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온 판사’ 김재영 “박신혜, 동생이지만 엄청 선배같아요”[스경X인터뷰]
최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는 지옥에 있는 악마들이 인간세계에 개입할 수 있고, 심지어 천사들도 나와 이들과 대립하면서 극을 이끄는 독특한 세계관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악마와 천사의 힘자랑에만 몰두하면 현실성은 증발한다.
그런 의미로 배우 김재영이 연기한 한다온의 역할은 중요했다. 극 중에서 인간의 몸과 마음을 가진 몇 안 되는 캐릭터 중 한 명이었지만 결국 악마 출신 강빛나(박신혜)의 마음을 얻는다. 이는 이 드라마의 연출자가 리얼리티 작품에 강점을 보였던 박진표 감독이어서 더 중요했다. 그는 천사 ‘가브리엘’ 만큼이나 무거운 사명을 지고 작품에 뛰어들었다.
“분명히 어두운 면도 있었지만, 밝은 면도 있었어요. 사실 늘 그런 역할을 도맡다 보니 밝은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댕댕미(강아지 같은 매력)가 있다’ ‘뽀삐(강아지 이름) 같다’는 감상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더 기뻤던 것 같아요. 물론 시청률적으로도 만족했고요.”
한다온은 극 중 서울 노봉경찰서 강력 2팀 형사다. 살인사건으로 부모를 모두 잃는 비극 속에서도 그를 가엽게 여긴 형사 주형석(한상진), 김소영(김혜화)의 헌신으로 인간성을 유지한다. 늘 선함을 몸에 지닌 ‘강강약약’의 형사로, 지옥의 사명을 받고 와 천인공노할 범죄자를 처단하려고 일부러 재판에서 무죄로 풀어주는 강빛나 판사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다.
“감독님께서 웃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온도 차이가 크다고 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대본을 처음부터 6회까지 막힘 없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 전개가 빠르고, 현실의 사건을 다루면서도 ‘사이다’ 느낌이 나는 복수가 있었어요. 다온 캐릭터가 유일한 사람이고 많은 분들이 봤을 때 감정적 매개가 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형사라 당연히 따라오는 액션장면, 악마와 대립해야 하는 특이한 상황 등 도전과제는 많았지만, 그때마다 동생이지만 연기경력으로는 든든한 선배 박신혜의 존재가 있었다. 특히 박신혜는 늘 꿋꿋하고 선한 ‘캔디형’ 캐릭터를 거듭해 오다 이번에 악마의 존재를 연기하며 매 순간 얼굴을 갈아 끼우는 듯한 열연으로 드라마의 화제성을 이끌었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잖아요.(웃음) 주눅 드는 면도 있었지만, 먼저 ‘오빠 오빠’하면서 다가와 줬어요. 정말 (박)신혜는 체력적으로 강해요. 잠을 안 자도 변하지 않고, 액션장면을 3일 찍어도 변화가 없습니다. 그런 에너지를 배웠어요. 제게는 동생이지만 엄청 선배였잖아요. 절로 의지가 됐습니다.”
박신혜가 현장의 분위기를 주도적으로 만들면서 강빛나의 악마성과 중간부터 피어나는 인간성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사이, 박진표 감독은 인간미가 있는 구성 중심을 잡았다. 힘든 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위해 수시로 식사 자리를 만들어 단합을 유도했고, 영화 작업에서의 특징인 현장에서의 관계성에 공을 많이 들였다.
“(박)신혜에게는 전체를 보는 그런 눈이 있었어요. 분위기를 잘 이끌었던 것 같아요. 다들 사람이니 촬영하면 당연히 힘들잖아요. 그러면 옆에서 잘 챙겨줘요. 먹을 것도 주고, 과일도 깎아주고요. 저도 옆에서 보면서 ‘한류스타인데도 나이도 어린데도 이럴 수 있구나’ 생각하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그가 중반 ‘주눅이 들었다’는 표현은 실제 그의 성격이기보다는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찾는 일종의 성장통 표현이다. 모델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해 2013년 영화 ‘노브레싱’ 과 드라마 ‘아이언맨’을 통해 이름을 알린 그는 2018년 tvN ‘백일의 낭군님’ 무연 역과 이듬해 KBS2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 구준휘 역으로 배우로서 입지를 넓혔다.
하지만 배우들이 다 그렇듯 한 작품이 끝나면 원치 않는 ‘고용불안’을 겪어야 하는 프리랜서로서의 위치는 그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됐다. 실제 그는 모델을 하기 전에도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장 근로자에 백화점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어 더욱 그렇다. 배우라는 영역 밖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또래들의 모습에 그는 한동안 걱정일 때도 있었다.
“‘너를 닮은 사람’에 나온 이후 쉰 적이 있었어요. 다들 저를 보고 잘 됐다고 하지만 스스로는 ‘얼마나 잘 된 거지’하는 의문과 고민이 있더라고요. 일할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또 새로 해야 할 때는 생각이 많습니다.”
물론 배우 말고도 예능 등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좀 더 연기를 잘하고 싶다. 예능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오히려 부담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절친인 모델 출신 방송인 주우재의 조언대로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일만 하기로’ 했다. 제대로 된 로맨틱 코미디를 안 해봐 욕심이 나고, 평범한 직업군을 표현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있다.
“상이요? 신혜가 받으면 좋겠어요. 시청률이 10%가 넘었다는 결과에 행복하고요. 항상 제가 나오면 잘된 작품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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