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요릿집엔 웃음, 유치장엔 한숨" 경성 밤의 교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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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밤의 서울을 가장 현대적으로 가장 빛나게 장식하는 이들은 아마 서대문 밖에 있는 예술학원에 모여드는 꽃같은 남녀 청년일 것이다. 젊은 남녀가 손길을 서로 잡고서 아리따운 음악을 쫓아 춤추고 웃음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는 기자의 알고자 하는 바가 아니요, 다만 세계를 정복하는 '딴쓰' 열은 마침내 옛 도읍 서울 한 모퉁이에도 엄연히 그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제로부터 3년 전 노서아(露西亞)에서 딴스를 전문으로 배웠다 하는 김동한(金東漢)씨가 경성에 돌아와 예술학원의 패(牌)를 붙이자, (중략)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기고 남자는 여자를 얼싸안고 풍류를 쫓아 나비와 같이 쌍쌍히 노는 모양을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을 외우고 있는 부모들이 보게 되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그러나 이 예술학원의 존재는 엄연하여 이미 여자의 입회자가 60명에 이르렀다 하니, 아! 알지 못해라. 이것이 무도(舞蹈)의 힘인가? 김(金)선생의 힘인가? 예술학원에서는 매주 토요일 밤이면 토요회(土曜會)라는 모임이 있어서 남녀 회원이 전부 모인 후 일대 무도회가 열린다. 17~18세의 고운 처녀들은 단장을 곱게 하고 무도장에 나타나 우선 청년 회원들과 목례(目禮)가 교환된 후 피아노의 울림이 일어나자 너나없이 서로 잡고 미친 듯? 취한 듯? 가벼운 발자취로 흐르는 물결같이 신묘한 무도의 막은 열린다. 창밖에 모여 구경을 하고 섰던 동리 청년들은 보다 보다 못하여 욕설이 난다. 조롱이 시작된다! 마침내 돌멩이질이나 하고 유리창이 깨져서 고운 무도의 나라에는 번번이 소란한 풍파가 생기기를 마지 않는다. (중략) 욕설이 귀를 깨치던 청춘 남녀의 밤 놀이터 간편한 환락장의 생명은 의심없이 지속될 것은 장담이라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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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날아다니는 '박쥐', 밀매음 여성 유곽, 눈물조차 시들은 인생들 집합소 '딴쓰 학원' 모여드는 꽃같은 남녀청춘 시내 경찰서엔 구류범들 탄식 목소리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빛이 밝을수록 어둠은 더 진한 법이다. 1924년 9월 매일신보에 '밤 경성의 암흑면 탐방기'라는 연재 기사가 8번에 걸쳐 실렸다. 전편 4개의 이야기에 이어 나머지 4개의 이야기로 탐방기를 마무리해 본다.
다섯 번째는 '밤에만 날아다니는 박쥐 무리들'이란 제목의 밀매음 여성에 관한 기사다. "밤의 서울에 서식하는 어여쁜 직업 부인들 중에 '트레 머리', 흰 저고리, 검정 통치마로 꾸민 소위 학생 밀매음이 있는 것을 잊어버릴 수는 없다. 그들은 밤마다 무리를 지어서 혹은 극장 혹은 한강 혹은 남산 등지로 출몰하며 기생 이상 창기 이상의 마수를 가지고 따로 한 세계를 지키고 있는 것이니 그들의 무기는 곧 연애(戀愛)이다. (중략) 그들의 과거는 대개 기생 퇴물-여학생의 타락된 것의 두 가지의 종류로 직업이 직업인 고로 자세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시내에 50명 가량은 분명히 주둔해 있는 것이다. 그들이 가장 중요시 하는 선전장은 연극장이다. 날마다 저녁 때만 되면 기생들과 같이 저녁 세수를 곱게 하고 두세 명의 동무와 함께 음악을 쫓아 단성사, 조선극장으로 모여 든다. (중략) 그들 중에도 여러 가지 분류가 있다."
기사는 이어진다. "대별(大別)하면 여학생으로 그릇된 연애에 실수를 한 후 홧김에 뛰어나와 돈에 욕기(慾氣)를 부리는 것보다도 순전히 방종(放縱)해진 성질을 걷잡지 못하여 헤매이는 자, 기생 퇴물로 다시 기생으로 나가기는 싫고 그대로 살 수는 없으니까 머리나 틀고 극장 출입이나 자주하여 생활을 보장하는 자, 당장 여학교에 적(籍)을 둔 자로 동무들의 유인에 끌려서 몸을 버린 것이 동기로, 차차 버릇이 되고 양심이 흐려져서 정신없이 쫓아 다니는 자, 그들 중에 제일 가증한 자는 기생 퇴물이니 그들은 이 천지의 주권을 잡고 있는 동시에 항상 후배를 양성하기에 게으르지 않은 것이다. 밤은 이미 삼경(三更)이 넘어 고적한 넓은 길로 양복한 청년과 트레머리한 검정 치마가 손을 잡고 지나간다. 그것을 신성한 부부로 믿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는가." (1924년 9월 13일자 매일신보)
여섯 번째 이야기도 매음굴에 관한 기사다. "일로전쟁(日露戰爭)이 시작되며 경성에는 새 살림거리가 하나 늘었으니 정부가 승인했기 때문에 학교가 말리지 못하고 교회에서도 어찌 할 수 없는 매음굴이 곧 그것이다. 성욕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절대적이요 본능적인 고로 마침내 그들의 번식을 날을 쫓아 성(盛)히 되어 마침내 오늘날에 와서는 신정(新町) 일대에는 밤마다 당당한 인육(人肉)의 시장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미 경성에 유곽이 창설된 지 춘풍추우(春風秋雨) 20여 성상(星霜)을 지내오는 동안에 썩은 고기덩이나 다름없는 가련한 창기들 사이에 살내음에 굶주려 달려드는 자들에게 '들어오십시요! 주무시고 가십시요!' 하며 손을 끌 때에 마음있는 사람이고야 어찌 개탄하는 눈물이 없겠으랴? 같은 신정 중에도 2층 집이 즐비한 곳은 다소간은 조촐한 편도 있으니, 만일 눈을 서사헌정(현 장충동)이나 병목정(현 쌍림동) 또는 용산에 있는 대조정 일원의 추악 무류(無類)한 창기의 무리를 바라볼 때에는 어찌 몸서리가 쳐지지 않을 수 있으랴. 사람으로 가장 영광스러운 15~16세, 20세 내외의 어린 몸으로 한번 그르쳐 이 마굴(魔窟)에 빠지기만 하면 1년에 80원을 달게 받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니, 그들의 신세야말로 울려 하여도 이미 눈물조차 시들은 '산 시체'가 아니겠는가. 여자에게는 생명보다 정조가 더욱 중할 때가 많다. 다 같은 여자로 태어나서 혹은 부모를 잘못 만나 혹은 남의 유인에 떨어져 마침내 죽기보다 오히려 더욱 슬픈 창기의 무리에 몸을 던지게 되면 그들은 반드시 자포자기의 무서운 반항이 일어나, '오냐. 하는 수 있느냐. 이왕 이 모양이 된 이상에는 뱃속 편하게 사내 놈들을 조롱이나 하고 놀자'는 기막히는 결심이 생기는 것이라 한다. 시내에 있는 공창(公娼)의 수는 실로 400여 명! (후략)"
일곱 번째 이야기는 '무도장'에 관한 것이다. "밤의 서울을 가장 현대적으로 가장 빛나게 장식하는 이들은 아마 서대문 밖에 있는 예술학원에 모여드는 꽃같은 남녀 청년일 것이다. 젊은 남녀가 손길을 서로 잡고서 아리따운 음악을 쫓아 춤추고 웃음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는 기자의 알고자 하는 바가 아니요, 다만 세계를 정복하는 '딴쓰' 열은 마침내 옛 도읍 서울 한 모퉁이에도 엄연히 그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제로부터 3년 전 노서아(露西亞)에서 딴스를 전문으로 배웠다 하는 김동한(金東漢)씨가 경성에 돌아와 예술학원의 패(牌)를 붙이자, (중략)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기고 남자는 여자를 얼싸안고 풍류를 쫓아 나비와 같이 쌍쌍히 노는 모양을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을 외우고 있는 부모들이 보게 되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그러나 이 예술학원의 존재는 엄연하여 이미 여자의 입회자가 60명에 이르렀다 하니, 아! 알지 못해라. 이것이 무도(舞蹈)의 힘인가? 김(金)선생의 힘인가? 예술학원에서는 매주 토요일 밤이면 토요회(土曜會)라는 모임이 있어서 남녀 회원이 전부 모인 후 일대 무도회가 열린다. 17~18세의 고운 처녀들은 단장을 곱게 하고 무도장에 나타나 우선 청년 회원들과 목례(目禮)가 교환된 후 피아노의 울림이 일어나자 너나없이 서로 잡고 미친 듯? 취한 듯? 가벼운 발자취로 흐르는 물결같이 신묘한 무도의 막은 열린다. 창밖에 모여 구경을 하고 섰던 동리 청년들은 보다 보다 못하여 욕설이 난다. 조롱이 시작된다! 마침내 돌멩이질이나 하고 유리창이 깨져서 고운 무도의 나라에는 번번이 소란한 풍파가 생기기를 마지 않는다. (중략) 욕설이 귀를 깨치던 청춘 남녀의 밤 놀이터 간편한 환락장의 생명은 의심없이 지속될 것은 장담이라도 할 것이다."
탐방기는 '유치장' 이야기로 연재의 끝을 맺는다. "밤의 서울, 환락의 경성은 밤마다 밤마다 사랑의 속살거림과 즐거운 웃음소리에 꿈결같이 새 아침을 맞이하는 그 반면에, 시내 각 경찰서 유치장에서는 인세(人世)의 무상함을 탄식하며 철창에 비끼는 가을 달빛에 원통한 눈물-뉘우치는 눈물-그리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가련한 사람들이 버둥거리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중략) 시내 각 유치장에 꾸물거리는 사람들에게는 억울한 사정도 많으렸다! 낭패되는 일도 많으렸다! 부모의 임종 머리에 잡혀 간 사람! 애인과 만날 시간을 앞에 두고 잡혀간 사람! 가지가지 가슴 타는 억색(抑塞)한 사정에 죄가 있는 이던, 없는 이던 유치장 마룻바닥에 몸을 실고 가을 밤을 눈물과 한숨으로 새우는 것이 아닐까. (중략) 유치장에 갇히는 사람들 중에도 여러 가지 명목이 있다. 경찰범으로 잡혀 갇히면 구류 처분을 당하는 것이니, 29일이 최종 기한이며 무슨 범죄 사건에 관련된 의심이 있어서 그 의심을 풀고자 잡아 가두는 사람에게는 유치 처분을 내리는 것이니 그 기간은 열흘이요, 다음에 술 주정꾼이나 거동이 수상한 자들은 모조리 검속 처분을 하는 것이니 그 기한은 사흘 동안이다. 그리하여 어느 사람이든지 유치장에 들어가게 되면 우선 경관은 그의 의복을 검사한 후 옷고름을 모조리 뗀 후 유치장으로 몰아넣으면 그 속에는 무수한 죄악의 선배가 있어서 새로 들어오는 무엇을 만난 것이다. 음식은 하루 세 끼씩 겨우 콩밥은 면하나 결코 다시 두 번 생각이 날 음식은 아니며, 잠이야 오든 아니 오든 아침 6시 반에는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법이라는데, 유치장에 있는 이의 제일 그리워하는 것은 담배라고 한다. 그러하므로 그들은 주야로 담배 먹을 궁리를 하던 중, 시내 모 경찰서 유치장에서는 유명한 쓰리꾼이 들어왔는데, 하룻밤에는 일부러 유치장 안에서 싸움을 일으킨 후 중재를 하려고 들어온 순사의 뽀게트 속에 든 담배와 성냥을 절도하여 먹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치장에 든 이들의 가장 고통으로 여기는 것은 똥통이라고 한다. 일기가 추워지면 모르거니와 삼복(三伏) 중에 똥통을 방구석에 다가 놓아놓고 앉았으려면 코를 찌르는 구린 냄새에는 감수(減壽)가 될 지경이라고 한다.(후략)"
밤은 점점 깊어가고 월색(月色)은 갈수록 밝아간다. 밤의 서울, 환락의 서울, 신고(辛苦)의 서울! 그 밤은 점차 점차 깊어가니 요릿집에서 흐르는 웃음소리, 유치장에서 떠드는 한숨 소리! 그 소리는 모조리 합하여 대(大)경성의 밤을 상징하는 교향악을 아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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