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유도제 공급 중단… 예비 엄마들 불안하다
분만유도제의 공급이 일부 중단되면서 산부인과 등 의료 현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 2개 제약사가 분만유도제를 생산하는데, 시장점유율 70%에 이르는 JW중외제약이 원료 수급난을 이유로 들며 공급을 최근 중단했다. 이 여파로 일부 병의원이 분만유도제를 구하지 못해 분만 시술 등에 차질을 빚었다. 필수 의약품 공급에 대한 정부와 제약사의 안이한 인식이 위기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만유도제 공급사 2곳뿐
1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관리종합정보포털에 따르면, JW중외제약은 지난 1일 분만유도제 ‘중외옥시토신주’를 공급 부족 의약품으로 신고했다. 옥시토신을 성분으로 하는 분만유도제는 자궁 수축을 유발, 촉진한다. 출산 후 산모의 과다 출혈을 막는 데도 필요하다. 제약사가 생산을 중단하려면 60일 전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해야 하는 ‘퇴장 방지 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다.
국내에서 판매 중인 분만유도제는 JW중외제약과 유한양행 주사제가 전부이고, JW중외제약이 70% 가까운 물량을 차지하고 있다. JW중외제약이 공급을 중단하자 유한양행에 평소보다 높은 수요가 몰리며 연쇄적으로 품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JW중외제약 측은 “주원료를 인도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선적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공급을 중단했다”며 “다음 달 4일부터 분만유도제 공급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한양행은 14일부터 공급을 재개한다. 이에 대해 제약 업계는 지금처럼 낮은 약가(藥價)로는 생산 실익이 적어 이번 같은 공급 중단이 또 일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예컨대 스위스의 경우 분만유도제 약가는 1앰풀당 5000원에 달하고, 일본에서는 1000원 안팎에 책정되어 있다. 한국은 지난해 8월 중외옥시토신주 품귀 때 정부가 195원에서 273원으로 40% 인상했는데도 약값이 주요국의 절반에 미달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JW중외제약 유도분만제의 작년 매출은 1억4000만원이다. 제약 업계 관계자는 “분만유도제는 약값이 싼데 원료 수급과 위탁 생산 등 관리할 위험은 많아 채산성이 낮다”고 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비정상적으로 낮은 분만유도제 가격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비롯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낮은 약가에 신약도 ‘K패싱’
정부의 약가 정책은 건강보험 재정과도 관련 있다. 약가를 높일수록 건보 재정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동결 또는 낮추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나친 약가 인하 정책은 신약 공급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국내 개발 신약이 한국 시장을 외면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예컨대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腦電症·간질) 신약 ‘세노바메이트’는 올해 3분기 미국에서 1133억원 매출을 기록했을 정도로 효능을 인정받았지만, 한국에서는 2026년쯤으로 출시 계획을 잡고 있다. 한국에서 신약 허가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가 낮은 약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낮은 약가로 결정되면 해외에서도 이를 기준 삼아 책정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이다. 한국 출시를 고의로 건너뛰는 이른바 ‘K패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동아에스티가 개발해 201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항생제 ‘시벡스트로’도 유사한 사례다. 국내에서는 2015년 시판 허가를 받고도 2020년 허가를 자진 반납했다. 당시 약가가 미국의 3분의 1 수준으로 책정되자 국내 출시를 포기한 것이다. 이 약은 미국에서 지난해 약 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유승래 동덕여대 약대 교수는 “약가 산정은 건보 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당국이 낮은 약가에 너무 집착하면, 제약사들이 채산성 낮은 약품 생산을 꺼리고 신약 국내 출시도 기피하게 돼 피해가 결국 환자들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분만유도제
자궁 수축을 일으키는 약물인 옥시토신을 말한다. 자궁 수축을 유발·촉진해 태아가 자궁 밖으로 나오도록 한다. 출산 중 산모의 과다 출혈을 막는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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