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법으로 금지했던 때가 있었다? [올댓체크]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의 이란 영사관 인근에 이란의 한 대학에서 '속옷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이란 여대생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가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현지시간 12일 밀라노투데이에 따르면 이 벽화는 이탈리아의 팝아티스트 알렉산드로 팔롬보가 지난 10일 공개한 작품으로 여대생 석박 촉구를 위해 그려진 건데, 여성의 신체 노출을 엄격하게 단속하는 이란에서 저항하는 모습은 이례적인 풍경입니다.
앞서 해당 여대생은 캠퍼스 내 종교경찰로부터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고, 항의 차원에서 속옷 차림으로 시위가 벌어졌는데, 체포 영상은 SNS에 퍼지며 세계적인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저 학생 용기 있다. 맞아 죽을 수도 있는데” “먼 나라에서 바라만 봐도 대단한 인격체가 단연 돋보인다” “이런 게 정당한 항의 표현이다”라며 학생의 시위를 응원했습니다.
이어 “이게 진짜 민주화다” “히잡을 벗고,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선택권이 없다는 게 문제다” “저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히잡은 없어져야 한다. 여성을 비하, 차별하는 짓이다” “정신이상자 취급하는 건 시위를 확산시키지 않으려는 다분한 의도”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히잡 착용이 의무화된 건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부터입니다.
당시 종교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루홀라 호메이니 정부가 이슬람 예법에 따라 10세 이상 모든 여성이 히잡을 착용할 것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신설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데요.
그렇다면 히잡은 이슬람 문화권 여성에게 무조건적인 의무이며, 쓰지 않는 건 불법일까요?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의무적 착용이 적용되는 곳은 이란과 아프가니스탄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얼마 전까지 의무사항이었지만 지금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로 바뀌면서 개방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불법이라고 하는 것을 강제하면서 처벌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구속력이 있느냐가 문제”라면서 “워낙 젊은 여성들이 시위하고 해당 세대가 다 동참하다 보니 잡으려 했다가 공권력 자체가 작동을 안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행 이슬람법에서는 공공 품의를 모욕하는 모든 행위에 최소 10일~최대 2개월의 징역 또는 74대의 채찍형을 구형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으면 해당 혐의가 적용됩니다.
실제로 이란 테헤란 거리를 걷던 30대 여성 로야 헤쉬마티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죽 채찍으로 74대를 맞고 우리 돈 43만 원의 벌금을 낸 바 있습니다.
놀라운 건 이랬던 이란에서 한때는 히잡 착용을 최초로 법으로 금지한 적도 있습니다.
서구화와 근대화를 추진한 팔레비 왕조 시절(1925년~1979년) 히잡 착용이 의무가 아니었고, 1936년 팔레비 왕조의 레자 샤(국왕)는 ‘카슈프에 히잡’(Kashf-e hijab, 베일 벗기) 법령을 선포했습니다.
오히려 공공장소 등에서 히잡과 이슬람 복장의 착용이 금지되고 서양식 의복을 입도록 강요받은 겁니다.
그러다 과도한 서구화 정책과 전체주의적 행태에 1979년 종교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를 중심으로 이슬람 혁명을 일으켜 팔라비 왕조를 축출했고, 같은 해 3월 7일 히잡 의무화 법안이 발의되자 테헤란 거리에는 10만 명 넘는 여성들이 반대 시위로 쏟아졌습니다.
정치적 의미가 담긴 히잡, 현재 현지 분위기는 어떠할까요?
구 교수는 “지난 9월 이란 테헤란에 있는 한 쇼핑몰에 갔을 때 내부에 있는 여성 80%가량이 히잡을 쓰지 않고 있었다”면서 “지난 2022년 일어난 대규모 히잡 시위가 큰 기점이 됐다. 정부에서도 무조건 강압적으로 하면 정권에 큰 위협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 이후로 종교 경찰이 수위를 굉장히 많이 낮췄다”고 말했습니다.
인 교수는 “억압이라 생각해서 지금은 안 쓰고 다니는 여성들이 많다”며 “2년 전 히잡 단속으로 체포된 22살의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고 나서부터는 안 쓰고 다니는 여성들이 많아져 통제를 못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과거에는 히잡을) 안 쓴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가족들의 반발이나 사회적 집단의 따돌림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밖에서 옷을 다 벗고 다니는 행동과 같다. 히잡을 안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한 잘잘못을 따질 여지 자체가 없는 문제인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김지영 디지털뉴스 기자 jzero@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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