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J. 트럼프 제47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신기록(新記錄)의 정치인’이다. 2016년 대선 때까지 70년 생애 동안 단 한 번의 선출직 선거 출마도, 공직도 맡지 않았던 그는 올해 11월 5일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압승(壓勝)을 거두었다.
이로써 이달 현재 78세인 그는 미합중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 당선자 겸 132년 만에 징검다리 대통령(재선 실패후 재도전해 당선)이 됐다. 트럼프는 1940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84년 만에 3번 연속(2016년·20년·24년) 대통령 후보 지명자라는 신기록도 추가했다.
◇입법·행정·사법부에 지방까지 싹쓸이
2024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에게 몰표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7개 경합주와 전국 득표율, 연방 상원 및 하원의원 선거, 주(州) 지사, 주 의회 선거까지 싹쓸이했다. 공화당 후보의 전국 득표율 과반 획득은 2004년 이후 20년 만이다.
18세~29세 남성과 여성들의 트럼프 지지가 4년 전 보다 15%포인트, 7% 포인트 각각 높아져 공화당과 트럼피즘의 향후 가도(街道)에도 파란 불이 켜졌다. 올해 대선에서 남성들과 히스패닉 남성들의 2020년 대선 대비 트럼프 지지율 상승폭은 12%포인트, 9%포인트에 달했다. 트럼프 지지 증가는 65세 이상과 백인 대졸 여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종·연령 그룹과 모든 지역에서 공통됐다.
이는 다양성(diversity)·평등(equity)·포용(inclusiveness)을 내걸고 성(性) 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민주당의 진보 노선 보다 가족· 종교·치안을 우선시하는 공화당의 보수 노선이 더 많은 공감을 얻은 결과다. 연방대법원도 9명의 대법관 판사 중 6명이 보수 성향으로 사실상 공화당 편이다.
◇①새로운 미국 등장과 새로운 세계 개막
트럼프가 백악관과 입법·사법부, 지방 정부·의회를 망라한 총체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은,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이념에 기초한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이 미국 국민들의 전면적인 승인(national endorsement)을 받았음을 확인해준다.
2016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이 일탈(逸脫·aberration)에 가까웠다면, 2024 대선은 새로운 미국의 등장과 새로운 국제정치 세계의 출현을 알리는 변곡점(變曲點)이 됐다. 미국의 향방을 결정짓는 ‘국가 비전’을 놓고 벌인 대결에서 설득력있는 대안(代案)을 내놓지 못한 해리스 후보가 패하고 트럼프의 ‘매가 어젠다’가 국민적 공인(公認)을 받으며 승리한 것이다.
트럼피즘이 미국의 새로운 대세(大勢)가 됐음을 보여주는 증표는 여럿이다. 2024년 4월 1~7일 미국 성인 3,600명을 대상으로 한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조사에서 “미국 정부가 국내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대답한 비율(83%)은 “대외 문제에 더 집중”(17%)을 압도했다. 응답자의 42%는 “다른 나라들이 국제질서 유지에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게 미국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라고 했다.이는 미국의 국제 문제 개입 축소를 주창하는 트럼프의 약속과 일맥상통한다.
불법이민자(undocumented immigrants)와 고율(高率) 관세 부과 문제도 마찬가지다. 2024년 7월 갤럽 조사에서 미국인의 55%는 “이민 유입이 줄어들길 원한다”고 답했다. 이는 2001년 9·11 테러 사건 후 가장 높은 반(反)이민 여론이다.
◇트럼프 어젠다가 민주당 정책까지 바꾸어
미국 성인 6251명을 상대로 한 2024년 3~4월 조사에선 민주당원의 42%가 “불법이민자에 대한 대량 추방(mass deportation)을 지지한다”고 했다. 반(反)트럼프 진영 국민들 10명 가운데 4명 넘게 트럼프 정책에 동조한다는 조사 결과는 바닥 민심의 변화를 반영한다.
트럼프가 내놓은 10~20% 보편적 기본관세 신설 공약에 대해서도, 미국 성인 상당수는 “한번 해 보자”는 입장을 갖고 있다. 올해 9월 로이터통신과 입소스(Ipsos) 공동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보편적 기본관세 적용에 찬성하는 미국인 비율(56%)이 반대자(41%)보다 많았다.
트럼프의 대(對)중국 봉쇄·견제 정책과 세계무역기구(WTO) 무력화 조치는 바이든 행정부에 그대로 승계됐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2023년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자유 무역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는 불가피하다”면서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a new Washington consensus)’의 도래를 선언했다. 이런 모습은 트럼프의 어젠다가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정책까지 재정의(再定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②공인의식으로 무장한 애국자 트럼프
미국 정치와 세계사의 획(劃)을 그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의 진면목(眞面目)도 이번 대선을 통해 확인됐다. 2017년 1월 처음 대통령 취임 당시 약 6조 원(45억 달러) 넘는 재산을 보유했던 그는 부동산 사업으로 성공해 30대 후반에 평생 먹고도 남을 만한 재산을 모았다. 대통령 취임 전에 호텔, 골프장, 고급 주거시설, 카지노, 대학, 자전거 경주대회, 미인대회, 항공기, 와인, 넥타이, 스테이크, 생수병, 시계를 포함한 500개가 넘는 ‘트럼프(TRUMP)’ 브랜드를 보유해 남부러울 게 없었다.
그는 바쁜 30대 비즈니스맨 시절에도 하루 평균 2~3시간씩 책과 신문과 저널 등을 읽으면서 미국과 세계 흐름을 탐구했다. 41세 때인 1987년 9만 4800달러의 개인 비용을 들여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보스턴글로브’ 등 미국 3대 일간지 9월 2일자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의견 광고를 실었다.
자신의 향락과 일가(一家)의 존속·번영만 좇는 부자라면 이런 행동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 무렵부터 자신과 가족을 넘어 사회·국가로 관심을 확장해 공인(公人)의식과 애국심(愛國心)으로 무장했다. 그는 특히 외국 보다 미국의 중산층·서민·노동자 등 동포들의 피폐해진 삶 개선에 집중해 왔다. 2000년 <The America We Deserve>를 시작으로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