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협정 이후 가장 중요한 ‘플라스틱 협약’…부산서 이정표 세울까?

정봉비 기자 2024. 11. 1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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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쫌’ 아는 기자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상징인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호\'(855t)가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협상회의(INC-5)를 앞두고 실효성 있는 플라스틱 협약을 촉구하기 위해 12일 부산항을 찾아 정박 중이다. 연합뉴스

Q. 플라스틱 협약, 무사히 성안될까요?

A. 부산에서 열릴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마지막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가 보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목표로 법적 구속력을 갖춘 국제협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회의엔 170여개국 정부 대표단을 비롯 4천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상 국제 환경조약이 탄생하는 데 10년 이상 걸리는 반면, 플라스틱 협약은 다섯 번에 걸쳐서 2년 안에 결실을 낸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유엔 기후변화협약 이후 최대 규모의 다자간 환경협약이자, 가장 중요한 협약으로 불리기도 하죠. 하지만 각 국가들의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협약 성안까지 과정이 험난해보입니다.

이번 협상의 핵심 쟁점은 폴리머 생산 감축입니다. 폴리머는 석유를 통해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의 재료입니다. 플라스틱은 생산부터 폐기까지 생애 전주기별로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유엔환경계획(UNEP)에선 플리스틱의 ‘전주기적 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협약 제정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문제는 이 ‘생산 단계’를 플라스틱의 원료인 폴리머의 생산부터로 볼지, 아니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제품의 생산부터로 볼지입니다. 이에 따라 각 국가들 입장이 다르거든요.

지난 4월21일 캐나다 오타와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제4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4)를 앞두고 시민들이 `플라스틱 시대 종말을 위한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유럽연합(EU) 등 플라스틱의 생산보다 소비가 많은 국가들이나, 플라스틱으로 인한 오염 문제에 영향을 많이 받는 군소도서국·개발도상국들은 폴리머 생산 단계부터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으로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야심찬 목표 연합’(HAC)의 공동의장국인 노르웨이와 르완다가 그렇습니다. 이에 대항해 ‘생산’을 제품 생산 단계부터로 봐야 하고, 생산에 대한 규제보단 재활용·폐기물 관리 단계에 집중해야 한다는 그룹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아래 출범한 ‘플라스틱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연합’(GCPS)인데요, 사우디를 포함한 중국·러시아·쿠바·바레인·이란 등 6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 중이고, 인도와 브라질은 비공식적으로 지지 중입니다. 이들 모두 산유국이거나 석유화학 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죠.

전선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이행하기 위해선 기존 플라스틱 산업과 기반시설의 변화를 피할 수가 없는데, 당연히 많은 재원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개도국에 더 큰 부담이 됩니다. 플라스틱을 대량 생산하고 환경오염에 일조한 건 선진국인데 개도국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죠.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의 원칙’(CBDR)과 ‘오염자 부담 원칙’ 등을 고려해 협약 비준 후 각국의 이행을 담보할 별도의 재정 메커니즘을 마련하느냐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른 배경입니다. 그간 개발도상국은 플라스틱 협약 이행을 위한 전담 기금을 요구했으나 선진국은 기존 기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최근 유엔환경계획 누리집에 공개된 사전회의 결과 문서를 보면, 3500억~5000억달러(약 492조~703조원)의 재원이 개도국에게 필요할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밖에도 유해성이 우려되는 화학물질과, 소재나 설계 문제로 재활용할 수 없거나 불필요하게 사용되는 ‘문제적’ 플라스틱을 구체적으로 지정해 규제하자는 유럽 국가들의 주장에 산유국과 플라스틱 생산국들이 맞서고 있습니다. “유해성에 대한 근거가 충분치 않고 직접적인 금지 물품 지정에 반대한다”는 것이죠.

지난 10월7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소비자기후행동과 서울iN아이쿱생협 활동가들이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기원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협약을 올해 안에 성안시키기 위해 세부사항까지 협약에 한꺼번에 규정하는 ‘구체협약’(specific convention)보단 큰 틀의 방향만 규정하고 나중에 의정서나 협정을 체결해 보완하는 ‘뼈대협약’(framework convention) 형태로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1992년 유엔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후 교토의정서와 파리협약을 통해 보완된 것이 대표 사례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 당사국총회(COP)를 두고 규칙 제정과 이행을 점검해가는 ‘플라스틱 총회’가 매년 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국제 환경단체 비에프에프피(BFFP·Break Free From Plastic)의 이세미 글로벌 정책 고문 등 전문가들은 “단순한 성안을 위해서 (폴리머 생산 감축 등) 중요한 요소들을 탈락시키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결국 마지막 협상회의 개최국인 한국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됩니다.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야심찬 목표 연합’에 가입돼 있지만 입장이 다소 모호합니다. “연간 생산 규모 세계 4위의 석유화학산업 생산국”으로서 “국내 산업계에 영향을 줄 플라스틱 생산 감축 목표 설정 등에 신중히 접근하겠다”(지난해 10월 정부)라거나, “우리나라는 개최국일뿐 회의를 이끄는 의장국이 아니다”(정경화 외교부 녹색환경외교과장, 지난 9월 국회 토론회)라는 등의 말이 나옵니다. 플라스틱 협약이 실질적으로 플라스틱 오염을 막을 수 있는 ‘야심찬 협약’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순 없을까요.

기후변화 ‘쫌’ 아는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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