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에 더 가까이, 해외로 더 멀리…문화보국 정신 널리 펼칠 것”

도재기 기자 2024. 11. 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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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건 관장에게 듣는 ‘간송미술관의 어제, 오늘, 내일’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이 지난 6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향후 운영계획 등에 관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 관장은 간송 전형필 선생의 손자로 20년 전부터 활동에 나서 간송미술관의 변화를 추진 중이다. 서성일 선임기자
간송의 정신, 수집·보존 중심에서 국내외 대중과 소통·교감에 초점
보화각·DDP·대구 간송미술관서 유례없는 3개 전시회 동시에 개최
시간·공간의 제약 뛰어넘기 위해 디지털 기술 활용해 ‘전시 혁신’
향후 모든 미디어전 모듈화 작업, 미국·유럽 등 해외전시 적극 추진
시민·기업의 후원과 지지 큰 힘, 새로운 시도와 도전 계속해야죠

한국 문화유산의 보고라 할 간송미술관이 최근 활발한 활동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다양한 내용·형식의 국내 전시는 물론 이제 세계 무대로의 진출에 적극 나서는 것이다.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국제적 관심 속에 한국의 문화유산 ‘K헤리티지’의 아름다움과 가치·진면모를 국내외적으로 더 넓고 깊게 알리겠다는 행보다.

간송미술관의 뿌리는 1938년 서울 성북동에 세워진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 보화각(葆華閣)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간송 전형필(1906~1962)은 막대한 사재를 들여 일본으로 유출되던 문화유산, 미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미술품·전적 등을 수집했다. 그 ‘간송컬렉션’의 보존·연구를 위해 국내 첫 사립미술관 보화각이 건립됐다. 일제로부터 ‘문화유산을 통해 나라를 지킨다’는 ‘문화보국’ ‘문화독립’ 정신의 구현이다. ‘간송컬렉션’은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중심으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상당 부분 규명됐다.

현재 (재)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은 모두 한국의 보배들이다. 국보 12건과 보물 30건 등 국가지정문화유산 207점을 포함해 모두 2만여점에 이른다. 간송미술관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이 방대하면서도 수준 높은 소장품, 기존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한국 문화유산의 대중화, 세계화의 용틀임으로 해석된다.

DDP에서 열리고 있는 ‘구달바별’ 전시 포스터.

간송미술관은 현재 서울 간송미술관(보화각)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대구간송미술관에서 3개의 전시를 열고 있다. 파리 올림픽 당시에는 혜원 신윤복의 화첩인 ‘혜원전신첩’(국보) 속 풍속화를 디지털화한 미디어아트를 프랑스에서 선보였다. 1971년부터 이어져 오다 한때 중단됐던 봄가을 전시도 부활했다. 더 주목되는 것은 관람객과의 새로운 소통·교감의 창구를 만든다는 점이다.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미디어아트는 물론 소장품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몰입형(이머시브) 미디어 전시 콘텐츠 제작과 대체불가토큰(NFT) 발행 등이다. 여기에 현대미술·대중문화와의 융합,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도입, 메타버스 플랫폼 참여, 기업들과의 협업 등도 진행 중이다.

거듭나는 간송미술관의 중심에 전인건 관장(53)이 있다. 간송의 장손이기도 한 전인건 관장을 지난 6일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만났다. 간송미술관의 어제와 오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청했다. 간송컬렉션을 포함한 문화유산의 시대적 의미, 재정 여건으로 소장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 등도 들었다.

전 관장은 “최근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은 간송미술관에 서려 있는 문화보국 정신을 이 시대, 21세기 문화보국 정신으로의 승화이자 실천”이라고 밝혔다. 간송의 정신이 수집·보존 중심이라면 연구에 기반한 국내외 대중과의 소통·교감은 이 시대의 문화보국 정신이라는 의미다. 전 관장은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활동으로 우리 문화유산의 빼어난 아름다움과 가치·의미를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더 널리 전하고자 한다”며 “이를 통해 동시대 문화예술에 영감을 주고, 새로운 문화창조에 이바지하는 게 간송미술관의 역할이자 이 시대 문화보국 정신의 구현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첨단 디지털기술의 활용은 “디지털 문화환경에 익숙한 미래세대 젊은층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자 “실물 문화유산의 해외 전시가 지니는 여러 한계를 극복해 보다 효율적인 해외 전시 추진을 위한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전 관장은 “이제 전시를 둘러싼 다채로운 내용과 형식의 진화를 통해 국민들과 보다 가까워지고, 아시아·유럽·미국 등 적극적인 해외 전시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DDP에서 열리고 있는 몰입형 미디어 전시 ‘구달바별’을 찾은 관람객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구달바별’전은 최초의 몰입형 전시

- 간송미술관이 대중적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듯하다. 대중과의 접점인 전시회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전시들의 반응은 어떤가.

“간송미술관에서는 가을기획전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가, DDP에서는 대중적 관심을 끌고 있는 몰입형 전시인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일명 ‘구달바별’), 대구간송미술관에서는 개관 특별전 ‘여세동보- 세상 함께 보배 삼아’가 관람객을 맞고 있다. 3개 전시가 한꺼번에 열리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감사하게도 모두 큰 관심을 받고 있다.”

- 전시마다 내용과 성격이 조금씩 다른데, 각 전시의 취지는.

“DDP에서의 ‘구달바별’전은 간송미술관 최초의 몰입형 전시다. 국보·보물 등 90여점을 첨단 디지털 미디어로 재해석해 환상적인 예술체험을 선사하려 했다.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전은 보화각의 95번째 정기전이다. 한국 회화사에 빛나는 <근역화휘>의 전모를 처음 공개하며 간송미술관의 연구·보존 활동, 고려~조선 후기에 이르는 작품을 통해 한국미술사를 살펴보고자 했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전은 ‘훈민정음 해례본’ ‘미인도’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국보·보물 40건 97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개관을 알리고, 지역에서의 문화 향유기회를 넓히고자 했다.”

- ‘구달바별’전은 여러 측면에서 분석할 만한 전시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물의 가치·의미의 현대적 재해석, 동시대 흐름과 변화를 수용한 전시의 내용과 형식, 중장년층에 비해 관심이 적다는 젊은층의 관심 유도 등이 대표적이다.

“가장 큰 특징은 우리 문화유산을 최첨단 디지털기술로 재해석해 선보이는 몰입형 미디어 전시라는 것이다. 한국 문화유산 IP를 활용한 본격적인 첫 전시이기도 하다. 우리의 IP로도 독창적이고 국제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 ‘미인도’와 ‘혜원전신첩’의 풍속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추사 김정희의 글씨 등을 소재로 감각적인 공간연출, 공감각의 자극, 유물들 속에 담긴 철학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몰입과 특별한 체험을 시도한다.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 가치뿐 아니라 우리의 디지털 콘텐츠 제작과 정보기술(IT) 역량을 함께 보여주는 자리다. 가족 단위, 젊은층을 중심으로 외국인 관람객도 관심이 높다. 해외 인플루언서들, 멕시코 국영방송 등 언론의 취재도 이어진다. ‘K컬처’의 근간이 되는 전통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점에서도 보람을 느낀다. 예상 관람객 80만명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근래 젊은층에게 다가가 소통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각계각층 많은 분들이 제게 강조한 말씀이 미래세대를 포함한 문화유산의 친대중화 노력, 해외에서의 소개다.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더 널리 알리고, 또한 미술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미래세대에게 문화유산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세대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들이 더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보다 익숙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하는 게 당연하다. 젊은층은 문화유산, 전통문화에 관심이 적다는 게 통념이지만 제 경험상 그렇지만도 않다.”

‘구달바별’에서 만날 수 있는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국보)을 재해석한 작품.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 가속화되는 세계화 속에서 젊은층이 우리 문화유산,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는.

“‘K컬처’가 대중음악·영화·드라마에서 문학·클래식으로 확장하며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흐름의 기저에는 우리만의 독특한 미적 감각, 알게 모르게 지니고 있는 정체성, 이른바 ‘문화적 DNA’가 있다고 본다. ‘K컬처’는 수천년 쌓여온 역사와 문화 토대 위에 발전·진화된 것이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 앞선 사람들의 지혜와 예술성의 결정체인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인식할 때 새롭고 독창적인 우리 문화창조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 국제 무대 진출에 필수

- 간송컬렉션 IP를 활용한 해외 전시는 간송미술관은 물론 한국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는 일이기도 하다.

“디지털 미디어는 문화콘텐츠의 대중화 방편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국제 무대로 나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구달바별’전은 간송미술관 ‘Immersive(이머시브)- K’라는 몰입형 미디어전시 브랜드의 첫 전시이기도 하다. 향후 모든 미디어전은 모듈화해 공간과 규모를 축소·확대하면서 국내외에 선보일 예정이다. 실물 유산의 해외 전시는 여러 공간적·시간적 제약과 안전 문제 등이 있다. 이를 효율적으로 극복하는 게 첨단 디지털 기술의 적용, 전시의 모듈화다. 아시아와 유럽·미국 등 해외 전시를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 한때 중단됐던 봄가을 정기전은 계속 열리나.

“1971년부터 시작된 봄가을 정기전은 간송미술관의 상징과도 같다. 한때 중단되기도 했지만 지난봄 보수·복원 공사를 마친 보화각을 재개관하면서 봄 전시를 마련했다. 학술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봄가을 정기전은 그 전통을 이어나가려 한다.”

대구간송미술관 미디어 전시장 전경.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 대구간송미술관은 공립미술관이지만 간송미술관의 분관이기도 하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의 의의와 운영계획은.

“더 가까이에서 더 편하게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싶다는 요청에 부응한 10년 노력의 결과물이 대구간송미술관이다. 단순히 전시 공간을 늘리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 간송컬렉션, 문화유산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물론 지역의 문화 향유권을 확장, 대구의 문화적 토양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스페인 빌바오시가 짓고 구겐하임재단에 운영을 맡긴 구겐하임 빌바오와 유사한 운영모델이다. 대구간송미술관의 법적지위는 시립박물관, 모든 입장 수입은 운영 예산을 지출하는 대구광역시에 귀속된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상설전을 기본으로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문화향유의 기회 제공, 지역관광과 문화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하고자 한다. 모두가 공감하는 좋은 전시·프로그램을 통해 간송컬렉션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긴밀한 협력, 예산 등의 지원이 절실하다. 대구시와 간송미술관은 긴밀한 협의, 협력을 해나갈 것이다.”

- 간송미술문화재단 출범 이후 외부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협업, IP를 활용한 NFT프로젝트 등 여러 다양한 시도·도전을 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우리 문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크게 높아졌고, 간송미술관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이에 부응해 2013년 비영리공익법인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출범했다. 그동안 미디어 융합, 현대미술·영화 등 대중문화와의 협업, VR·AR 등 첨단기술의 활용을 통해 문화유산을 더 가깝고 흥미롭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주)롯데칠성 등과의 협업도 이어지고 있다. 파리 올림픽을 기념한 프랑스에서의 전시 참여도 현지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향후에도 우리 문화유산의 보존·연구는 물론 국내외적으로 한국 문화, 문화유산을 더 가까이, 쉽고 재미있으며 감동적으로 향유하려는 새로운 시도·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 이번 가을 기획전은 사실상 첫 유료화다. 한때 간송컬렉션의 국보가 경매에 나와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이는 미처 몰랐던 간송미술관의 재정상황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이기도 했다. 간송컬렉션이 지닌 문화보국이라는 숭고한 뜻과는 별개로 현실적으로 보존·연구·전시 등에는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

“아시다시피 간송미술관은 여느 대형 사립 미술관·박물관과 달리 모기업이나 큰 재정적 기반 없이 운영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특히 공적인 재단화를 시작하면서 역설적으로 운영비가 증가한 데다 조금씩 미뤄졌던 유물의 보존 등 관련 비용도 늘어났다.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많은 분들의 심려를 무릅쓰고 재단과 미술관의 유지를 위해 안타까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미술관은 적자운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간송미술관은 더욱 더 다양하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지금 하고 있다. 이번 유료화도 최소한의 운영비 확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결정이었다. 간송미술관 후원회, 매달 1만~5만원을 꾸준히 후원해주는 시민들, 기업 협찬 등 다양한 분들의 후원, 지지를 받지만 더 많은 분들, 기관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물론 전시 관람도 큰 힘이 된다.”

새 수장고 완공…미래지향적 DB 구축

- 전시와 함께 연구도 중요한데, 연구상황은.

“학술활동의 근간은 연구, 목록화 작업이다. 보화각의 보수와 함께 새 수장고가 만들어지면서 보다 체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기할 만한 유물들도 하나씩 보존처리를 거치거나 연구가 심화되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협업해 비지정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처리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 전시를 통해 공개해 나가겠다. 학술적 연구심화를 바탕으로 보물, 국보 등의 신청도 순차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다.”

- 간송미술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도 느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거나 자주 보게 되는 작품이 있나.

“간송컬렉션에 담겨 있는 문화보국 정신의 동시대적 실천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개인적으로 20년 전 이 일을 본격 시작할 때부터 어려운 길임을 알았다(웃음). 소장품은 제 개인 것이 아니기에 실제로 실견하는 기회는 다른 분들과 차이가 없다. 다만 이미지로라도 가끔 찾는 작품은 탄은 이정의 화첩인 <삼청첩>에 실린 ‘풍죽(風竹)’과 고송유수관 이인문의 작품 ‘선동전약(仙童煎藥)’이다.”

- 간송컬렉션, 간송미술관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21세기 지금 시대에 맞는 문화보국의 실천이다. 지금까지처럼 문화유산의 보존·연구를 계속하면서 국내외의 더 많은 분들과 아름다움, 가치와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 문화유산, 문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더 키우는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 문화의 팬덤을 만들고, 소통과 협업으로 새로운 문화창조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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