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곶자왈에선 말이 누워서 잠을 잔다 [기자의 추천 책]

김영화 기자 2024. 11. 14.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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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동물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사실 겁부터 났다.

공장식 축산업부터 동물원 잔혹사, 무수한 실험동물 등 거대한 착취의 현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동물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인간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일이었다.

〈동물의 자리〉는 그 불편한 간극에 다리를 놓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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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자리〉
김다은·정윤영 지음
신선영 사진
돌고래 펴냄

우리 곁의 동물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사실 겁부터 났다. 공장식 축산업부터 동물원 잔혹사, 무수한 실험동물 등 거대한 착취의 현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무력감, 무엇보다 나 역시 그 구조에 기여하고 있다는 죄책감 같은 게 똬리를 틀었다. 그렇다고 회피해버리기엔 우리는 동물과 너무 가까이 살고 있지 않은가. 반려동물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또 SNS에서 귀여운 동물 사진을 나누며 위로받고 웃는다. 어떤 동물은 죽고 어떤 동물은 살게 되는 그 ‘괴리’가 그래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동물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인간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일이었다.

〈동물의 자리〉는 그 불편한 간극에 다리를 놓는 책이다. 고기로 태어났지만 고기가 되지 않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과,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제 꽃풀소 달뜨는 보금자리, 화천 곰 보금자리, 제주 곶자왈 말 보호센터까지 최근 한국에 생기기 시작한 생크추어리(보호구역) 네 곳의 분투기를 충실히 취재하고 기록했다. 동물을 세는 단위가 ‘마리’가 아닌 ‘명(命)’인 곳에서 이들은 새벽이나 우투리처럼 저마다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늙어간다. 소가 흙 위를 성큼성큼 내달리고 말은 풀밭에 철퍼덕 주저앉아 잠을 잔다는 사실, 돼지가 진흙 웅덩이에서 뒹굴거리거나 동면을 마친 곰들이 홀쭉해진다는 당연한 사실들에 왜 이토록 가슴이 벅차오를까? 생크추어리를 완벽한 공간으로 미화하지 않되, 작가들은 전한다. 이것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라고.

그럼에도 복잡한 가치 판단을 탁 내려놓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수록된 사진 200여 컷에서 동물원에선 볼 수 없었던 동물의 표정을 봤을 때, 생크추어리가 던진 질문을 각자 방식으로 펼쳐가는 사람들의 분투를 읽을 때.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치는데, 분명 죄책감이나 무력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설렘과 안도감이 느껴졌다. 회피하기보다는 연결되고 싶은 감각이 또렷해졌다. 책 한 권이 하나의 경험이자 다른 종을 마주하는 소중한 여정 같다. 동물권과 돌봄, 생명을 둘러싼 최전선에서 길어 올린, 깊고도 사려 깊은 르포가 나왔다고 말하고 싶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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