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개발철학 담긴 카시오 T셔츠 `대박`
1980년대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들, 특히 남자들에게 있어서 필수 아이템이라고 불릴 정도로 누구나 한 개씩은 보유하고 있었던 물건이 손목에 차는 전자시계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저렴하고 인기있었던 브랜드가 일본의 전자회사 카시오(CASIO)가 만든 'G-SHOCK' 시리즈였다.
육각형 프레임 내에 직사각형 흑백모니터가 내장돼 있고 디지털 숫자들이 여러 크기로 시간과 요일, 날짜를 표시하고 있어서 당시 중학생이었던 필자는 마치 공상과학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느낌을 받았던 첨단 장비였다.
G-SHOCK는 1983년도 출시 이래 40여년간 아직까지도 스테디셀러로 각광받으며 지금까지 약 1억5000만개 이상 판매되고 있다. 이렇게 40년 이상 인기가 식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G-SHOCK이 갖고 있는 개발철학에 있다. 이는 다름아닌 '강인함'과 '튼튼함'이다.
1983년 이전에 출시된 시계들은 떨어뜨리면 안 되는 섬세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G-SHOCK 개발 담당자는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튼튼한 시계를 만들자'라는 개발 이념을 갖고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R&D 센터 3층 창문에서 떨어뜨리는 작업을 반복하며 어떻게 파손되는지 분석했다. 그는 단단한 소재로 만든 프레임과 충격을 완충하는 소재 결합에 성공했고, 제품은 완성됐다.
이후 이 G-SHOCK 시리즈는 브랜드 인기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모자, 머그컵, 양말 등 다양한 콜라보 제품을 출시해 왔으나 모 브랜드만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사내에서는 실패의 근본적 이유를 새로운 제품에 G-SHOCK만이 보유하고 있는 '개발 철학'이 들어 있지 않다는데 두고 새로운 프로젝트팀을 4년전부터 가동했다.
이 팀이 결정한 아이템은 'G-SHOCK의 개발 철학을 계승한 T셔츠'였다. 이 T셔츠에는 개발 이념이 있기 때문에 '강인함'과 '튼튼함'의 전이가 필수적이었고, G-SHOCK이 탄생한 이래 이러한 이니셔티브가 이루어진 것은 이 프로젝트가 최초였다.
프로젝트 멤버들은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할 수 있다면 환경 친화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강인한 티셔츠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G-SHOCK의 강인한 콘셉트를 생각해서 '구멍이 나지 않는', '찢어지지 않는' 등의 생각을 모아 실제로 방탄조끼에 사용되고 있는 소재로 재킷을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시계와 정확히 동일한 가치를 제공하더라도 고객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고 생각을 바로잡고 '색이 바래지 않는 T셔츠'로 선회한다.
검은색 옷은 햇빛이나 표백제에 노출되면 색이 바래질 수 있기에 원료 단계의 안료(착색 물질)를 혼합한 특수원사를 선택, 한마디로 '퇴색에 강한' 콘셉트를 완성시켰다. 이어 G-SHOCK을 개발하는데 사용된 기계를 사용하여 수 없는 내마모성 테스트를 통해 '늘어나지 않는 강인한' 콘셉트까지 완성시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G-SHOCK이 갖고 있는 장점 중 하나인 가격은 원가 이슈 탓에 오히려 거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일반 T셔츠라고 하면 3000~5000엔(약 2만7500-4만5700원)이지만 해당 상품의 가격은 1만2100엔(약 11만원)에 달했다. 롱 T셔츠는 1만4850엔(약 13만6000원)이었다. 또한 계절적으로 출시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불안해했지만 온라인 판매의 결과는 3시간만에 매진이었다. 고객들이 'G-SHOCK의 개발 철학'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맥주를 만들 때 생기는 부산물을 추출해 데님을 개발한 삿뽀로, 낚시대 카본 기술을 활용하여 내구성과 경량성을 갖춘 우산을 개발한 다이와도 있지만, 전자시계, 계산기 등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자사의 개발 철학을 각인시키고자 의류를 직접 제작해 대성공을 거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앞으로 닥칠 엄청난 일을 상상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혹시라도 '짓밟아도 멀쩡한 질긴 화장지'나 '100년 사용할 수 있는 양말' 같은 프로젝트가 자신에게 떨어질 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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