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환경 속 위기 맞은 삼성전자

김동인 기자 2024. 11. 14.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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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삼성전자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 기술 경쟁력에 물음표가 붙는다. 삼성이 처한 산업 환경과 삼성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급변하고 있다.
2024년 3분기 실적이 발표된 10월31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최근 반도체 기술력에 대한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다.ⓒ연합뉴스

삼성전자가 10월31일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은 약 79조1000억원, 영업이익은 약 9조1800억원이다. 매출액 기준으로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이다. 그러나 시장과 대중의 평가는 냉랭하다. 앞서 10월8일 잠정 실적 발표 직후 한 차례 후폭풍이 휩쓸고 갔기 때문이다. 잠정 실적 발표 전 증권가에서 예상한 영업이익(컨센서스)은 약 10조7000억원이었지만, 이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이 나오면서 ‘어닝쇼크’가 발생했다. 9월27일 종가 기준 주당 6만4200원이었던 주가도 10월25일 종가 기준 주당 5만5900원까지 하락했다.

실적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감이 번지자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위기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위기설’은 단순히 한 기업의 사업성 악화만 의미하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혹독한 가을’은 그 자체로 한국 산업이 처한 중층적인 현실을 다양하게 비춰준다.

■ ‘초격차’는 어떻게 위기에 봉착했나

‘초격차’라는 말은 한때 삼성전자를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2017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퇴임한 권오현 현 서울대 이사장이 이듬해 출간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권 전 회장은 초격차의 의미를 시장에서의 상대적 지위를 넘어선 ‘기술·조직·시스템·공정·인재 배치·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격’으로 설명한다. 반도체 영역에서 삼성전자는 전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로 자리매김했고,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 업체를 따돌리고 시장 주도권을 쥐어왔다. ‘초격차’는 그런 삼성전자가 가진 기술 이상의 ‘우위’를 설명하는 표현으로 확대됐다.

문제는 최근 들어 초격차의 원천과도 같았던 ‘기술력’에 대한 실망감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사업 구조는 크게 DS(반도체), DX(가전·모바일), SDC(디스플레이)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이 반도체 부문에서 발생하는데, 반도체 부문도 총 세 가지로 나뉜다. 메모리, 파운드리, 그리고 시스템반도체(S.LSI) 부문이다.

3분기 실적에서 DS 부문은 매출 약 29조2700억원, 영업이익 약 3조8600억원을 기록했다. 규모만 보면 나쁘지 않은 실적이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환경 변화를 고려하면 불안 요소가 존재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급성장에 따른 생태계 변화 때문이다.

현재 반도체 시장 전반을 이끌어가는 존재는 그래픽 프로세서(GPU)를 생산하는 엔비디아(NVIDIA)다. 엔비디아는 GPU 기술을 바탕으로 최근 독자적인 AI 전용 칩을 생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수요도 넘쳐난다. 10월12일 모건스탠리 보고서를 통해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 ‘블랙웰’ 시리즈의 1년치 분량이 매진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엔비디아와 같은 ‘AI 인프라’ 관련 기업에 호재가 되고 있고, 엔비디아는 이 같은 환경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넘보고 있다.

AI 인프라 산업의 호황은 곧바로 반도체 시장의 축배로 이어졌다. 문제는 이러한 수혜를 누리는 기업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점이다. 엔비디아의 성장과 함께 주목받는 두 협력 분야가 있다. 바로 엔비디아의 칩셋을 주문생산하는 파운드리와 AI 칩셋에 함께 사용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다. 파운드리와 메모리, 두 분야 모두 현재 삼성전자 DS 부문의 주력사업 영역이다.

하지만 10월31일 현재까지 엔비디아 차세대 AI 칩셋 생태계에 삼성전자가 참여한다는 확정적인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경쟁사인 타이완 TSMC와 SK하이닉스의 수혜 소식만 이어진다. TSMC는 엔비디아 AI 칩셋을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3E(5세대 HBM) 칩셋을 공급 중이다. 특히 SK하이닉스는 9월26일 현존 HBM 최대 용량인 36GB(기가바이트)를 구현한 HBM3E 12단 제품을 세계 최초로 양산하기 시작했다고 밝히며 주목받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블랙웰 칩을 이용한 차세대 AI 가속기를 손에 들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 제품에 HBM을 납품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EPA

올가을 삼성전자 위기설은 이러한 AI 반도체 생태계 진입에 ‘기술력이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는 지적에서 비롯됐다. 전통적 주력 분야인 메모리 반도체, 특히 HBM 분야에서 SK하이닉스의 실적과 대비된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최신 HBM 칩을 납품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품질 테스트 단계를 아직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다. 10월31일 3분기 실적 발표 직후 콘퍼런스 콜(전화 회의)에서 삼성전자는 “주요 고객사를 위한 사업이 지연되었지만, 품질 테스트에서 ‘중요한 단계’를 완료하는 유의미한 진전이 있었다. 4분기 중 판매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전했다. 이 발언으로 ‘삼성전자가 곧 HBM을 엔비디아에 납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끌어올렸지만, 이미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가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에서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초격차’와는 멀어진 상황을 대변한다.

파운드리 분야의 부진도 이어진다. 파운드리는 쉽게 말해서 반도체 위탁생산 분야다. 엔비디아는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설계에 집중하는 ‘팹리스’ 업체다. 이런 엔비디아의 AI 칩은 모두 TSMC가 독점적으로 위탁생산 중인데,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를 “TSMC가 동종 업계 최고이기 때문(9월11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AI 칩을 중심으로 ‘초고도화된’ 시장 환경은 TSMC의 매출 기반을 바꾸는 중이다. 3분기 TSMC의 응용처별 매출을 살펴보면, AI로 대표되는 고성능 컴퓨팅(HPC) 분야가 전체 매출의 51%를 차지하고 있다. 비싼 물건을 많이 만들어 납품하고 있다는 뜻이다. 10월17일 발표한 TSMC의 3분기 매출은 약 7597억 타이완 달러(약 32조8000억원), 영업이익은 약 3608억 타이완 달러(약 15조5800억원)에 이른다. 영업이익률이 무려 47.5%에 달한다. 매출액은 삼성전자 전체 반도체 사업(DS)보다 많고, 영업이익 역시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을 추월한다.

고성능 칩뿐만 아니라 전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차이도 상당하다. 타이완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의 9월2일 발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파운드리 업계 점유율은 TSMC 62.3%, 삼성전자 11.5%로 나타났다. 2년 전인 2022년 2분기 당시 점유율은 TSMC 51.5%, 삼성전자 18.8% 수준이었다.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다. 삼성전자의 이번 3분기 실적에서도 파운드리 분야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고객사를 확보하는 파운드리 업계에서 고전하는 모습이 수년째 이어졌고,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TSMC의 엔비디아 AI 칩 생산 독점이다.

■ ‘국민주’의 무게와 대가

이러한 삼성전자의 악재는 기업의 미래 전망에 대한 불안감을 키운다. 그리고 이 불안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현장이 증시다. 삼성전자의 주가(종가 기준)는 올해 7월11일 8만8800원까지 올랐다. 전고점이었던 2021년 1월11일(9만1000원)에 근접한 수치였다. 그러나 이후 4개월 가까이 주가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10월31일 현재까지 6만원 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10월31일 기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은 2068조원인데, 이 중 삼성전자 기업 하나의 시가총액만 353조원에 달한다. 코스피 전체 시총의 17%를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삼성전자의 주가 부진은 코스피 지수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시장의 최대 관심사가 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이 위치한 경기도 화성캠퍼스. ⓒ삼성전자 제공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주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매수해봤을 기업’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소액주주(법인 제외)는 2023년 12월 말 기준, 약 466만명에 이른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리는 주식시장의 대중화로 인한 결과다. 팬데믹 이전이던 2019년 12월 말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당시 삼성전자 소액주주(법인 제외)는 56만명에 불과했다. 시계를 조금 더 뒤로 돌려 2016년 연말로 돌아가면, 그 숫자는 6만명 수준까지 떨어진다. 삼성전자 주가에 대한 대중의 감응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이은 주가 하락은 외국 자본의 이탈로부터 비롯되었다. 9월3일(종가 7만2500원)부터 10월25일까지 외국인은 33거래일 연속 매도세를 기록했다. 이 기간 외국인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한 금액만 12조원이 넘는다. 이런 매도세는 최근 환율 불안 원인 중 하나로도 지목된다. 외국인 자본이 삼성을 비롯해 한국 시장을 이탈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올랐다는 논리다. 이 기간 환율은 달러당 1330원대에서 1380원대까지 오르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 환율 불안이라는 ‘눈에 보이는 지표’의 변화는 삼성전자의 ‘위기설’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10월8일, 이례적인 ‘삼성전자 사과문’을 주목하게 했다.

반도체 부문을 이끄는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은 이날 고객·투자자·임직원을 대상으로 공개적인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사과문에서 전 부회장은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다. (···) 무엇보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설명한 기술 차원에서의 격차 문제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지표 외에 대중이 감응한 다른 포인트가 더 있었다. 바로 삼성전자라는 기업의 조직문화에 대한 우려와 실망감이다.

■ 기술 배경 없는 리더십에 대한 반감

10월18일, 〈동아일보〉 뉴스레터 ‘딥다이브’가 발행한 ‘삼성전자 DS에서 20년 일한 엔지니어 인터뷰’ 기사가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 인터뷰에서 “보고서 쓸 때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쓰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 수준의 기술 지식을 가진 경영진이 결정하는 게 말이 되나”라는 삼성전자 엔지니어의 말이 크게 논란이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삼성의 위기설은 삼성전자의 기술력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으면서 확대되었다. 그런데 조직 내 주요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업지원TF’의 기술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내부에서마저 나오자 여론이 들끓었다. 인터뷰 내용만 보면 실무 엔지니어의 불평불만처럼 읽힐 수 있지만, 이미 이전부터 삼성에 대한 대중의 비난은 비(非)엔지니어 출신이 그룹을 이끄는 문제까지 확산된 터였다. 그동안 공학적 배경이 없는 경영진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과 불만이 쏟아져왔고, 이런 비판의 정점에 재무통 출신인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이 놓여 있다.

정현호 부회장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영향력이 커진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기술력 문제가 언급될 때마다 경영 판단의 아쉬움이 지적되어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역사가 바로 HBM 연구개발 축소다. 원래 삼성전자는 2015년 HBM 초창기부터 꾸준히 기술개발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HBM은 AI 칩 수요가 등장하기 전까지, 계륵에 가까웠다. HBM은 메모리를 수직으로 쌓는 기술이 핵심인데, 가격이 비쌀뿐더러 이 기술을 요구하는 고객사도 일부에 국한되었다. 결국 경영상 판단으로 HBM 연구개발을 축소한 것이 오늘날 삼성전자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7월8일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경영진에 대한 규탄 메시지가 담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내부 상황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유출되기 쉬워진 환경도 특정 리더십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인 ‘블라인드’를 비롯해 다양한 온라인 공간에서 내부 불만이 터져나왔고, 자연스럽게 정현호 부회장에 대한 언급 역시 늘기 시작했다.

여전히 삼성전자는 한국 사회에서 기술혁신을 이끌어가는 기업 중 하나다.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글로벌 반도체 가치사슬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자 관점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대된 2024년, 마침 기업의 장기 성장을 이끄는 기술력 문제에서 삼성전자는 조금씩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우려하는 대중은 반복되는 기술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기술 배경 없는 리더십을 지목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는 11월 중 인적 쇄신을 통해 기업 체질 개선에 나설 전망이다. 삼성도, 삼성이 처한 산업 환경도, 삼성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과 판단 기준도 급변하고 있다. 실적은 물론 인사와 조직 내부 문화까지, 삼성전자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더 깐깐해지고 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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