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한강의 노벨상과 한반도 전쟁 위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동안 세상이 환하게 뒤바뀐 듯했다. 축하와 기쁨이 넘쳐나는 분위기는 한참 낯설었다. 정치적 파행과 서민 경제의 파탄, 한반도 평화 위기라는 ‘우울의 삼중주’가 지배하던 세계가 돌연 사라진 느낌이었다.
오히려 한강 자신은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에 단호히 선을 그었다. ‘전쟁터에서 날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무슨 잔치고 기자회견이냐’고. 부친의 소박한 고향 마을 잔치까지 한사코 말렸다. 지구촌이 전쟁과 학살로 얼룩지고 있는 시대를 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인간의 죽음이 바벨탑처럼 쌓여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옥도가 펼쳐지며 평화가 점점 더 멀어지는 세상을 놓고 축하연을 벌일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한반도 역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소식이 날아들며 심각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대북 전단과 대남 오물풍선을 주고받으며 증폭되던 갈등과 불안에 새로운 차원이 더해졌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제공 및 군참관단 파견 가능성을 내비치고, 여당 국회의원은 국가안보실장에게 파병 북한군에 대한 폭격 요청 문자까지 보냈다. 북한과의 적대에 더해 러시아와의 충돌까지 유발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발상이었다.
이제 윤석열 정권이 추진해온 한·미·일 군사동맹으로의 일방통행과 더불어 남과 북이 공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가파르게 연루되는 모양새다. 한반도에 군사 분쟁이 발발할 경우 러시아가 북한의 동맹군으로 개입하고 일본 자위대가 남한으로 출동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기우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대통령과 책임자의 잘못된 판단과 대응으로 한반도 평화라는 우리 삶의 토대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파국은 절대 없어야 한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든 한국전쟁의 뼈아픈 역사를 결코 되풀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전쟁 무기 지원을 저울질하고 있다. 증폭되는 국정농단과 공천개입 의혹에 지지율이 10%대로 주저앉은 불길한 시점의 일이다. 게다가 며칠 전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은 결국 실망과 분노만 키웠을 뿐이다. 대통령은 이런 사면초가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군사적 모험의 길을 택하는 무리수는 두지 말아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이 한반도로의 위기 전파와 전쟁 발발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임은 물론이고, 전쟁이란 무릇 적군과의 대결을 넘어 국가폭력과 민간인 학살을 쌍생아처럼 낳는 참혹한 현장이기도 한 탓이다.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로 국가폭력 트라우마와 결부된 5·18과 4·3이라는 우리 현대사의 골 깊은 상처를 다룬 한강 작가가 전쟁을 비판적으로 직시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축하연 거부에는 반전과 평화의 염원이 담겨 있다. 평화란, 바로 내일이라고 기약할 수는 없어도 오늘 지금 노력을 다해야 하는 일이다. 한강의 작품과 시대정신은 전쟁과 학살의 절망을 넘어서기 위한 희망과 치유의 노력이다. 절망의 현실이 희망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전쟁과 학살의 시대에 맞서, 전설적인 록 밴드 비틀스의 존 레넌은 1971년 발표한 ‘이매진(Imagine)’에서 ‘죽고 죽이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상상하자’고 아름답고 조용한 희망의 사자후를 토했다. 베트남전 반대의 시대정신이 담긴 ‘이매진’을 통해 반전평화의 열망은 그렇게 울려 퍼졌다. 같은 해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나왔다. 독재와 억압의 ‘긴 밤을 지새우고’ 끝끝내 밝아올 세상을 결연히 꿈꾸고 노래한 ‘아침이슬’은 희망의 울림으로 퍼져나갔다. 희망과 상상력으로 겹쳐지는 두 노래는 반전과 평화, 반독재와 민주주의를 위한 긴 여정을 상징하는 빛나는 시대정신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꺾이지 않는 희망의 노래이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실천을 통해서만 그 노래는 피어난다. 학살과 죽음으로 얼룩져온 ‘전쟁의 폐허’를 응시하며 반전과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부단한 노력 속에서만 희망은 솟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에 드리운 전쟁 위기를 걷어내는 것이 모든 희망의 출발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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