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 뼛조각서 당시 흔적 찾아내… 파묘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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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 대학교의 '역사서 강독' 강의.
담당 교수가 고구려 을지문덕이 수나라 군사 30만 명을 섬멸한 살수대첩을 한창 설명할 때 한 사학과 2학년생은 의문이 생겼다.
홍 교수는 "인골은 오염에 취약하기 때문에 발굴 현장에서 접근 인원을 최소화해야 한다. 발굴하면 뼈의 기초 분석을 통해 생전 키나 몸무게와 같은 신체 조건을 추정하고,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식단과 출신지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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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하다 생물 고고학에 관심… 고인골서 체격-식습관-질병 등 발견
“사료에 없는 ‘미싱링크’ 복원 흥미”
“희귀병 유골 발견 바라기도 하지만, 고인 존중 잊지않고 연구하려 노력”
‘전장에서 숨진 수십만 군사들의 시체로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고구려 풍토병에 감염된 병사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옮기지는 않았을까?’
학생이 질병 관련 당대 기록이 남아있는지 묻자, 교수는 “관련 기록은 없지만 연구해 보면 재미있겠다”고 답했다. 학생은 고고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고인골(古人骨·오래된 사람 뼈)이나 동식물의 유체에 남은 DNA를 분석하는 ‘생물 고고학자’가 되겠다고 그때 결심했다. 묘를 파는 ‘파묘’가 인생의 일부가 돼버린 홍종하 경희대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40) 얘기다.
“사방에 뼈들이 좀 많죠?”
지난달 경희대 유라시아 생물유존체 분석센터에서 만난 홍 교수의 연구실. 한쪽에는 100개가 넘는 ‘뼈 단지’들이 쌓여 있었다. 분석 중인 고인골과 동물 뼈들이 방 안 가득했다. 분석을 위해 뼈를 절단하는 무시무시한(?) 전동 드릴도 눈에 띄었다. 생각보다 방 안에서 퀴퀴한 냄새는 나지 않았으며, 습기가 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곳곳에 놓인 제습제들이 눈에 띄었다.
고인골 분석은 다른 동물의 뼈에 비해 분석이 훨씬 까다롭다. 연구자들의 DNA와 고인골 DNA가 뒤섞여 잘못된 분석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다. 홍 교수는 “인골은 오염에 취약하기 때문에 발굴 현장에서 접근 인원을 최소화해야 한다. 발굴하면 뼈의 기초 분석을 통해 생전 키나 몸무게와 같은 신체 조건을 추정하고,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식단과 출신지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때론 유골뿐 아니라 인체 장기가 보존된 ‘미라’가 국내에서 발견돼 이를 연구하기도 한다. 홍 교수는 2014년 10월 경북 청도군의 고성 이씨 문중묘 이장 과정에서 발견된 이징(1580∼1642)이라는 남성의 미라를 국립대구박물관과 함께 연구했다. 무덤 주인의 키는 조선 시대 일반 남성보다 큰 165.1cm로 측정됐고, 영양 상태도 좋았다. 다만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헬리코박터균과 폐 기생충에 감염됐음이 확인됐다. 홍 교수는 “골격, 영양 상태 등으로 미루어 양반인 이징으로 추정됐고, 기생충 검출 등을 보면 가재, 민물고기 등을 잘 익히지 않고 먹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사 결과 수백 년 전 죽은 사람의 질병과 식습관까지 밝혀낼 수 있는 셈이다.
파묘를 하고, 유골을 만지는 게 좀 꺼림직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다”라며 웃었다. 연구 직후에도 뼈가 들어간 해장국이나 사골국도 잘 먹는다고. 올해 관객 1000만을 넘긴 영화 ‘파묘’를 봤냐고 하자, 아직 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런 그에게도 신경 쓰이는 부분은 있었다. “주요 학술지에 논문을 실으려면 독특한 질병에 걸렸던 분의 미라나 유골이 발견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다만 그분들이 과거에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고인에 대한 존중을 늘 잊지 않고 연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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