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해자 법률조언만 넘쳐나나?" 성범죄 피해자 돕는 가이드북 나왔다
성폭력 피해를 겪어 법적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수사 절차 가이드북이 나왔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는 1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수사 절차 가이드북' 간행을 발표했다. 국내에서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안내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청과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2019년범죄 피의자가 수사 과정에서 권리를 침해받는 일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피의자들이 자신의 진술과 인권침해 여부 등을 기록할 수 있는 '자기변호노트'를 전국 255개 경찰서에 배포했다.
피의자뿐 아니라 범죄 피해자를 위한 '자기보호노트'도 지난 2021년 제작됐으나, 이 노트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비법조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형식으로 구성돼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또한 성범죄 가해자들은 법률시장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수사 및 재판에 필요한 조언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반면, 피해자들은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려울뿐더러 신고 절차에 대한 조언을 공유하면 '여성들이 무고한 남성을 성범죄자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모의한다'는 비난 여론이 형성돼 성범죄 피해자들은 적절한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마태영·정이량 변호사,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는 활동가 '연대자D'는 1년간 67명의 일반 시민들에게 자문을 구해 성폭력 피해자라면 누구나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수사 절차 가이드북을 제작했다.
40여 쪽으로 구성된 이 안내서는 피해자가 성폭력을 인지한 순간부터 고소장을 접수해 경찰·검찰의 수사를 받기까지 각 단계별 행동 요령을 정리했다. 특히 △적용 가능한 죄명 찾기, △범죄 증거를 수집하기, △고소장 작성하기, △가해자에게 자신의 정보를 최소한으로 노출하기 등 고소를 처음 하는 피해자라면 헤맬 수밖에 없는 절차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제작진은 성폭력과 관련한 증거를 최대한 수집하고 진술 과정에서 하고 싶은 말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노력하되, 진술 과정에서 피해자다움을 강조하기보다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마태영 변호사는 "일부 변호사들은 피해자들에게 수사관 앞에서 울라고 조언하지만, 수사관들은 피해자의 태도에 따라 다른 내용을 적지 않는다"고 확언했으며, 연대자D는 "이전에 만난 진술 조사관이 '피해자들이 태도를 꾸미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불리를 따져 행동하면 오히려 진술의 신빙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작진들은 또 진술 조사 시 법조인과 피해자 지원단체를 포함해 신뢰할 수 있는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당부했다. 성폭력처벌법과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해자 조사 시 피해자의 가족, 동거인, 변호사, 그 밖에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신뢰관계인 신분으로 동석할 수 있다.
신뢰관계인은 직접적인 진술이나 의견제시를 할 수는 없지만, 조사 과정에서 불안감을 느끼거나 2차 가해에 노출되는 등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을 때 피해자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수사관과 피해자가 나눈 대화를 메모하거나 추후 진술조서를 함께 살펴보는 방법으로도 지원이 가능하다.
센터가 발행한 가이드북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홈페이지에서 무상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마태영 변호사는 "주위의 조력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이드북을 제작했으며, 피해자 지원기관 예산과 국선변호사 지원 확대 등 정책 강화로 언젠가 이 책이 필요 없게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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