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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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3년 전 육아휴직을 했을 때 새삼 알게 된 게 있었다.
차라리 현실이 아니길 바라면서 가슴을 치게 만드는 장면 말이다.
"그냥 장난한 것"이라고 간주하기에는 마치 누군가를 모질게 고문하는 형상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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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3년 전 육아휴직을 했을 때 새삼 알게 된 게 있었다. 부모들은 생업을 위해 일터로 나간 시간, 어린이집·유치원·학교 같은 공공 영역에선 해결되지 않는 돌봄 공백을 채워주는 곳이 있다는 것. 바로 태권도장이었다.
태권도장은 단순한 무술 교습소가 아니었다. 지역의 돌봄 거점에 빗대도 손색이 없었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여러 아이를 태운 태권도장 차량이 집 현관 앞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주거나 다른 학원까지 연계해주는 모습을 매일같이 목격했다. 아이들은 부모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여러 사설 기관을 전전해야만 하고, 이 과정을 실핏줄처럼 연결하는 이들은 도복 차림으로 노란색 승합차를 몰고 다니는 태권도 사범들이었다.
이런 곳이 없으면 맞벌이 가정들은 당장 사달이 나겠구나, 나중에는 우리 아이도 자연스레 태권도장에서 엄마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게 되겠구나 싶었다. 해가 진 저녁 무렵까지 도장 밖으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우렁찬 기합 소리가 괜스레 정겹기도 했다.
마흔의 나이에 어렵게 얻은 다섯 살 아들을 홀로 돌볼 수 없었던 이안이(가명)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혼 후 혼자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이안이를 키웠던 엄마의 선택지가 돌봄 교실을 자처하는 동네의 한 태권도장이었던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부모가 이안이 엄마처럼 태권도장에 아이 돌봄을 위탁하고 있으니. 그곳에서 생때같은 자식을 잃는 비극이 벌어질 줄 상상이나 했겠나.
어떤 장면은 인내의 역치를 넘어선다. 이를테면 수학여행을 가는 고교생 250여 명을 태운 여객선이 뒤집힌 채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이 그럴 것이다. 차라리 현실이 아니길 바라면서 가슴을 치게 만드는 장면 말이다.
작디작은 이안이가 둘둘 말린 매트 속으로 머리부터 빨려 들어가는 장면도 그랬다. "너무 예뻐하던 아이였다"면서 20㎝ 안팎에 불과한 매트 구멍 안으로 아이를 거꾸로 집어넣고, 못질이라도 하듯 더 깊숙이 꾹꾹 밀어 넣는 관장의 모습. "그냥 장난한 것"이라고 간주하기에는 마치 누군가를 모질게 고문하는 형상에 가까웠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런 폭력이 겨우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무해한 아이를 향했다는 것, 게다가 다른 아이들도 지켜보는 앞에서 다른 어른이 2명이나 더 있던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다는 것이. 아이 얼굴의 혈관이 다 터지고 숨이 멎은 순간에도 관장의 사고는 폐쇄회로(CC)TV를 지워 범행을 은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런 일이 사건 당사자들 입에서 '장난'이란 표현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이안이를 사지로 몰아넣은 관장 한 명만 응분의 사법적 대가를 치르면 이런 폭력이 끝이 날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저항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급기야 목숨까지 빼앗는 일은 늘 반복돼 왔다. 죄 없는 아이들이 다치고 멍들고 세상을 떠난 뒤에야 공권력은 가까스로 작동한다. 악인들은 지금도 한없이 약한 존재들을 노리고 있으며, 세상에 이런 폭력이 드러나 알려지는 경우는 한 줌일 뿐이다.
"아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참척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안이 엄마는 그래서 목소리를 낸다. "내 아들은 하늘에 별이 됐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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