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도 본질도 비호감, ‘히든페이스’[한현정의 직구리뷰]
약혼자가 남긴 이 영상을 본 ‘성진’(송승헌)은 기가 막힌다. 너무 서운하거나, 화가 나서, 후회스럽거나 혹은 미안해서, 그리워서가 아니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도 난감하기 때문이다. 당혹스럽고 골치가 아프다. 떠밀린 김에 공적인 일, 오케스스트라의 빈 자리부터 채운다. 당장은 가장 쉬운 일이니까.
성진의 약혼자 ‘수현’(조여정)은 단장의 딸이자 오케스트라의 메인 첼로리스트, 금수저다. 흙수저인 성진 입장에선 다소 아니꼽게 보일 여지도 다분하지만 그만큼 누리고 있다. 사실 까놓고 보면 (수현이) 딱히 잘못하는 것도 없다. 좀 이기적이고 유치하지만 심플하고도 솔직하다. 고마운건 고마운 거, 아닌 건 아닌 거. 미안하면 사과도 잘 한다. 말은 그렇게 안 하지만 감정은 오히려 더 순수하고.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받아들인다.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땐 충동적이고 철은 없지만.
이들 사이에 문제의 여성이 등장한다. 수현의 후배라는, 어딘가 좀 수상한, ‘미주’(박지현)다. 기막힌 타이밍에 나타난 그녀는 아름다운 비주얼로 한 번, 약한듯 당찬 매력으로 두 번, 슈베르트의 음악으로 세 번 성진의 눈에 든다.
성진은 그런 그녀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게다가 ‘흙수저’란 공통점도 있다. 슬픈 공감대일수록 더 타오르는 법, 둘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어떤 이유로 밀실에 갇힌 수현은 이들의 욕망을 직관하게 된다. 돌이킬 수 없고, 선을 넘어도 한 참 넘은, 세 남녀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다.
하지만 이 ‘깬다’는 것이 다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하고, 개연성이 부족하며, 피로할 정도로 꼬았다. 겹겹이 쌓은 포장을 언박싱하는 재미도, 어렵게 확인한 알맹이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 파격과 엽기 그 사이 어디쯤.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저 마다의 ‘비상식’을 그대로 표출한다고 다 ‘의미’가 되나.
무엇보다 세 인물 가운데 오롯히 공감하며 따라갈 곳이 없다. 갈등이 야기된 시작점을 알긴 알겠는데 그것이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을 만한 명분은 부족하다. 욕망이니, 숨은 본성이니, 비밀이니 그럴듯한 방대한 키워드와 반복적으로 또는 억지스럽게 던진 몇몇의 상징적 대사와 장면만으론 그 연결이 상당히 부자연스럽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조여정이 연기한 ‘수연’에 조금 몰입이 되는데 이마저도 갈수록 투머치로 흘러간다. 밀실은 있지만 스릴은 없고, 노출은 있지만 그 수위만큼 섹시하진 않다. 백 투 더 퓨처의 연속이지만 그 사연이 별로 흥미롭지 않다. 자극적일 뿐 복잡스럽고 구구절절이다. 수위 높은 장면들로 어지저찌 후르륵 끌고가지만, 그렇게 마주한 엔딩은 ‘겉멋’만 가득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다. 특히 두 여주인공 조여정·박지현의 내공이 빛난다. 다소 민감한 부분들도 거부감 없이 살려낸다. 무리수 급변의 구간들도 배우들의 힘으로 끌고 간다. 송승헌은 피해의식과 비겁함으로 중무장한 비호감 플러팅 캐릭터를 무난하게 소화해낸다. 농익은 노출 연기 외 별다른 인상은 주지 못하지만.
메가폰의 불타는 열정은 작품 안에 담긴 요소들의 균형을 불태운다. 원작의 색깔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한국판 치정극도 넣고, 감독 고유의 색깔도 업그레이드 하고, 스릴러적 쫄깃함도 살리고, 비주류 요소와 철학적 질문까지 던지니 보는 이들도 버겁다. 한켠 ‘기생충’의 파격 변주를 소망했나 싶기도 하다. 그 정도로 겹쳐지는 부분들이 보인다.
분명 전형적인 맛은 아니다. 파격적이다. 문제는 아는 맛이든 새로운 맛이든 일단 맛있어야 하는데...성별에 따라, 기대하는 바에 따라,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것 같다. 의미있는 ‘논쟁’을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만한 깊이가 없다. 아, 노출 수위는 예상대로 높다.
오는 20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1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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