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경의 엔터시크릿] 깊고 맑았던 故 송재림을 추억하며
연예계에 또 하나의 별이 졌다. 선이 고운 외모에 섬세한 연기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배우 송재림이 지난 12일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레 전해진 소식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가짜뉴스이기를 바랐다. 생전 그와 인연을 맺었던 이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밝은 미소에 감춰져 있던 그의 아픔을 알아보지 못해 다들 미안해했다. 송재림이 40년 남짓한 인생을 착실하게 살아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년 전 영화 '안녕하세요' 개봉 당시 본지와 진행했던 영상 인터뷰도 뒤늦게 화제가 됐다. 유튜브 채널 '덕질하는 기자'(현 MK스튜디오)를 통해 공개됐던 영상으로, 기자 역시 송재림을 만났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기 시간 동안 잡담을 나누며 여러 번 웃음꽃이 폈던 건 그의 장난기 어린 친근한 매력 덕분이었다. 송재림은 환한 미소와 입담으로 주변인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는 세상에 혼자 남겨져 의지할 곳 없는 수미(김환희)가 죽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수간호사 서진(유선)을 만나 세상의 온기를 배워가는 과정을 그린다. 송재림은 호스피스 병동의 윤빛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의 주제로 인해 이날 인터뷰에선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송재림은 버킷리스트에 대해 묻자, "겉멋이긴 하지만 내 장례식장에서는 샴페인을 터트렸으면 한다. 축제 같은 장례식이 되길 바란다"고 답했다. 또한 "죽음을 앞두고 가장 먼저 생각날 것 같은 사람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역시 부모님일 거다. 하지만 내가 먼저 갈 수는 없지 않나"라며 웃었다. 그 역시 이렇게 떠날 줄은 몰랐을 터라, 그때의 답변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송재림은 누구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많은 배우이기도 했다. 시간 관계상 영상에는 함축적으로 담겼지만, 당시 배우로서 많은 고민들을 안고 있었다. 그는 "남들이 원하는 연기를 하는 게 맞는지 내가 원하는 연기를 하는 게 맞는지 헷갈리는 나이"라며 "코로나 때문에도 힘들고 시대도 바뀌는 것 같고, 나는 어느 순간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고, 나이는 먹어가고 그런 고민을 한창 할 때인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또한 40대를 준비하는 남자 배우로서 이것저것 계속 시도를 해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우리는 다 애쓰고 있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는 순간에도 시간이 지나는 것, 힘든 것들을 맨몸으로 맞고 있으니 '조금 느슨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던 그의 끝인사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비슷한 나이대의 기자가 삶의 고단함에 대해 공감하자, 힘을 주려 애쓰던 속 깊은 청년의 환한 웃음도 잊히지 않는다.
맑고 따뜻한 사람이었기에 연예계 동료들에게도 송재림의 빈자리는 큰 듯하다. 이 영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유선은 "너무 아쉽고, 너무 아프다. 부디 편안함 쉼을 누리길"이라는 애도의 글과 함께 송재림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 이윤지 또한 "그러지 말지. 당신의 순수를 기억하는데. 거기서는 마음껏 살아가기를"이라는 글을 남겼다.
방송인 홍석천도 활짝 웃는 고인의 사진을 올리며 "너의 이 멋진 웃음을 다신 볼 수 없음을 슬퍼한다. 인사도 없이 보내야 하는 이 상황이 황망하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추모했다. 배우 박호산은 "이렇게 밝은 너인데 믿기지 않네. 연락도 못 하고 챙기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슬퍼했고, 이엘은 "미안해 재림아"라는 글을 남겨 먹먹함을 전했다.
그의 유작이 된 드라마 '우씨왕후' 관계자는 본지에 "너무너무 좋은 친구였다.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아서 전혀 몰랐기에 마음이 너무 안 좋다"며 "'우씨왕후' 때는 특별출연이라 아쉬워서 다음 작품은 더 오래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곧 보자고 했던 게 마지막 문자인데"라고 회상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일각에서는 한 사생팬이 온라인에 고인을 비방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다수 올리며 괴롭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송재림의 측근과 측근 가족에 대해서도 무차별 신상 털기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계정은 모두 삭제된 상태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는 이유다. 일련의 일들이 그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연예계에서 근절돼야 할 고질적 문제인 것은 확실하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오는 14일 오후 12시다. 생전 많은 이들에게 따뜻함을 전했던 송재림이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빈다. 그가 건넸던 작은 위로를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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