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다문화’라는 그 말
요즘 성남에 자주 간다. 성남. 흔히들 알고 있는 판교, 분당이 아니다. 남한산성 아래, 청계천 철거민의 이주로 시작된 도시. 광주대단지 사건의 아픈 역사,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나이>로 기억되는 그곳이다.
지난 9월부터 한 회사에서 파트타임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중장년 일자리 지원 차원에서 마련된 단기 일자리다. 내가 맡은 일은 은퇴전문인력 멘토와 청소년·청년 멘티 간 멘토링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멘토링 코디네이터다. 그 일로 성남에 간다. 성남의 한 다문화지원기관에서 멘토링을 신청한 것이다.
태평역, 모란역 일대의 성남 구도심은 서민들의 소중한 주거지역이다. 소설에서 ‘대학 나온’ 권씨가 아홉 켤레의 구두를 남겨놓고 떠난 그곳에 지금은 많은 이주민과 그 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다. 빽빽한 저층주거지 골목은 ‘응답하라 19XX’ 시절의 느낌이 여전히 살아 있다. 그 안에 내가 찾는 다문화센터가 있다. 그곳은 지역의 아동·청소년을 위한 쉼터이자 놀이터, 도서관, 공부방 등 복합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간은 오래되어 낡고 허름하지만, 여러 봉사자와 활동가들, 그리고 아이들이 제집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공간 여기저기서 각자의 일을 보고 있다. 간판 여기저기 적혀 있는 ‘다문화’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다문화, 다문화, 다문화…. 나도 여러 번 되뇌어본다.
그 말은 이 정부가 동행하겠다는 ‘약자’임을 증명하는 데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당신들은 온전한 한국인이 아니라는 차별과 배제의 의미가 담겼다. 두 명의 고등학생 멘티를 만났다. 이주민 가정의 자녀로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다.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간호사와 항해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 없이 유지하기 힘든 사회다.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밥상을 차릴 수도 집을 지을 수도 없다. 험하고 힘든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정작 한국인으로 받아들이기는 거부하는 이 모순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발표한 2023년 국내 체류 외국인은 250만7584명이다. 한국 전체 인구의 4.89%에 해당하는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국인 귀화자, 내국인 이민자 2세 및 외국인 인구를 합친 이주배경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을 때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하는데 이 같은 수치는 한국이 본격적인 다문화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다문화’란 말이 모든 외국인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다문화를 저개발국 출신자들과 연결해 사용하면서 문화적 다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강조하는 개념이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그 언어에 담긴 의미를 듣는 당사자들은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다문화로 불리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이주노동자가 온다는 것은 단순히 ‘인력’이 오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의 손과 함께 삶과 꿈도 온다.”(우춘희, <깻잎 투쟁기>)
이제 ‘다문화’라는 딱지가 아닌 소중한 한 인간의 이름으로 불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학 나온 권씨도, 이주민 가족도 이 나라에서 한국인으로 더불어 살자.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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