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韓, ‘사슴사냥게임’ 돌입… 정권재창출 위한 협력체계 구축 시작[Deep Read]

2024. 11. 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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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준의 Deep Read - 윤 - 한 관계 새 국면
尹 대국민담화와 韓 긍정평가로 관계 재정립…‘성급한 차별화 = 여권 공동추락 초래’ 자각
대통령 - 당대표 갈등 조기 고착화는 공멸…‘팃포탯’ 반복 전략으로 행동하는 협력 구축해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윤 대통령의 7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 대해 한 대표가 긍정 평가를 내리고 확전을 자제하며 대야 투쟁 및 여권 통합에 나서면서다. 윤-한 관계는 파멸적 충돌을 부르는 ‘치킨게임’에서 상호 협력을 중시하는 ‘사슴사냥게임’으로 전환 중이다.

◇사슴사냥게임

한 대표는 8일 페이스북 글에서 “대통령께서 현 상황에 대해 사과하고 인적 쇄신, 김건희 여사 활동 중단, 특별감찰관의 조건 없는 임명에 대해 국민께 약속하셨다”고 전날 윤 대통령의 담화를 긍정 평가했다. 이후 한 대표는 윤 정부의 국정 운영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비판에 집중했다. 윤 대통령도 한 대표의 국정 쇄신 등 이른바 5대 요구를 하나씩 실천하는 모양새다.

게임이론 시각에서 보면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서로 상대를 굴복시켜 승리하려는 ‘치킨게임’에서 벗어나 서로 협력해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사슴사냥게임’으로 전환했다. ‘사슴사냥’은 ‘정권 재창출’을 뜻한다. 이 게임이 주는 함의는 사슴사냥이라는 큰 목적을 달성하려면 각자 토끼잡이라는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말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2대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은 ‘한동훈 고립화’, 한 대표는 ‘대통령과의 차별화’라는 토끼몰이에만 열중했다. 그럴수록 사슴사냥은 물 건너간다.

게임이론에서 ‘게임의 유형’을 바꾸기 위해선 ①목표 설정 ②지급구조 변경 ③시간적 요소 추가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 대표의 목표는 차별화를 통한 여권 장악이었다. 하지만 한 대표가 그동안 보여준 성급한 차별화 행보는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각종 지표가 이를 말해준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서 한 대표는 19%(7월 4주)→15%(9월 4주)→14%(11월 1주)로 지속적인 하락 추이를 면하지 못했다. 이재명 대표의 선호도(11월 1주)는 29%였다. 한 대표와 이 대표 간 선호도 격차는 3%포인트(7월 4주)에서 15%포인트(11월 1주)로 확 벌어졌다. 심지어 보수의 핵심 기반이 TK에서 한 대표(19%)와 이 대표(18%) 간 선호도에서 차이가 거의 없었다. PK에서는 한 대표(21%)가 이 대표(22%)에게 오차 범위에서 뒤졌다.

◇한동훈의 자각

최근 다른 데이터들도 한 대표에게 유리하지 않은 결과를 안겨줬다. 데일리안·여론조사공정이 ‘차기 대통령 후보 중 가장 비호감이 누구인가’를 묻는 조사(10월 22일)에서 한 대표(33.4%)가 이 대표(29.0%)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최근 한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 지지율도 민주당에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 조사(11월 2주)에서 민주당은 36%를, 국민의힘은 29%를 기록했다. 한 주 전엔 양당이 32%로 같았다. 1주일 만에 민주당에 7%포인트 차이로 뒤진 결과는 집권여당에 충격적 소식이었다. 여당 대표의 대통령에 대한 성급한 차별화가 대표의 부상이라는 디커플링이 아니라 여권의 공동 추락이라는 커플링을 초래한다는 점을 말해주는 지표로 해석됐다.

여권 1, 2인자 간 갈등의 조기 고착화는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한 대표는 이런 데이터들을 통해 성급한 차별화가 아니라 여권 통합·보수 결집·대야 투쟁 강화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자각한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한 대표는 지향하는 바가 다음에 대선을 향해서 가겠다는 것인데,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대통령과의 관계가 원활하게 가야 한다”고 조언한 건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김 전 위원장은 “두 분이 조화를 이뤄야 만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사슴사냥게임’의 본질을 지적한 발언이다.

여권 차기 대권 주자가 현재의 권력인 대통령과 차별화하려면 두 개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권력 임기 말이어야 하고, 둘째 대통령이 차별화의 시공간을 허용해야 한다.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돌지도 않은 상황에서 세력과 기반이 부족한 한 대표가 성급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은 자기 정치에 치중한다는 인상을 줬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한 대표의 차별화 행보를 겨냥해 “되지도 않는 대권 놀이”라고 했다.

◇‘팃포탯’ 전략

이제 윤-한 관계는 갈등에서 협력으로 변곡점을 맞이했다. 문제는 협력게임이 지속할지 여부다. 한국 정치에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간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두 권력은 일회성이 아닌 ‘반복게임’(repeated games)을 할 수밖에 없다. 반복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과거의 행동을 바탕으로 미래의 결정을 내린다.

로버트 액설로드 교수는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이 반복게임에서 가장 효과적임을 입증했다. 한쪽이 협력하고 상대가 협력하면 계속 협력하지만, 한쪽이 배신하면 상대도 배신하는 방식이 이어진다. 이 전략은 간단하면서도 상대에게 협력을 유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여권 전체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길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반복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협력적인 행동이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신뢰가 회복되고, 굳건한 당정 협력 체제가 구축되기 때문이다.

변곡점을 맞이한 가운데 윤 대통령의 과제는 국정 쇄신과 인사 혁신을 해나가면서 김건희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 약속을 지키고 당과 소통·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모인다. 또 한 대표 역시 대통령과의 반목과 대립에서 벗어나 윤석열 정부의 성과를 띄우며 효과적인 대야 투쟁으로 리더십을 세우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여권은 전례 없는 큰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7일 기자회견에서 한 대표와의 갈등설에 대해 “공통·공동의 과업을 찾아 나가고 공동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할 때 강력한 접착제가 된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서로를 압박하고 대립하는 전면전을 계속 벌인다는 건 승자 없이 여권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는 ‘치킨게임’이 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제 두 사람이 정권 재창출이라는 사슴사냥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행동하는 협력’을 지속하는 ‘팃포탯’ 반복게임을 벌이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게임이론의 교훈

사슴사냥게임·반복게임·팃포탯 등 게임이론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목표를 잘 설정하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유리한 게임을 만들어라. 자신의 역량을 너무 과신하거나 성급하게 상황을 오판하지 마라. 이득을 극대화할 최상의 전략을 구사하라.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용어설명

‘사슴사냥게임’은 장 자크 루소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으로, 두 명의 사냥꾼이 사슴을 잡기 위해 벌이는 협력과 변절을 설명하는 게임이론. 사냥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선 파트너와 협력해야 함.

‘팃포탯’은 경기자가 이전 게임에서 상대가 한 행동을 다음 게임에서 그대로 따라 하는 전략. 액설로드가 고안한 것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반복게임’을 통해 최고의 전략으로 평가받음.

■ 세줄요약

사슴사냥게임 :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돌입. 윤-한 관계는 파멸적 충돌을 부르는 ‘치킨게임’에서 상호 협력을 중시하는 ‘사슴사냥게임’으로 전환 중. 여권의 사슴사냥은 정권 재창출.

한동훈의 자각 : 여권 1, 2인자 간 갈등의 조기 고착화는 공멸의 길. 당 지지율 하락, 한동훈 선호도 추락 등 최근 지표는 당 대표의 대통령에 대한 성급한 차별화가 여권 공동 추락이라는 커플링을 부른다는 것을 말해줘.

‘팃포탯’ 전략 : 반복게임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팃포탯’. 尹과 韓이 정권 재창출이라는 사슴사냥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상호 작용으로 ‘행동하는 협력’을 구축하는 ‘팃포탯’ 전략 구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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