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락 선생 닮고 싶다 했는데…그를 기리는 상, 뜻깊고도 무거워”

조봉권 기자 2024. 11. 1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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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자 3인 인터뷰

지난 11일 오후, 제24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자 3인이 국제신문 편집국 회의실에 모였다.

시 부문 수상자 송문희 시인은 경남 밀양에서 열차로 왔다. 수상작은 시집 ‘돌카의 등굣길’(애지)이다. 부산에서 활동하면서 펴내는 동시집마다 수록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거나 묵직한 상을 받는 동시 부문 수상자 박선미 동시인의 수상작은 동시집 ‘잃어버린 코’(청개구리)이다. ‘최계락의 동요와 동시 세계’로 연구 부문 상을 받은 부산 문단 원로 박일 아동문학가는 편안하고 소탈한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세 사람 모두 최계락(1930~1970) 시인을 먼저 떠올렸다. ‘꽃씨’ ‘외갓길’ ‘꼬까신’의 시인 최계락은 국제신문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최계락문학상은 ㈔최계락문학상재단과 국제신문이 공동 시행한다.

제24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자들이 지난 11일 국제신문 편집국 회의실에 모여 환한 표정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 부문 송문희 시인, 연구 부문 박일 아동문학가, 동시 부문 박선미 동시인.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 시 부문 송문희 시인

송문희 시인은 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 교육부가 펴낸 성인문해교과서 초등과정 교과서 ‘배움의 나무’ 제6권 7쪽을 먼저 펼쳐 보였다. 거기 최계락의 동시 ‘하늘’이 있었다. “하늘은/ 바다// 끝없이/ 넓고 푸른/바다// 구름은/조각배// 바람이/사공 되어/ 노를 젓는다.” 송 시인이 말했다. “저는 밀양에 살며 현재 어르신 문해교육을 합니다. 수상 통보를 받고 이 시를 다시 읽었습니다.”

어르신들께 비유를 설명할 때 정말 좋은 시로 느꼈던 ‘하늘’이 바로 최계락 시인의 작품이었음을 새삼스럽게 느끼고는 어르신 수강생들과 함께 최계락의 ‘꼬까신’ ‘꽃씨’를 읊고 노래하며 생각했다. “바로 이런 시를 쓰고 싶다”. 송 시인은 1963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독후감을 써서 경상북도 대회에 대표로 나가게 됐죠. 원했던 상을 받지는 못했어요. 선생님께 슬쩍 물어보니 다른 학생이 ‘창작’을 해서 낸 작품이 좋아 최고상을 탔다고 해요.”

문학소녀 송문희 마음에 ‘창작’이라는 낱말이 꽂힌 순간이 아닐까 싶다. “삼십 대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정말 심하게 고생했어요.” 오랜 세월 몸을 추스르고 40대가 돼 경북대 대학원 교육학과에 들어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 길은 문학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교육학·문예창작·논술강의를 한몫에 듣고 독서모임을 만나고 밀양문인협회에 들고 평생교육사로 활동을 펼치며 열정을 잃지 않고 살던 그는 문득 “오롯이 문학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몇 년 그렇게 해보니 잘 안 되더군요. 시도 잘 안 써지고….” 새로 시작한 일이 성인을 위한 문해 교육이었다. 비로소 문학도 새롭게 다가왔다고 했다. “시골길을 달려 어른들 만나러 가고, 그분들이 간직한 신선한 감각과 세계를 접하며, 동심·시심이 솟는 걸 느꼈습니다.” 그는 2004년 ‘시와비평’ 신인상으로 등단해 시집 세 권을 냈다. 수상 시집 ‘돌카의 등굣길’은 그늘을 생각하는 시선과 마음이 두드러진다는 평을 받는다. “그렇게 감동을 드릴 수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 시 부문 수상자 송문희 시인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하늘’을 읽고 그 함축과 비유에 감동할 때

빙긋 웃었습니다. ‘꼬까신’ ‘꽃씨’를 검색하여 놀랄 때

비로소 다가왔습니다. (최계락 시인을) 알고 있었네!

문해교실 학습자들 입술이 ‘꼬까신’을 노래합니다.

나도 같이 부릅니다. 엄마도 아이도 부르며

시인의 마음을 잇는 감동의 순간입니다.

그렇게 아이처럼, 시인처럼,

깊은 감동을 주는 시를 노래하고 쓰겠습니다.

<약력>

1963년 경북 영주 출생. 2004년 계간 ‘시와 비평’ 신인상. 경북대 대학원 교육학과 석사 졸업. 제26회 두레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밀양지부 이사,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회원. 평생교육사로 활동. 시집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 ‘고흐의 마을’ ‘돌카의 등굣길’. 2015년부터 문해교사로 활동.

▮ 동시 부문 박선미 동시인

“그때가 1974년,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국어선생님은 교과서에 실린 작품의 작가를 조사해 발표하게 했습니다. 그때 최계락 시인의 시 ‘해변’이 교과서에 있었어요. ‘물결이 노닐다/ 몰리어 가면/ 하얀 모래밭에/ 조개/ 한 마리 …’로 시작합니다. 어느 날 옆 반 친한 친구가 선미야! 선미야! 하면서 황급히 찾아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겁니다.”

요컨대 이렇다. 국어선생님은 옆 반 반장에게 ‘해변’을 쓴 시인에 관해 발표하게 했다. 반장은 최계락 시인에 관해 발표하다 울고 말았다. 그 반장은 바로 최계락 시인의 딸이었다. 최계락 시인이 마흔 살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타계한 지 4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 일은 문학소녀 박선미에게 친구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게 하면서 동시에 문학과 시인에 관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박선미 동시인은 존재감이 크다. 문단에서 이런 일 저런 과제를 척척 해내는 ‘큰 일꾼’ 같은 존재로 통한다. 현재 부산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이며 부산MBC ‘어린이문예’ 편집주간이다. 계간 ‘열린아동문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오래 하고 있다. 동시집 ‘지금은 공사 중’ ‘불법주차한 내 엉덩이’에 실은 동시는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활동하며 상도 많이 받았는데 서덕출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부산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등이다.

그런데 최계락문학상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번 수상이 뜻깊은 일로 다가왔을 법하다. 박 동시인은 “한국 아동문학에서 ‘최계락’이라는 성함이 갖는 뜻은 참 깊고 무겁다”며 “오는 19일 시상식에는 중학교 때 친구인 최계락 선생 따님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공감을 전하면서 거기 머물지 않고 ‘실천’에 이를 수 있게 돕는 시가 좋은 시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더 좋은 세상, 더 나은 나와 우리를 위해 실천에 이르도록 힘 보태는 동시를 쓰겠습니다.”

# 동시부문 수상자 박선미 동시인

귀여운 1학년 어린이들과 수업을 시작하려는 차에

수상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아이들 박수 소리에

기쁨은 두 배가 되었지만 무게도 와 닿았습니다.

‘잃어버린 코’는 동시의 역할을 깊이 고민한 작품집입니다.

동시는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

독자가 느낀 감동이 실천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따뜻하고 단단한 힘이 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좋은 세상이 실천에서 완성되듯

시 읽기도 실천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약력>

부산 출생. 동아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학위 받음. 1999년 부산아동문학 신인상·창주문학상으로 등단.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동시집 ‘불법주차한 내 엉덩이’ 외 5권. 서덕출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부산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등.현 부산아동문학인협회 회장.

▮ 연구 부문 박일 아동문학가

박일 아동문학가는 “내 인생 ‘버킷리스트’로 잡아 놓은 일 가운데 ‘선배 문학가 선양하기’가 아주 비중이 높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계락 이주홍 조유로 선생 등 선배 아동문학인들께서 남긴 문학 업적을 더 깊이 공부해 선양하는 일. 그것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이라고 다짐하지요.” 제24회 최계락문학상에서 연구 부문 상을 탄 ‘최계락의 동요와 동시 세계’는 올해 78세로 등단 45년을 맞이한 원로 아동문학가 박일 선생이 성실하고 겸허하게 다짐을 실천한 끝에 태어난 성과물이다.

인터뷰를 이어가면서 한 가지 더 ‘놀라운’ 말을 접했다. 박일 아동문학가 마음 속에 다짐이 또 한 가지 있는데 ‘후배 문학인 선양하기’라고 한다. 선양은 명성이나 권위를 널리 알린다는 뜻이다. 박일 아동문학가는 “후배 문학가들 가운데 먼저 돌아가신 분도 있고, 훌륭한 성취를 이룬 분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의 작품세계를 골고루 조명해서 글로 남기고자 한다.” 이 일이 잘 진행된다면 지역문학의 소중한 아카이브가 된다.

그는 “비슷한 차원에서 후배 문인에게 조금이나마 기회를 더 줄 수 있을까 싶어 나는 요즘 문학 연구 쪽 글을 주로 쓴다. 동시 발표는 별로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문학 동네의 훈훈한 풍경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1946년생인 박일 아동문학가는 1979는 ‘아동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동천고 교감 등 오랜 세월 부산 교육계에 몸담았다. 동시열심히 하며 부산 아동문학계를 든든히 떠받치며 동시집·산문집·평론집을 부지런히 펴냈으며 한국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부산문학상 부산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그는 “읽고 공부할수록 최계락 선생의 동시 작품은 순수 서정시로 최고다. 그분 앞에서는 내가 위축된다”고 최계락을 기리고 ‘선양’했다.

# 연구부문 수상자 박일 아동문학가

선배 문학가를 선양하는 일!

그 갸륵한 행동에 축복을 내렸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옷깃을 여밉니다.

가장 세련된 동시 앞에서 제 작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최계락의 동요시는 방정환의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진정한 해방과 문화운동의 승화이며,

문화적 계승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문학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약력>

1946년 경남 삼천포 출생. 진주교대, 동아대 국문학과 졸업. ‘아동문예’ 동시 천료(1979) 및 제7회 계몽사아동문학상 동시 당선. 동시집 ‘별이 필요해’ 외 13권, 산문집 ‘아름다운 동시교실’ 외 3권, 문학평론집 ‘동심의 풍경’ 외 3권. 한국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부산문학상, 부산광역시문화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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