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본사 홀린 K패션, '아시아 판권'도 따냈다
브랜딩·상품력 인정 받으며 해외 판권까지 획득
국내 생산 제품 역수출…해외 시장 진출 기회로
국내 주요 패션기업들이 라이선스 브랜드를 들고 해외로 진격한다. 라이선스 본사(라이선서)로부터 국내 판권을 넘어 해외 판권까지 획득하는 데 성공하면서다. 이들 기업이 국내에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전개하면서 상품 기획력과 브랜딩 역량을 입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패션이 아시아 시장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라이선서들이 한국과 유사한 아시아 시장의 파트너로 한국 기업을 낙점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품 개발부터 브랜딩까지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코오롱FnC)은 최근 골프웨어 브랜드 '지포어'의 미국 본사와 중국·일본의 마스터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지포어는 마시모 지아눌리가 2011년 론칭한 디자이너 골프웨어 브랜드다. 코오롱FnC는 지포어의 국내 라이선스를 획득한 후 지난 2021년부터 국내 사업을 벌이고 있다.
라이선스 사업은 브랜드 상표권, 지식재산권 등을 보유한 라이선서와 계약한 후 계약에 정한 지역에서 해당 브랜드 사업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패션기업들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본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한 후 국내에서 해당 브랜드 로고를 단 상품을 판매할 권한을 얻는다.
이전에는 해당 브랜드로부터 직접 제품을 공급받아 유통하거나 단순히 브랜드 로고를 단 상품을 생산하는 방식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이 상품을 직접 기획하고 마케팅, 브랜딩까지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의류 제품이 없는 해외 유명 상표들을 찾아 의류 브랜드로 키우기도 한다.
지포어도 이런 사례 중 하나다. 지포어는 원래 골프화와 장갑 등의 골프용품을 중심으로 한다. 본사에서도 의류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다. 코오롱FnC는 이런 지포어의 라이선스를 세계 최초로 획득했다. 골프용품은 본사로부터 직수입하고,의류 상품은 직접 기획, 디자인 하는 방식의 복합 계약이었다.
지포어는 국내 론칭 2년만에 연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는 등 국내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코오롱FnC가 35세~44세 '영앤리치' 고객을 공략하며 경쟁 브랜드와 차별화하고 소수의 핵심적인 매장만 운영하며 럭셔리 브랜딩 마케팅을 펼친 점이 주효했다. 코오롱FnC가 기획한 의류 상품들의 품질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상품들이 미국 본사로 역수출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성장세를 눈여겨본 지포어 본사는 코오롱FnC에게 중국, 일본 라이선스까지 내주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본사와 중국, 일본의 현지 파트너사의 계약이 종료된 시점이었다. 아직 규모가 작은 지포어의 중국·일본 사업을 코오롱FnC가 한국처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코오롱FnC가 국내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해외 판권까지 획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넘어 아시아로
F&F는 이런 라이선스 사업을 통해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F&F는 지난 7월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이하 디스커버리)'의 미국 본사 WBD(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와 독점 계약을 맺고 중국, 일본, 동남아 등 아시아 주요 국가의 독점 라이선스를 따냈다.
디스커버리는 F&F가 지난 2012년 미국 WBD와 독점 계약을 맺고 국내에 선보인 아웃도어 브랜드다. 당시 등산 위주의 아웃도어 트렌드에서 벗어나 일상 속에서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라는 점을 내세우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디스커버리는 출시 5년만인 2017년 아웃도어 전체 시장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디스커버리가 국내에서 성장성을 입증하면서 해외 사업까지 확장하는 발판이 됐다.
디스커버리에 앞서 F&F는 'MLB'를 통해 해외 사업 노하우를 마련해왔다. F&F는 1997년 미국 프로야구 MLB의 국내 라이선스를 획득한 후 MLB를 국내 대표 캐주얼 브랜드로 키웠다. 2012년에는 MLB 키즈로 브랜드를 확장했고 2020년에는 중국 판권을 획득해 해외에도 진출시켰다. 이어 F&F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인도, 중동까지 MLB 라이선스를 획득하며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MLB는 2022년 해외 매출(소비자 판매액 기준)이 1조원을 넘어섰고 올해는 2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지난 5월 라이선스를 획득한 '할리데이비슨'도 이와 유사한 사례다. 할리데이비슨은 121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모터사이클 브랜드다. 할리데이비슨은 누구나 한번쯤 이름을 들어본 브랜드지만 라이딩 기어(라이더 보호장비)를 제외하고는 의류 사업에 본격적으로 손을 뻗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새로운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 검토하던 중 할리데이비슨의 라이선스를 세계 최초로 획득했다. 이 계약으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할리데이비슨의 역사와 바이크 문화를 접목한 컨템포러리 브랜드 '할리데이비슨 컬렉션'을 지난 9월 국내에 론칭했다.
특히 이 라이선스 계약에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주요 지역의 홀세일 라이선스도 포함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역시 이번에 처음으로 라이선스 브랜드로 해외 판권까지 얻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연내 K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은 국가로의 진출을 검토하고 해외 사업을 동시에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韓 성공 방정식 해외에
코오롱FnC는 중국에서 '지포어'를 골프를 포함한 럭셔리 브랜드로 확장해 선보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기존 코오롱FnC의 지포어 상품과 함께 신발, 액세서리 등 잡화류에 집중할 예정이다. 소비력이 높은 도시 위주로 향후 5년간 30개 매장 오픈이 목표다. 일본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방식으로 럭셔리 골프웨어 브랜드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긴자식스' 등 프리미엄 쇼핑몰 내에 매장을 내 5년 내 12개 지점을 낸다는 구상이다.
F&F는 MLB가 성공한 방식을 활용해 디스커버리 역시 아시아 시장에 빠르게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가장 먼저 중국에서의 오프라인 매장 오픈이 예정돼있다. 올해 말 중국 장춘을 시작으로 6개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내년 말까지는 100개 매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아시아 1위 아웃도어 브랜드까지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한국에서 생산한 할리데이비슨 제품을 아시아에 수출할 예정이다. 진출 국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현재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의 홀세일 판매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성공한 라이선스 브랜드의 '역수출'까지 가능해진 것은 최근 아시아 시장에서 'K패션'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K팝' 등 한류가 아시아에서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패션이 아시아 시장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기업 입장에서도 수출을 통해 본격적으로 해외 사업을 키울 수 있는 기회다. 최근 내수 패션 시장은 소비 침체로 성장세가 크게 꺾인 상황인 만큼 각 기업들은 해외 진출을 통해 매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 패션업체들은 자체 내셔널 브랜드도 여럿 보유하고 있지만 해외에서 인지도를 쌓는 데 상대적으로 시간과 비용이 든다. 반면 라이선스 브랜드들은 대부분 해외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추고 있어 해외 진출에 보다 유리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이미 성공한 라이선스 브랜드들은 이미 상품력과 기획력이 어느 정도 입증 받은 것"이라며 "해외 라이선서들이 아시아 시장 파트너를 선정할 때 이런 점을 중요하게 평가하면서 국내 기업이 해외 라이선스까지 얻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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