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부활자 김신록의 '지옥2'[EN:터뷰]

CBS노컷뉴스 정재림 기자 2024. 11. 14.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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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넷플릭스 '지옥' 시즌2 김신록 배우 인터뷰
"박정자, 은율 만남 통해 지옥서 벗어나"
"지옥은 '왜'를 묻는 것이 의미 없는 세계"
"은율 최후 보는 장면도 찍긴 했지만…"
배우 김신록은 지옥 시리즈를 두고 "배우로서 이렇게 좋은 작품과 함께했다는 게 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귀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넷플릭스 제공

7년간 왜란을 겪던 천민 출신 범동에서 다시 박정자로 돌아왔다. 이번엔 부활자이면서 타인이 죽는 순간을 미리 내다보기까지 한다.

배우 김신록은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2에서 시연을 받고 지옥에서 부활한 박정자를 선보였다. 이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눈이 흰자만 보이는 박정자의 모습을 표현하며 눈길을 끌었다.

봉준호 감독도 "CG가 아닌 본인이 연기한 거냐"고 물었고, 연상호 감독 역시 "깜짝 놀랐다"고 반응할 정도였다. 연 감독은 이어 "자신의 몸과 표현하려는 감정 같은 것들이 어떤 계획을 세우면 거의 오차 없이 출력된다"고 감탄했다.

연극 무대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김신록은 평소 연기할 때 전체적인 감각을 중요시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모든 배우들이 자기 방법으로 연기를 하는데 지금 내 몸에 일어나는 작용을 몸으로 계속 만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딱히 머릿속에 그리고 그대로 재현하는 건 아니"라며 "그게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해서 생각은 안 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근에 달걀말이 요리 영상을 본 일화를 꺼냈다.

"출연진 한 분이 '읏짜' 하며 계란말이를 뒤집을 때 발끝까지 표현을 하고 있더라고요. 저 모습을 보고 연기의 어떤 순간을 설명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렇게 전체에 대한 감각을 쓰는 걸 좋아해요. 그렇게 했을 때 전 존재를 다 쓴 것 같은 충만감이 있잖아요."

"박정자, 은율 만남 통해 지옥서 벗어나"

넷플릭스 지옥 시리즈는 천사와 지옥 사자들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죽음을 예고하고 이를 이행하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이야기다. 시즌2는 계속되는 지옥행 고지로 혼란스러워진 세상에서 갑작스레 부활한 정진수 의장과 박정자(김신록)를 둘러싸고 소도의 민혜진(김현주) 변호사와 새진리회, 화살촉 세력이 충돌하는 내용을 다룬다. 넷플릭스 제공

김신록은 작품 속 8년이 흐른 박정자의 시간 변화를 표현할 때 '마리 앙투아네트'를 떠올렸다고 한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1793년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 처형을 앞두고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된 일화로 유명하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현상인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그는 "지옥에 갔다가 부활한 박정자가 정말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며 "그래서 다른 인물처럼 보이거나 (연기) 톤이 튈까 봐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부활한 박정자가 초탈한 선지자처럼 보이지 않기를 원했다고 짚었다.

그는 "만화책에는 초탈한 표정으로 나왔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시종일관 그렇게 있을 수 없다고 봤다"며 "처음에 박정자가 지옥에 대해 그리움과 절망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그리움이 과거를 그리워한다고 볼 수 있지만, 미래지향적인 힘을 가질 수 있는 정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닿으려는 힘과 가닿을 수 없는 절망을 계속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인물이기에 굉장히 역동적인 인물로 봤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정자가 자기 인식을 획득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다"며 "은율(배현성)과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그리움에 도달하면서 박정자가 지옥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자기 인식의 획득을 뒤로 미룰수록 인물에 더 큰 힘이 실릴 것으로 봤다"고 강조했다.

"지옥은 '왜'를 묻는 것이 의미 없는 세계"

김신록은 자신이 의상 분장에 영향을 많이 받는 배우라고 밝혔다. 그는 "분장하게 되면 과감한 연기가 나온다"며 "훨씬 수월해지고 편안해지더라"고 말했다. 또 인물 연구에 대해선 "환경도 그 사람의 일부"라며 인물 환경을 고려하며 연기한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 제공

김신록은 지옥 시리즈를 두고 아주 지적인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왜'를 묻는 것이 의미 없는 세계잖아요. 모든 사람이 왜를 묻다가 모두 함정에 빠져요. '왜 태어났을까' '왜 나한테 이런 불행이 일어났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물어야 하느냐고 하면, 시즌2에서 그 답을 저는 조금 줬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떻게 살 건가"라면서도 "내게 지금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즌2에서 진경훈(양익준) 형사와 진희정(이레)의 장면을 언급했다.

그는 "사실은 굉장히 신파적일 수도 있는 설정"이라면서도 "아주 근원에 가닿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이 작품이 되게 좋은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걸 시즌2에서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작품 속 진경훈 형사와 진희정의 모습. 넷플릭스 제공


김신록은 기억 남는 박정자의 대사로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를 꼽았다.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으면 말로 설명을 안 하면 됐기에 처음에는 살아있는 대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몰라요', 이렇게 할 수도 있는데, 박정자가 너무 선명하게 말로 설명해 버리더라"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이 대사가 아주 지적인 논쟁이 된다고 생각했다"며 "이 세계를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되게 중요한 키(Key)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속 설명을 요구하는 사회이면서도, 사실은 설명할 수 없다"며 "설명을 강요하지 않거나, 강요받지 않을 때 만나는 지점들이 중요하고 그곳에 비밀이 있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은율 최후 보는 장면도 찍긴 했지만…"

김신록은 지옥 세계관이 실제로 펼쳐진다면 시즌1의 배영재(박정민) 또는 시즌2의 천세형(임성재)처럼 일상을 살았을 거라고 웃었다. 그는 "약간 거리감을 두고 일상을 살다가 정말 그 당사자가 됐을 때야 처절하게 질문할 것 같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제공

김신록은 촬영 뒷얘기도 전했다. 당초 마지막 장면에서 박정자가 자신의 아들 은율의 최후를 보는 장면을 찍었다고 한다. 지금 보는 장면이 이후에 찍은 모습이라고.

그는 "굳이 다 짚어줄 필요가 없어서 그 장면을 뺀 것 같다"며 "그 순간은 박정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기쁨보다는 낯선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울고 있는 은율이를 보며 내 아들이라는 기쁨보다는 생경한 느낌이 들었어요. 배우를 처음 본 것도 있지만, 제가 연기할 때는 열한 살짜리 은율이었거든요. 사전에 인물의 감정을 해석하고 분석한다 해도 현장에 완전히 맞아 들어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큰 차이를 경험해 본 건 처음이었어요."

그러면서 이수경 역을 소화한 문소리를 언급했다. 그는 "문소리 선배는 한 인물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 그 자체, 이성 그 자체를 연기하는 것처럼 작품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깊더라"며 "배우가 할 일을 훨씬 더 크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감탄했다.

민혜진 역을 맡은 김현주에 대해선 "카메라 앞과 뒤가 똑같으신 분"이라며 "장시간의 액션 촬영을 굉장히 의연하고 편안하게 해내셨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에 재현(오은서)을 데리고 떠나는 장면의 표정이나 감정의 깊이가 정말 명연기라고 생각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민혜진이 박정자의 예지와 달리 살아남은 장면에 대해선 "예외"라고 말했다. 그는 "시즌1에서도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는 걸 보면, 약간 예외의 상황으로 보인다"며 "작품 전체가 왜라고 묻기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거냐에 계속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예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영화 '전,란'과 '지옥' 시즌2가 최근 연이어 공개되면서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느냐는 질문애 그는 오히려 "기분 좋은 일"이라고 밝혔다.

김신록은 "처음에 같은 기간에 나온다고 하니까 보시는 분들의 피로도에 대해 걱정이 좀 되긴 했다"면서도 "두 작품 모두 세계관이 다르다 보니까 완전히 다른 모습을 짧은 기간 안에 보여드릴 수 있어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다행히 두 작품 모두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에서 상영됐다. 특히 영화 '전,란'은 OTT 작품 최초로 부국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3년 전 처음으로 부국제 무대에 오른 김신록. 그는 이번 부국제에 다시 서게 된 당시 감정도 떠올렸다.

"이번 부국제 개막작 무대인사를 하면서 3년 전 부국제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순간이 겹쳐 보였어요. 그때는 아무도 절 알아보지 못했기에 제가 말할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정신차리고 작품에 대해 또박또박 얘기했어요. 이번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걸출한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서 있는 저를 보며 마치 평행 우주에 온 것 같았어요. 진짜 운이 좋았죠. 감사하고 감동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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