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리 딸이 자꾸 뭘 거래하러 가요”…짠물 소비 시대, 여기서만 돈 쓴다는데
당근마켓 올 거래액 6조 돌파
편의점·다이소 등 저가매장
1000원 이하 상품들 ‘불티’
백화점 명품 매출 뒷걸음질
“강력한 내수경기 진작 시급”
백화점에서 비싼 명품을 찾는 사람은 사라지고,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 거래 규모는 나날이 폭증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최저가 도시락으로 한끼를 해결하고, 생활용품은 다이소에서 값싸게 구매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 직장인 김제민 씨(36)는 내년 초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깊어진 불황과 살인적 물가 탓에 육아용품을 새 것으로 장만하기가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그가 택한 것은 ‘당근마켓’이었다. 유명 브랜드 유모차를 비롯해 다양한 육아 용품을 정가의 20~30% 수준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김씨는 “이미 유모차, 신생아 카시트, 젖병 소독기, 아기 침대 등을 다 합해 100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중고로 구매했다”며 “일부는 무료 나눔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회사원 정민아 씨(34)는 퇴근 후 편의점에서 2000~3000원대 저가 도시락을 사서 끼니를 떼우며, 쇼파에 누워 중고거래 앱을 보는 것이 저녁 시간 루틴이다. 20대 시절 사두고 쓰지 않던 명품백, 구두, 옷 등을 되팔기 위해서다. 정씨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대를 줄이고 매주 안 쓰는 물건을 당근으로 팔고 있다”며 “용돈벌이가 기대 이상으로 쏠쏠하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러한 ‘당편소(당근·편의점·다이소)’ 소비를 불황형 소비의 전형으로 보고 있다.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당근마켓 중고거래 규모가 지난 2021년 5100만 건이던 것이 2023년 6400만 건으로 급증했다. 거래금액도 2021년 2조 9000억원에서 2023년에는 5조 10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심지어 올해 1~9월은 이미 4900만건을 넘기면서 5조 4000억원 거래가 이루어졌다. 불과 3분기 만에 지난해 전체 규모를 돌파한 것이다. 올해 연간 매출액은 6조원 돌파가 확실시된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자전거, 의자, 컴퓨터, 책상 등 일상 중고용품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며 “지금도 계속 사용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편의점 업계에서도 ‘짠소비’가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경기침체로 장바구니 부담이 커지자 1000원을 밑도는 초저가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1000원 이하 상품의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은 2021년 10.4%에서 2022년 23.3%로 뛰더니, 올해 1~10월은 전년 동기 대비 28.1%로 매해 20%를 웃도는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경쟁사 세븐일레븐은 아예 편의점 4사 가운데 유일하게 2900원짜리 최저가 도시락을 선보였다. ▶본지 13일자 A18면 보도
회사원 정민혁 씨(29)는 “물가는 치솟고 월급은 안 오르는데 요즘은 국장(국내 주식시장)마저 여의치 않아 1년치 연봉이 손실 상태”라며 “앞으로 외식 안 하고 쇼핑 안 하고, 편의점 도시락만 먹으면서 ‘존버’(열심히 버티다)할 것”이라고 했다.
저가형 오프라인 매장인 다이소도 불황형 소비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아무리 비싸도 5000원을 넘지 않기 때문에 용돈을 받아 쓰는 10대 학생들과 20~30대 직장인들에게 인기다. 실제로 다이소는 ‘균일가(품질·품종과 무관하게 동일한 가격을 책정)’ 정책을 고수하면서 제품 가격을 △500원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6가지로만 구성하고 있다.
다이소 매출은 매년 고공행진 중이다. 올해 4조원을 거뜬히 돌파할 전망이다. 다이소 관계자는 “고물가로 소비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면서 가성비 균일가 상품에 대한 수요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백화점 명품 매출은 상승세가 확실히 둔화됐다. 지난 2021년 46.9%에 달했던 백화점 명품 신장률은 올해 11.1%(1~10월 기준)로 뚝 떨어졌다. 롯데백화점은 2021년 35%에서 올해 5%로, 현대백화점은 38.4%에서 11.5%로 급락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내수 경기가 진작되지 않고 침체가 장기화되니 가계에 부담이 되는 사치성 지출을 멀리하고 100원, 200원 단위까지 따져 전략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서민, 중산층 피부에 와닿는 경기 진작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이러한 불황형 소비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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