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유통에만 집중해선 소멸…'다름'을 만들어라

최성국 기자 이수민 기자 이승현 기자 박지현 기자 2024. 11. 1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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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전통시장](완) 사람과 사람·공간과 역사 연결고리
감성·문화 차별화 시도…"복합쇼핑몰과 상생방안 찾아야"

[편집자주] 광주지역 전통시장의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일일 배송과 상인 고령화 등 이유는 셀 수 없이 다양하다. 3년 뒤부터는 대규모 복합쇼핑몰이 줄줄이 들어선다. 총 4곳의 복합쇼핑몰과의 생존 경쟁을 대비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3년인 셈이다. 뉴스1은 전통시장 상인 100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광주와 전통시장에 주어진 '모래시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7회에 걸쳐 진단해본다.

8일 광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인 양동시장에 장보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024.11.8./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살아남을 것이냐, 소멸할 것이냐.'
(광주=뉴스1) 최성국 이수민 이승현 박지현 기자 = 대규모 복합쇼핑몰 4곳의 광주 입점이 가시화하면서 전통시장은 생사의 기로에 섰다.

이대로면 '소멸' 가능성이 더 크지만 전문가들은 소상공인·기업·지자체의 노력이 맞물리면 일부 상생이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광주 24개 전통시장 모두 생존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상생안을 마련하고 차별화에 집중한다면 시장의 전통적 명맥과 가치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14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전통시장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다. 정부는 그동안 수조 원을 투입했으나 침체를 막지 못했다"면서 "고령화된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는 사회복지 차원의 문제이지 경제학적인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합쇼핑몰과 전통시장의 가장 큰 차이는 '변화 적응에 대한 속도'"라며 "유통업체와 달리 전통시장은 소비자들이 편리하도록 변화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서울광장시장은 변화에 적응한 우수사례인데, 이 역시 유통이 아닌 관광이 주된 관광형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광주 전통시장이 '유통시장'으로 살아남으려면 기업의 판매 품목 규제와 같은 상생 방안이, 그렇지 않다면 문화형이나 관광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우선 과제는 지자체의 적극 개입이다. 전통시장이 받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시간적 분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우식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은 "현재 광주의 인구나 경제 규모로 봤을 때 복합쇼핑몰 3~4곳이 한 번에 들어오면 전통시장에 치명타를 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기 사무처장은 "상업 공간의 형태가 변화하고 때로 소멸하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나, 사라지는 속도에 따라 상인들이 감수할 고통의 강도가 달라진다"며 "상인들이 서서히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가치 있는 것을 남기는 정책 방향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통시장의 주차장 부족 등을 고려해 복합쇼핑몰과 전통시장을 오가는 관광형 셔틀버스 운영도 상생형 모델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뉴스1 취재진이 10월 한달간 광주 전통시장 상인 100명과 만나 들어본 전통시장의 현주소. 2024.11.14/뉴스1

복합쇼핑몰 건립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긍정적 효과를 주는 건 분명한 만큼, 복합쇼핑몰 현지 법인화를 통해 지역 자본의 유출을 막고, 지자체가 거둬들인 법인세를 공공기여금 등의 성격으로 소상공인에 재투자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오주섭 광주경실련 사무처장은 "대기업은 수익성 없이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 복합쇼핑몰 경쟁이 예고돼도 진출에 망설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광주에 수익성이 있다는 것"이라며 "지자체가 적절한 행정 지원을 통해 현지 법인화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전의 사례를 보면 기금 사용 용도가 한정돼 상인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지 못했다. '더현대 광주'가 제시한 것처럼 매출의 일정 부분을 지역 화폐로 환원해 소상공인에게 낙수효과를 주는 대책이 적극 시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쇼핑몰 건립 초기, 소상공인과의 상생을 목적으로 품목 차별화를 내세웠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규제 품목이 취급된 선례를 잊지 말아야 한다"며 지자체와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전통시장과 지역축제를 결합하고, 상시적 전통시장 행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기업 유통업체와 경쟁 경험이 있는 김성진 Y-마트 회장은 "김치축제, 충장축제 등 대형 축제와 전통시장을 결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상인회 차원에서 비교적 매출이 적은 평일에 다양한 행사를 만들거나 특가 요일을 만드는 전략 등이 고민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복합쇼핑몰 입점에 앞서 전통시장이 스스로 '강점'을 되살리고 자본의 논리를 이길 수 있는 특색 콘텐츠 개발 등 '차별화'로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해법도 제시됐다.

대인예술시장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조동원 한국관광공사 ESG 경영팀 차장은 "지속 가능한 전통시장을 위해 시설현대화와 지역이 갖춘 고유한 특색 발굴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시설현대화 단계에서부터 독특한 분위기와 경영전략을 수립해야 전통시장이 내·외연적인 확장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전통시장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곳으로 복합쇼핑몰과 온라인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면서 "단순히 유통에만 집중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오프라인은 구매 목적 이외의 다른 것을 채워야 하며 그 '다름'이 '소비자 유인 요소'"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시장의 감성은 복합쇼핑몰이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된 강점이 있다. '공간과 상인의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며 "공간의 경쟁력은 개인이 마련할 수 없기에 지자체가 '감성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 소비자가 머무르고 싶은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의 소멸을 막을 키워드는 결국 '젊은 세대'에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정진철 조선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인구 통계적으로 접근하면 세대 변화가 전통시장의 근원적 문제이자 해법이 될 수 있다"면서 "원하는 물건을 스마트폰으로 쉽게 검색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 젊은이들이 전통시장에 다가갈 수 있는 IT 프렌들리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전통시장 사업자들이 자녀들에게 가업을 승계하고, 청년이 시장에 도전해 세대를 전환해야 IT프렌들리 변화가 가능한데, 이는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전통시장 이미지 자체를 '즐거움이 있고 의미가 있는 곳, 멋과 흥이 복합적으로 있는 곳'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제언을 관통하는 핵심은 '인간미'다. 1913송정역시장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는 박미순 씨가 들려준 사람 냄새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겨울을 맞이하는 박 씨는 천금 같은 조언을 해줬다. "겨울은 갈 것이고 봄은 올 것이라고. 그렇게 버텨온 전통시장이라고."

star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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