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2008년 '키코 악몽'에 … 환헤지 꺼렸다가 멘붕

서정원 기자(jungwon.seo@mk.co.kr), 정지성 기자(jsjs19@mk.co.kr) 2024. 11. 1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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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환차손이 1억원에 육박했습니다. 원화값 1300원을 기준으로 15억원어치 수입 계약을 사전에 맺었는데 지금 환율이 미쳤네요.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은데 말이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서 원화값이 가파르게 떨어져 걱정이 큽니다."

2000년대 초중반 은행은 안전한 환헤지 수단이라며 KIKO(Knock-In Knock-Out)라는 금융상품을 중소기업에 팔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원화값이 급락하며 723개 중소기업이 3조3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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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값 하락에 환차손 급증
금융위기 때 3조 손실 여파
기업 절반 환리스크 손놓아
수입업체 1억 손실 떠안기도

◆ 재계 비상경영 ◆

"지난 4월 환차손이 1억원에 육박했습니다. 원화값 1300원을 기준으로 15억원어치 수입 계약을 사전에 맺었는데 지금 환율이 미쳤네요.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은데 말이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서 원화값이 가파르게 떨어져 걱정이 큽니다."

중국에서 속옷과 잠옷을 들여와 국내 대형마트와 홈쇼핑에 납품하는 수입 업체 전방글로벌의 박진우 대표는 13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이같이 토로했다. 박 대표는 "농산물과 달리 공산품은 수입물가가 오른다고 바로 소비자 가격에 반영할 수 없다"며 "환차손은 고스란히 수입 업체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재선 여파로 원화값이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중소기업 사이에서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상 수입 기업은 물건을 들여오기 수 개월 전에 계약을 맺는데, 그 사이 원화값이 수십 원씩 떨어지면 수입 가격이 그만큼 상승하기 때문이다. 환헤지에 손을 놓고 있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라 원화값 변동은 고스란히 환차손으로 이어진다. 원화값이 떨어지면 이익을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수출 기업도 최근 몇 년 새 급격한 원자재값 상승으로 환율 이익이 상쇄돼 울상이다.

환리스크를 막기 위해서는 환헤지가 필수적이지만 중소기업은 대부분 소극적이다. 2008년 중소기업계를 휘청하게 만들었던 키코(KIKO) 사태 트라우마 때문이다. 2000년대 초중반 은행은 안전한 환헤지 수단이라며 KIKO(Knock-In Knock-Out)라는 금융상품을 중소기업에 팔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원화값이 급락하며 723개 중소기업이 3조3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박 대표는 "환헤지를 하려고 해도 중소기업은 KIKO 사태를 떠올리며 꺼리고 있다"며 "자체적으로는 관리할 능력도 관리할 인력도 없어 사실상 운에 맡겨 놓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회원사 30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절반에 육박하는 49.3%가 환리스크를 전혀 관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영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제조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에서 환차손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최대 25%에 달한다"며 "매출 규모가 작을수록 환율 상승 시 환차손이 더욱 민감하게 상승하는데 소규모 기업은 환율 예측이나 환헤지 측면에서 더 취약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료 수입 후 완제품을 수출하는 업체는 환율 부담을 덜기 위해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화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는 '내추럴 헤징'으로 강달러 영향을 피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원료 수입 시 달러로 지불하지만 제품 판매 시 받은 달러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다가 지출한다"고 설명했다.

[서정원 기자 /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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