전자만큼 모든 것이 비어가는 아버지를 몰랐다. 호탕했던 아버지의 그늘져가는 얼굴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나. 결국 다 퍼주고 남은 건 병환과 줄어든 집 한 채였다. 그로 인해 노년에 가장이 되어버린 엄마.
병환은 갓 환갑을 넘긴 아버지의 좋던 풍채를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손에는 이기지도 못하는 막걸리를 들고 더 쭈글쭈글해진 아버지. 가장 노릇을 하며 아버지를 수발하는 엄마를 안쓰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새로운 가족이 먼저라며 병든 아버지를 모른 척 외면했던 나를 비롯한 자식들.
병원 진료 길에 엄마 대신 모시고 간 어느 날, 막걸리가 아닌 우동이 먹고 싶다며 사 달라신 아버지. 평생 모든 걸 퍼주신 아버지가 사 달라는 몇 푼짜리 우동 한 그릇을 사주지 않은 채 나는 그깟 밀가루가 뭐가 좋냐고 하며 아버지를 집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우동을 사 달라는 아버지의 그 말이 내가 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되어버렸다.
우동을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예뻐라 업어 키웠던 그때 어린 딸내미랑 둘이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 텐데…. 젓가락 들 힘도 없는 분이 그 미끌미끌한 우동을 어찌 먹을 수 있냐고 무심한 말을 뱉어버린 딸내미. 좀 잘 살지, 환갑 나이 이제 한창인데 왜 이러고 사냐고 원망을 섞어 뾰족한 바늘 같은 말만 했다. 싸 터진 우동 한 그릇 뒤에 숨어 있던 아버지의 마지막 사랑을 기어코 외면해 버린 다 커버린 딸.
아마도 막걸리라면 진저리치는 어린 딸내미를 위해 드시지도 못할 우동을 택하셨을 아버지. 사그라져가는 숨길 속에서 찾던 막걸리가 아닌 딸을 위해 일부러 우동을 선택했을, 이게 마지막일 수 있다는 느낌이셨을지 모르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깟 밀가루 음식 한 그릇보다 못하게 치부해버린 어린 딸내미, 다 커버린 딸.
오늘 길 가다 들른 휴게소. 아버지께 사드리지 못한 우동 한 그릇. 여기에 늘 있는데, 정작 사 달라신 아버지가 없다. 호탕한 얼굴 한번 빤히 쳐다보고픈, 아픈 얼굴 한번 보듬고픈 아버지가 없다. 김 나는 우동 한 그릇 바라만 보다가 후회와 나에 대한 원망으로 우동을 넘길 수가 없다.
큰딸 양영숙(고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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