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잘 나가다 와르르 [강다윤의 프리뷰]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아니 모자라, 와르르르.
'사흘'은 장례를 치르는 3일, 죽은 딸의 심장에서 깨어나는 '그것'을 막기 위한 구마의식이 벌어지며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오컬트 호러. 단편영화 '최종면접', 웹드라마 '악몽선생'을 연출한 현문섭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사흘간 장례를 치르는 한국의 삼일장 문화와 죽은 뒤 사흘 만에 악마가 부활한다는 설정을 엮었다. 이 접점 아래 '사흘'은 한국형 오컬트를 외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딸을 살리려는 아빠 승도(박신양)와 악마를 퇴치하려는 신부 해신(이민기), 미스터리한 존재에 잠식된 소미(이레)의 사투를 꽉꽉 눌러 담았다.
영화를 이끄는 것은 구마사제 해신도, 악마에 씐 소미도 아닌 딸을 잃은 승도다. 딸의 심장이식 수술을 집도했던 승도는 쉽게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승도의 깊고 진한 슬픔은 과하기보다 절절하다. 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빠였기에, 죽은 딸의 꼭 쥔 손에 호호 입김을 부는 아빠이기에.
하지만 죽은 딸에게 씐 '그것'이 삼일장 사흘동안 부활을 준비하면서 승도의 부성애에는 점점 광기가 어린다. 이를 눈치챈 해신이 구마에 나서지만 딸을 살리려는 승도의 방해가 계속된다. 자연히 비슷한 패턴이 반복됨에도 승도의 희번뜩한 눈빛과 기괴한 집착 덕에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조금 답답함을 느낄라치면 제정신이 아닌 꼴로 승도가 날뛴다.
소미가 선사하는 공포 역시 크다. 흐리게 미소 지으면서도, 아빠 앞에서는 씩씩했던 소미는 '그것'으로서 울고 웃고 웃으며 분위기를 잡는다. 단정히 신부복을 입고 라틴어를 외우는 해신 또한 오컬트 장르의 맛을 더한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며 점점 다가오는 '그것'의 존재감이 더욱 묵직해진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지만 혼란스럽지 않다. 되려 오갈 때마다 인물들의 전사를 맛보고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아픈 과거가 있는 제자와 인자한 스승님 등 고스란히 밟게 되는 클리셰도 뻔함 보다는 안정감을 준다. 깨알 같은 웃음도 함께지만 전혀 산통을 깨지 않는다. 벌벌 떨며 눈을 꼭 감는 자에게 마련해 준 숨 쉴 구멍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것'의 정체가 밝혀지며 단번에 와르르 무너진다. 순식간에 허술함을 드러내며 전락해 개연성도 설득력도 힘을 잃는다. 절로 '길을 잃었다. 어딜 가야 할까'라는 노래 한 소절이 떠오른다. 추락한 퀄리티와 강제로 박탈당한 몰입감에 남는 것은 연신 터져 나오는 실소뿐이다. 몇 번이나 옆 사람의 손을 붙잡고 벌벌 떨었음에도.
덕분에 이야기는 또 어찌나 많아졌는지. 안 그래도 휴먼 드라마와 오컬트의 결합이라 차곡차곡 쌓아둔 것이 많은데. 해신의 과거 트라우마도 모자라 갑작스레 튀어나온 러시아 정교회,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그것'까지 모두 서사가 생겼다. 이렇게 너저분하게 펼칠 거라면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백은 어땠을까.
단번에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채운건 실망감이다. 이제 승도의 부성애는 지루하고, 해신의 구마는 흥미롭지 않다. 소미가 두 눈을 부릅떠도 그뿐이다. 무서움도 섬뜩함도 없다. 엔딩 크레디트가 아직 올라가지 않았는데, 이르게 마법에서 깨어나 '영화니까'하고 넘겼던 헐거움을 하나하나 짚게 된다.
'신들린' 연기를 한 이레 덕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승도의 딸 소미이자 미스터리 한 '그것'까지 이레의 열연을 멋지고 훌륭했다.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박신양도 역시 일품이다. 이민기는 오컬트 외길로 제 몫을 다했다. 부활의 심벌인 나방을 비롯해 곳곳의 시각적 요소를 맡은 김시용 미술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14일 개봉. 러닝타임 95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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