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포 사라져 공포가 시장 지배···정부, 불안 완화 시그널 줘야"
韓, 대미 수출 의존 8년간 높아져
대외변수 취약해 악재마다 휘청
이달 지수 하락분 3분의1이 삼전 몫
제조업·자본시장 체질개선 시급
내년초까지 보수적 접근 바람직
“매수세가 완전히 실종됐습니다. 누가 조금만 팔아도 모두가 따라서 투매하는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영업부 이사가 13일 국내 증시의 급락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반도체 위기론, 원·달러 환율 급등 등 알려진 악재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사는 “대외 변수로 불안·공포 심리가 커져 투자자들이 무력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이참에 경제 체질을 강화해 투자 매력도를 높여야 하겠지만 (대응 방안으로 단기) 묘책이 잘 보이지 않아 (분위기 반전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짚었다.
13일 서울경제신문이 증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긴급 진단을 의뢰한 결과 전문가들은 이날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취약점이 금융 시장 충격으로 여실히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수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그마저도 반도체 등 일부 특정 업종에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무역 의존도는 일본과 중국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높기 때문에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특히 8년 전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아진 속도로 보면 베트남에 이어 한국이 2위”라고 짚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달 들어 코스피는 5% 하락했지만 시가총액의 12.1%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는 14.2% 하락했다”면서 “지수 하락분의 3분의 1 정도는 삼성전자 한 종목의 몫”이라고 지목했다.
단기적으로는 시장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면서 중장기적으로 경제 기초 체력을 바꿀 수 있는 체질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환율 급등 등 며칠째 같은 악재에도 국내 증시 매도세가 확대되는 것은 실망을 넘어 공포로 주식을 파는 ‘패닉 셀링(공황 매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이럴 때일수록 외환시장 등에서 투자자들의 심리를 한순간에 전환시킬 만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운용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들은 한국 시장에서 주포나 다름없는데 환율 불안 등으로 빠지다 보니 개인과 기관들도 발을 빼는 상황”이라며 “매수 세력은 없고 매도 세력만 있다 보니 수급이 완전히 꼬여 환율부터 잡지 않는 이상 당분간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다만 정부는 시장 변동성이 높아졌다고 보면서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시장 가격에 개입하는 것이 부담일 뿐만 아니라 지난해 말부터 대거 유입된 외국인 매수세가 매도 전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도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시장 변동성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는 만큼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필요시 적시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 태세를 유지해주기 바란다”며 원론적 발언만 내놓았다.
이번 위기를 발판 삼아 한국 증시와 경제 기초 체력의 체질 개선에 나서야 된다는 조언도 나왔다. 대외적인 요인에 계속해서 휘둘린다면 내부적으로 바꿀 수 있는 요인부터 점검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최근 일부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이나 올빼미 공시 등으로 개인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만큼 이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성도 커졌다. 외국인투자가들도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 훼손이 우려되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적극적인 세제 지원 등도 고려할 필요성도 나왔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외국인투자가들이 삼성전자의 경쟁력 훼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중국 반도체 기업의 약진으로 향후 한국 반도체 산업의 독점적 지위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널리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자조 섞인 반응마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 취임하는 내년까지는 주식시장에 대한 보수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잇따르고 있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분산 투자와 방어주 중심의 전략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때”라며 “다만 반등을 위해서는 이익 전망치 하향 조정 추세가 일단락되고 미국 정치 등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해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트럼프 수혜주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계획) 관련주 중심의 수동적 대응 정도만 추천한다”고 보수적 대응을 조언했다.
강동헌 기자 kaaangs10@sedaily.com송이라 기자 elalala@sedaily.com박정현 기자 kat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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