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의 ‘캐즘’ 극복법

유수진 연합인포맥스 기자 2024. 11. 14.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Focus] 환경 탓 않고 정면 돌파!

● 벤츠·포드 상대로 연이어 ‘빅딜’ 따내
● 고전압 미드니켈·LFP·원통형으로 제품 다각화
● 2030년 매출 2배·EBITDA 마진율 10% 중반 목표
● 배터리 제조→에너지 순환 기업 전환
● CEO 2년차 김동명, 성과로 입증해야 할 때

10월 7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비전공유회에서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사장)가 기업 비전 및 중장기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109기가와트시(GWh). LG에너지솔루션이 10월 15일 미국 완성차 기업 포드와 전기 상용차 배터리 셀·모듈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며 밝힌 계약 규모다. LG에너지솔루션이 지금껏 따낸 전기 상용차용 배터리 계약 가운데 최대다. 전기 상용차 약 100만 대, 일반 전기차 130만~140만 대에 탑재할 수 있는 양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매출액 기준 13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서 셀 시장가격을 반영해 보수적으로 산출한 값이다. 해당 계약은 LG에너지솔루션이 10월 들어 두 번째로 전한 신규 수주 소식이기도 하다. 10월 8일 메르세데스 벤츠 계열사와 50.5GWh 규모의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한 지 정확히 일주일 만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장기화하고 있는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상황에서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잇달아 대규모 수주를 성사한 데 이어, 창사 이래 최초로 비전공유회를 열고 사업 확장 계획을 발표하는 등 미래 준비에 열심인 모습이다.

이를 두고 LG에너지솔루션이 소극적 '버티기'를 넘어 적극적 '돌파'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러한 전략의 지휘자론 LG에너지솔루션을 이끈 지 2년 차에 접어든 김동명 대표이사(CEO·사장)가 나섰다.

인정받은 경쟁력… 벤츠·포드와 연이어 '빅딜'

LG에너지솔루션이 포드와 맺은 공급계약은 총 2건이다. 2027년부터 2032년까지 6년간 75GWh,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34GWh를 각각 공급한다. 지난해 양사가 추진했던 합작공장 물량에 신규 수주 물량이 더해져 규모가 커졌다. 앞서 이들은 튀르키예 앙카라 지역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JV)을 설립하려 했으나, 캐즘 장기화로 백지화한 바 있다.

회사 측은 계약상의 이유로 예상 매출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선 최소 13조 원 이상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가 발표한 지난해 배터리 셀 가격(1kWh당 89달러)을 반영해 계산한 추정치다. 특히 셀뿐 아니라 모듈까지 공급한다는 점에서 매출 규모가 더 클 거란 전망이 나온다.
9월 17~22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상용차 전문 전시회 ‘IAA 트랜스포테이션 2024’에 LG에너지솔루션이 전시한 파우치형 고전압 미드니켈 셀투팩(CTP) 제품.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은 해당 물량을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에서 전량 소화할 계획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고전압 미드니켈 파우치형 배터리일 가능성이 높다. 기존 주력 제품인 하이니켈 배터리 대비 원가가 비싼 니켈과 코발트 비중을 낮춘 제품이다. 대신 망간 함량을 높여 안전성을 제고하고 가격경쟁력을 강화했다. 고전압으로 에너지 밀도를 끌어올렸다는 특징도 있다.

이번 계약은 유럽 전기차 판매 둔화로 가동률이 떨어진 폴란드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확한 수치가 확인되진 않지만 현재 폴란드 공장의 가동률은 50%를 하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낮아진 가동률은 고스란히 실적 악화로 연결된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이번 계약은 연평균 18GWh 수준의 수주로, 폴란드 공장 생산능력 약 80GWh의 22.5% 수준"이라며 "공장 가동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포드는 해당 배터리를 유럽에서 판매하는 전기 상용차 '이-트랜짓(E-Transit)'에 장착할 것으로 전해진다. 친환경차 시장을 겨냥해 밀고 있는 차세대 제품이다. 내연기관 모델인 트랜짓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글로벌 경상용차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 등 크게 인기를 끌었다. 포드가 유럽 상용차 시장에서 1등을 굳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간판 제품이다.

이번 계약을 두고 LG에너지솔루션이 다시 한번 제품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 상용차 시장은 전기 승용차 대비 요구 조건이 까다로워 진입이 만만찮다. 전기 상용차를 만드는 완성차 업체들은 프리미엄 배터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상용차 특성상 평균 운행 거리가 길고 눈이나 비 등 극한의 환경에서 운행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이에 제품의 출력과 수명 등 품질과 기술력을 꼼꼼히 따져 배터리 공급사를 결정한다.

이러한 특성은 이미 기준을 통과한 배터리사엔 장점으로 작용한다. 기술적 난도로 인한 진입장벽이 높아 경쟁사가 많지 않은 까닭이다. 기본적으로 제품 평균 단가가 높고 장기 계약도 용이하다. 심지어 전기 승용차 대비 차량 1대당 탑재되는 배터리 양도 많다. 수익성과 안정성이 동시에 보장되는 고부가 시장인 셈이다.

성장잠재력도 뛰어나다. 글로벌 자동차 전문 리서치 업체 LMC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유럽 전기 상용차 시장은 연평균 약 36%씩 성장하고 있다. 2030년엔 유럽 상용차 시장의 절반 이상이 전기차로 채워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제품에 자신만 있다면 누구나 진출을 원하는 시장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10월 15일 김동명 대표는 포드와의 계약을 발표하며 "포드와의 이번 계약은 전기 상용차 시장에서 회사의 기술 경쟁력과 제품 경쟁력을 증명한 사례"라며 "탄탄한 현지 생산능력을 적극 활용해 유럽 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공고히 하고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배터리 제조 넘어 에너지 순환 비즈니스로"

포드를 비롯해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체결한 공급계약은 10월 7일 비전공유회를 통해 공개한 중장기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존 주력인 전기차용 하이니켈 배터리뿐 아니라 다양한 폼팩터(물리적 외형)와 조성(케미스트리·chemistry)을 갖춘 제품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고객을 다변화한다는 점에서다. 실제 최근 계약들은 공급 제품이 전부 제각각이다.
7월 1일 LG에너지솔루션과 르노가 프랑스 파리 르노 본사에서 전기차용 LFP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한 후 양사 경영진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7월 르노와 39GWh 규모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급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국내 배터리사가 체결한 첫 차량용 LFP 배터리 계약으로, 중국 업체들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장악하다시피 한 LFP 시장을 뚫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10월에 벤츠와 체결한 계약 내용은 2028년부터 10년 동안 50.5GWh 규모의 원통형 배터리를 납품하는 것이다. 공급 지역(북미)과 현지 공장 생산 제품을 고려하면 46파이(지름이 46㎜) 원통형으로 추정된다. 해당 계약은 LG에너지솔루션이 전통 있는 글로벌 완성차업체에 처음으로 원통형 폼팩터를 공급하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간 원통형 제품군의 전기차 고객 포트폴리오는 스타트업 중심이었다.

배터리 제품 및 고객 포트폴리오 다양화는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 제조'를 넘어 '에너지 순환 비즈니스'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며 밝힌 4대 중장기 전략 가운데 하나다. 나머지는 △에너지저장장치(ESS)·도심항공교통(UAM) 등 비전기차(Non-EV) 사업 확대 △서비스형 배터리(BaaS)·서비스형 에너지(EaaS) 등 소프트웨어·서비스 영역 사업 기반 확보 △전고체·건식 전극 공정 등 차세대 전지 기술 리더십 강화다.
LG에너지솔루션의 비전, 중장기 전략, 핵심 가치. [LG에너지솔루션]
‌전반적으로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전기차 배터리 비중을 낮춰 사업 안정성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전기차 캐즘의 직격탄을 맞아 사업다각화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달은 결과로 볼 수 있다. UAM과 선박, 로봇 등 신규 하드웨어에 대한 역량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영역으로도 사업을 확장해 외생변수에 휘둘리지 않는 탄탄한 사업구조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다.

이를 통해 2028년까지 매출을 지난해(33조7455억 원) 대비 2배 이상 성장시키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세액공제 혜택을 제외하고 10% 중반의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 마진율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비전공유회에서 김 대표는 "앞으로 '에너지로 세상을 깨우다(Empower Every Possibility)'라는 비전 아래 모든 가능성을 사업화해 나가고자 한다"며 "더는 배터리 제조업에 머무르지 않고 '에너지 순환'을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차 김동명, 구체적 성과 낼지 관건

업계에선 LG에너지솔루션이 왜 이 시점에 이런 발표를 했는지에 주목했다. 전기차 시장 캐즘의 여파가 여전한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시장과 이해 관계자에게 구체적 비전을 공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외부 환경을 탓하기보단 주체적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겠단 각오를 다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무엇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선포한 사업 확장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 대표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재계에서 CEO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사업 방향 재설정 중책을 맡았다는 건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오너의 신뢰가 굳건해야 가능한 일일뿐더러, 본인의 의지가 없다면 해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중장기전략의 실행 과정과 결과는 회사뿐 아니라 김 대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작지 않을 전망이다. 임기 2년차를 맞아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여서다. 통상 CEO 부임 첫해는 사업 현황과 각종 현안을 파악하고 새로운 변화를 위한 준비에 집중하는 걸로 충분하지만, 2년차부턴 그렇지 않다. 그간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성장을 본격화하고, 가시화된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

김 대표가 LG에너지솔루션 신임 대표에 선임된 건 올해 3월이지만 CEO 취임은 그보다 4개월 앞선 지난해 12월이다. 전임 권영수 부회장이 용퇴를 결심하며 배턴을 이어받았다. LG그룹 CEO 가운데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엔지니어 출신 CEO로 주목받았다.

세간의 눈길이 김 대표가 낼 성과에 주목하는 가운데, 김 대표 본인은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10월 비전공유회에서 임직원을 향해 "우리가 가진 코어 비즈니스 제품,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는 모든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지속적인 성과 창출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제게 부여된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여러분과 함께 꼭 해내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자신감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유수진 연합인포맥스 기자 sjyoo@yna.co.kr

Copyright © 신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