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매각·희망퇴직·급여 반납 … 바짝 움츠린 기업들
트럼프發 대미 수출 먹구름
실적 악화 전망에 구조조정
SK, 연내 계열사 10% 감축
LG화학은 헝가리 합작법인
추가지분 취득 내년으로 미뤄
KT 희망퇴직엔 2800명 신청
돈 벌어 이자도 못갚는 기업
코로나 이후 최대 '악화일로'
LG전자가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가전박람회 'CES 2025' 출장 인원을 예년보다 20~30% 줄이기로 했다. LG전자는 올해 초 시작한 확장현실(XR) 사업을 잠정 보류하는 식으로 사업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전자는 비상경영 기조를 내년까지 이어가는 분위기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대표는 13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만나 조기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비롯한 리밸런싱(구조조정)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일 SK E&S와 합병을 완료했고,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온은 이날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흡수합병했다.
SK그룹은 실적이 악화된 SK이노베이션과 SK에코플랜트를 중심으로 조직 슬림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임원 20% 감축에 이어 팀장급 자리까지 축소하는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SK텔레콤과 SK온은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계열사별로 비주력 사업 매각과 운영효율화 방안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SK는 지난해 말 219개였던 계열사를 연말까지 10% 이상 줄이며, 사별 임원 규모도 20% 이상 감축한다는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은 SK E&S 합병과 자회사 CEO 교체에 따른 조직개편, 임원인사 등 현안이 많다"며 "여기에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영진의 고심이 깊다"고 전했다.
재계가 이처럼 대대적인 비상 경영에 돌입한 것은 실적부진과 불확실성 때문이다. 올해 3분기 물류비 상승에 따른 실적부진이 4분기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대미 수출 불확실성까지 커졌다. 기업별로 임원 승진 최소화와 임금 반납, 조직 슬림화, 경비 절감, 희망퇴직이 줄지어 확산되고 있다. 내년 경기 전망도 어둡다. 내년에 편성할 일반 예산까지 올해보다 대폭 삭감하는 분위기다.
LG화학은 도레이와 설립한 헝가리 분리막 합작법인(JV) 지분 20% 추가 취득 시점을 오는 12월에서 내년 6월로 연기했다. 투자도 축소하고 있다. 올해 설비투자(CAPEX) 예정 금액은 연초 약 4조원에서 최근 2조원 중반으로 줄였다. 올해 3분기까지 설비투자는 1조3950억원 규모다. 나프타분해시설 매각 검토를 비롯해 사업가치 제고를 위한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LG화학은 수익성이 담보되는 사업을 중심으로 자본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LG화학은 또한 올해 임원 연봉을 동결했는데, 4월엔 근속 5년 이상 첨단소재사업본부 생산기술직 직원 대상 희망 퇴직 신청을 받았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7일부터 사무직 희망퇴직에 돌입했다.
현대차그룹 계열 현대트랜시스는 여수동 대표이사를 포함한 전 임원이 급여 20%를 반납하기로 했다. 최근 한 달간 이어진 파업 영향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기조는 내년 예산을 최대한 긴축해 유동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라며 "사업부별로 긴축경영 방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실적 악화로 인해 밸류업 정책 시행까지 연기했다. 그 대신에 수익성 확보를 통한 내실 다지기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제철은 가동률이 낮은 포항 2공장을 셧다운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유입과 전방산업인 건설 경기 침체에 따른 결정으로,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생산을 잠정 중단할 방침이다. 문을 닫기로 한 포항공장 설비는 제강과 압연 생산시설로, 해당 공장에 근무하던 직원들은 회사와 협의를 거쳐 다른 라인으로 전환 배치될 전망이다.
7월 비상경영에 돌입한 롯데케미칼 임원들은 11월부터 급여 10∼30%를 자진 반납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3분기 연결기준 413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롯데지주 임원도 이달부터 급여 20∼30%를 반납하기로 했다. 롯데온과 롯데면세점 등은 희망퇴직을 실시 중이다. KT는 지난 8일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대상은 퇴직 신청자 2800여 명이다.
실제로 13일 한경협이 조사한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 제조업체 경영성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국내 내수기업 620곳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했다. 2020년 이후 첫 마이너스 성장이다. 수출이 전체 매출에서 50%가 넘는 수출기업은 같은 기간 매출이 13.6% 상승했다. 전년도 매출액 감소(-7.3%)에 따른 기저효과가 작용한 것이라는 게 한경협 분석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도 못하는 '취약기업' 숫자도 2020년 코로나19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투자도 줄고 있다. 한경협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업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8.3% 감소했다. 2020년 이후 첫 감소다.
[정승환 기자 / 추동훈 기자 /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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