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남녀 공학 안 할래요”

박은주 기자 2024. 11. 1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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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1950년 단과대학으로 출발한 동덕여대를 종합대학으로 키운 이가 조용각(전 동덕학원 이사장) 박사다. 지금 그의 흉상은 밀가루와 계란, 케첩으로 얼룩져있다. 학교가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한다는 소식에 총학생회 주도로 시위가 벌어졌다. 본관 앞 플래카드에 이렇게 적혀있다.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여자대학’은 혁명의 산물이다. 프랑스혁명, 산업혁명, 미국 독립혁명 이후 여성에게 고등교육 기회가 열렸다. 1830년대 미국 마운트 홀리요크 칼리지, 조지아여대 등이 개교했다. 여성은 남성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에 따로 학교를 만들어 우대해줘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진일보한 여성 차별’ 의식이다. 미국에는 1960년대까지 280개가 넘는 여대가 있었고, 명문 7개 대학을 따로 ‘세븐 시스터스’라고도 불렀다.

▶전 세계적으로 여대는 퇴조하고 있다. 영화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은 하버드대-래드클리프 여대 커플이었다. 래드클리프 학부는 하버드에 흡수됐고, 이제 대학원 과정만 남았다. 현재 50개 미만인 여대도 몇몇이 통폐합, 공학 전환을 논의 중이다. 일본 부유층이 선호했던 가쿠슈인여대 역시 2026년 가쿠슈인대와 통합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학생들의 남녀공학 선호, 실용 학문 및 대형 학교 지향을 이유로 꼽는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여학생 취업률이 그렇듯, 여대 졸업생 취업률도 낮은 편이다. 이공계보다 인문계 학과가 많은 탓이다.

▶남녀공학 전환은 대개 성공적이었다. 고려대 의대 전신은 1938년 설립된 ‘경성여자 의학전문학교’였고, 수도여사대와 상명여대는 각각 세종대학교, 상명대학교로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동덕여대 시위 현장에서는 “여성 차별이 존재하는 한” 여대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여대가 여성 차별을 바로잡아온 게 사실이다. 이화여대 출신 여성운동가 고 이효재 교수는 호주제 폐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여성할당제 도입에 앞장섰다. 군복무가산점제 폐지에도 여대가 나섰다.

▶여대에 페미니즘 바람이 거세지며 여대가 오히려 ‘성적 소수자를 배제’하는 역설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20년 성전환자(트렌스젠더)가 숙명여대 법대에 정시로 합격했지만 학생들 반대로 등록을 포기했다. 레이건 대통령 부인 낸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딸 욜란다가 나온 스미스여대를 비롯, 일본 오차노미즈여대 등은 성소수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여대를 탄생시킨 ‘시대정신’의 근간이 변하면서, 온 나라의 여대들이 ‘성숙통’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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