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까지 갔는데 속이다니" 국산 방어회가 '일본산'…관광객 떠났다
[편집자주] 제주 경제가 심상치 않다. '바가지 논란'에 내국인 관광객이 급감하고 기후변화로 농수산물 생산 또한 크게 줄었다. 코로나19 때 과잉 투자한 후유증으로 부동산 경기 또한 침체를 겪고 있다. 제주의 현 상황을 진단한다.
지난 8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아파트. 준공된 지 3년 정도 된 이 아파트에는 120세대 중 37%가 미분양 상태다. 현재 해당 아파트는 공매로 나왔다. 해당 아파트는 제주 국제학교와 위치가 가깝고 주변에 산방산이 있어 투자 가치가 높다고 입소문이 나 과거 3억 중후반대에서 4억 후반대까지 올랐다. 하지만 현재 2억5000만원대에서 3억대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2년 전 서울에서 이곳 일대로 이사 온 김모씨는 "처음에 들어왔을 때 연세가 2000만원대였는데 올해 1000만원대로 깎았다"며 "제가 사는 아파트 1층도 다 비어있다. 일대 부동산 가격이 거의 다 떨어졌다"고 했다.
한 때 제주살이 열풍이 불 정도로 인기를 모았던 제주 부동산 시장이 움츠러들고 있다. 올해 발표한 '제주 주택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1202호였던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6월 1414호 △7월 1369호 △8월 1409호로 증가세를 보였다. 애월읍이 598호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영어교육도시가 있는 대정읍(376호), 안덕면(268호)이었다.
◇"월 매출 4억도 찍었는데…" 손님 사라진 제주 칠성로
지난 7일 제주의 명동이라고 불렸던 제주시 칠성로 상권 주변에도 공실이 급증했다. 제주 도시재생지원센터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칠성로 1~4가 66개 건물(총 310실) 중 공실은 77개소(25%)로 조사됐다.
이날 방문한 칠성로 일대에는 곳곳에 '임대'(권리금 없음) 표시가 눈에 띄었다. 3개 점포가 연달아 문을 닫은 곳도 있었다. 호황일 때 "손님들이 옷을 보따리로 사가고 13평짜리 옷 가게에서 월 매출 4억~5억원을 찍었다"던 그 거리다.
상인들도 고민이 깊어진다. 이곳에서 40년간 가게를 운영했다는 김모씨는 "예전에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일했다"며 "지금은 사람이 없어서 아침 10시에 와서 밤 6시쯤 문 닫는다"고 했다.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경기가 좋을 때는 권리금이 있어도 1억~2억씩 주고 들어가려고 했다"며 "지금 그런 사람들은 없다"고 말했다.
◇제주 부동산 시장 주춤… "코로나19 과잉 투자 후유증"
부동산 전문가들은 최근 제주 내 미분양 및 공실 사태는 '코로나19(COVID-19) 과잉 투자 후유증'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주는 그동안 지역개발산업 일환으로 영어교육도시, 헬스케어타운 등 각종 개발사업을 진행했다.
코로나19 당시 해외 유학이 어려워지면서 국내에서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제주로 몰렸고 부동산 가격 역시 높게 형성됐다. 최근에는 유학을 가는 학생들이 증가하면서 결과적으로 수요보다 공급이 늘어나게 됐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 A씨는 "코로나19 끝나고 영어 유치원도 원생이 없어서 사라지고 있다"며 "국제학교는 특성상 방학이 길어서 그 기간에 문 닫는 상가들도 늘어났다. 편의시설이 없어지니까 여기 살던 사람들도 이사를 간다"라고 했다.
칠성로 일대도 코로나19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공인중개사 B씨는 "칠성로 일대에 공실이 많아진 건 몇년 됐다"며 "한창 손님이 많을 때는 웃돈을 주고서라도 몰려들었던 상인들이 한 두명씩 빠져나갔다. 거리가 텅 비니까 손님들 발길은 점점 더 끊기고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제주자치경찰단 수사과는 지난 2월 제주시에 있는 한 수산업체에 기습 방문했다. 식당 메뉴판을 살펴보니 겨울철 대표 횟감인 방어는 원산지가 국내산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단속에 나선 박태언 제주자치경찰단 기획민생수사팀장은 방어가 정말 국내산이 맞는지 되물었다.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수품원)으로부터 제공 받은 수입수산물 이력제 시스템에는 일본산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 업주는 눈치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제주가 관광객의 신뢰를 잃은 데는 '비계 삼겹살', '5만원 해산물' 등 바가지 물가 논란이 한 몫을 했다. 소비자 알 권리는 물론 제주 상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
◇흑돼지, 서귀포 귤, 중국산 고춧가루에 일본산 방어까지
제주자치경찰단은 올해 일본산 방어를 국내산으로 거짓 표시하거나 원산지를 미표시한 업체 7곳을 적발했다. 이들이 판매한 일본산 방어 물량은 4.6톤(t)으로 추산됐다.
적발된 업체 7곳 중 5곳은 농수산물의 원산지표시등에 관한 법상 거짓표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2개 업소는 원산지를 미표시한 혐의로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제주자치경찰단은 또 △백돼지를 흑돼지로 둔갑시킨 사례 4건 △제주시귤을 서귀포시 귤로 표시한 사례 1건 △중국산 고춧가루를 국내산으로 거짓 표시한 사례 2건 등도 적발했다. 업주들은 경찰 조사에서 "흑돼지 물량 공급이 부족해 백돼지를 이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2022년에는 일본산 옥돔을 국내산으로 바꿔치기 한 유통업자가 구속되기도 했다.
농산물 도매 시장에서 제주시 귤보다 서귀포시 귤값이 높게 책정되는 것을 악용한 사례도 있었다. 자치경찰단은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넘어가는 도로에 잠복하면서 제주시 귤을 싣고 가는 트럭을 살폈다. 이후 선과장에서 서귀포시로 표시된 박스에 귤을 포장하는 것을 적발했다.
◇자치경찰단 "제주 이미지 회복 위해 노력할 것"
제주자치경찰단에 따르면 원산지표시 위반 건수는 △2021년 8건 △2022년 16건 △2023년 19건 △2024년 1~10월 15건이었다.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적발 건수는 지난해 2건, 올해 1~10월 5건이었다.
박 팀장은 "조리된 음식은 일반 소비자가 특히 더 구분하기 어렵다"며 "농산물품질관리원이나 수산물품질관리원 누리집을 보면 먹거리 구분 방법과 원산지 표시 위반 업체 등이 적혀 있다. 업체 주소와 명칭까지 모두 공개된다"고 했다.
제주자치경찰단 수사과는 제주 대표 먹거리 외에도 산림, 환경, 관광, 위생 등 19개 분야 93개 법률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고 있다. 올 겨울에도 또 다른 아이템을 찾아 집중 단속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박 팀장은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공정한 거래를 유도하는 것은 물론 도민과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안심하고 제주 먹거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제주 관광 이미지가 회복 되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만 의존하는 형태는 실패하는 정책이다. 제주 관광이 해외와 비교해 어떤 매력이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
"제주는 물류비, 렌트비 때문에 체감 물가가 높다. 여기에 불친절, 바가지 논란까지 물리면서 경쟁력이 없어졌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
제주가 기후 변화에 따른 농수산물 수확 감소, 내국인 관광객 감소, 부동산 등 자산 가격 급락 등으로 '삼우도'(3憂島)가 된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내국인 수요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인 등 외국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제주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지속적인 내국인 수요로 기초 체력을 끌어올려야 장기적인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① 점점 빨라지는 기후 변화… "생산 작물 다변화 필요"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주 지역의 생산 작물과 농법의 다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제주 농산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내국인을 지속적으로 공략하고 제주 경제의 기초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부소장은 "1차 산업 종사자들은 생산량이 급감하는 피해를 입고 소비자는 가격이 오른 농수산물을 구매하게 된다"며 "지자체에서 온도 변화에 따른 품종을 개량하거나 새로운 농법을 제시하고 스마트팜 첨단기술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엽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지속가능기술연구소장 역시 "장기적으로는 생산 작물 다변화 등 유동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식물은 특히 이산화탄소를 먹고 자라서 하우스의 경우 스마트 농장을 도입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감귤 껍질 등에서 수소를 추출할 수 있다"며 "열과 피해를 입어 버려지는 귤이 많은데 상품성이 없는 귤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② 바가지 논란, 높은 물가… "내국인 관광객 신뢰 회복"
내국인 유치를 위해 제주 색채를 찾는 동시에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제주는 물류비, 렌트비 때문에 체감 물가가 높은 편"이라며 "여기에 불친절, 바가지 논란까지 물리면서 경쟁력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가 한창 호황일 때는 서울에 있는 대형 카페가 제주로 들어섰다"며 "제주스러운 풍경이 사라지니까 재방문 형태가 사라졌고 점점 더 외면 받게 됐다. 탐라문화제 등 제주 색채를 담은 축제나 행사는 내·외국인 관광객에게 모두 환영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청은 올해 관광불편신고센터를 비롯해 제주관광혁신 비상대책위원회, 관광이미지 리브랜딩 TF(태스크포스)를 운영하는 등 이미지 개선에 힘쓰고 있다. 지난 7~10월까지는 관광불편신고센터에 약 354건 불편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카름스테이, 웰니스 등 도민이 주도적으로 콘텐츠 만들고 수익을 내는 선순환 구조에 집중할 것"이라며 "디지털 시대에 맞는 온라인 관광플랫폼을 고도화할 것"이라고 했다.
③ 자영업 공실, 아파트 미분양…"중국인 의존 정책은 '실패'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제주 경제를 회복하려면 외국인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에 온라인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상가 수요가 많지 않다"며 "제주는 중국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만 상권이 살아나는 양극화 형태를 보인다"고 했다.
정 교수는 "제주는 올레 관광이 시작되고 내국인이 몰려들었을 때 가장 경제가 좋았다"며 "중국인 관광객에만 의존하는 형태는 실패하는 정책이다. 제주 관광이 해외와 비교했을 때 어떤 매력을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동준 한국은행 제주본부 경제조사팀장은 "제주는 동 지역보다 읍, 면 지역에 미분양이 많다"며 "외지인들의 세컨드하우스나 영어교육도시 등 수요를 겨냥해서 지었지만 2~3년 안에 금리가 오르고 투자 비중이 떨어지면서 미분양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제주에 매력을 느껴야 한다"며 "1인 가구나 청년들이 제주에 살 수 있도록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하거나 주요 인프라 시설을 구축한다면 미분양 주택도 일부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제주=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제주=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이혜수 기자 esc@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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