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앞둔 이상률 항우연 원장 "시원섭섭함보다 안타까움…우주청, 큰 그림 그렸으면"

이채린 기자 2024. 11. 1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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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항우연에서 동아사이언스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상률 항우연 원장. 항우연 제공

"최근 누군가 묻더군요. 곧 임기가 끝나는데 시원한지, 아니면 섭섭한지 궁금하다면서요. 저는 오히려 안타깝다는 마음이 더 크다고 답했습니다. 항우연이 크고 작은 갈등에서 벗어나 모든 직원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꿈꿀 수 있는 기관이 되길 바랍니다." 

3년 8개월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을 이끌고 조만간 원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이상률 항우연 원장을 11일 만났다. 퇴임을 앞둔 현재 어떤 마음이냐는 첫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발사 성공, 한국 첫 달 궤도선 '다누리'의 달 궤도 안착 등 장기간에 걸친 노력의 성과가 이 원장 재임 시절 이뤄졌는데도 그가 언급한 '안타깝다'는 네 글자에는 여러 사안과 복잡한 심경이 얽혀 있었다.

이 원장이 항우연을 이끌었던 시기 항우연은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누리호, 다누리의 성공으로 국민들의 응원과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동시에 발사체 관련 조직 개편 갈등을 시작으로 성과급, 연구수당 관련 논란, 내부 직원의 기술 유출 등 항우연을 둘러싼 내홍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노사갈등', '노노갈등'에 이어 최근에는 누리호의 뒤를 잇는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을 두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와 지식재산권 논란까지 불거졌다.

여전히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는 이같은 사안을 두고 이 원장은 '안타깝다'고 했다. 이 원장이 안타깝다고 느끼는 사안 하나하나가 우주항공청 시대 초대 항우연 원장의 과제다. 취임한 기관장이 아닌 퇴임을 앞둔 기관장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이유이기도 하다. 

● "노조나 단체협약에 대해 임기 초기 잘 몰랐던 점 아쉬워"

이 원장은 먼저 항우연 내부 갈등에 대해 "우리 항우연 직원과는 어떤 대화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면서 "다만 항우연 단체협약에 따라 노조와 협의가 아닌 '합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정해져 있는 부분을 원활하게 해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전적으로 협의는 '서로 협력해 노력한다'는 의미지만 합의는 '서로 의견을 일치시킨다'는 뜻이다. 노조와 같은 의견을 내지 못하면 원장의 판단과 재량만으로 어떠한 것도 결정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항우연은 여러 종류의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올해 항우연과 연구직 노조가 행정직에 지급되던 연구개발능률성과급 삭감을 논의하면서 불거졌던 갈등, 2021년 발사체연구소를 새로 설립하는 과정에서 조직 개편으로 일어난 갈등, 달탐사 사업에 참여한 연구원들이 연구수당을 못 받았다며 항우연에 제기한 소송 등이 대표적이다.   

이 원장은 "노동조합법, 단체협약 등 노사 간 이뤄질 수 있는 활동에 대한 지식이 더 많았다면 여러 내부 문제를 지금보다는 더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후회하기도 했다"면서 "원장직을 맡으며 배웠던 제도, 규칙 등 모든 부분을 차기 원장에게 제대로 인수인계하고 떠나겠다"라고 말했다.

● "차세대발사체 지재권, 관련 법이 바뀌어야…계획 변경시 한화와 계약에 변화 생길 수도"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에어로)의 차세대발사체 지식재산권 갈등에 대해선 이 원장은 "매우 단순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잘라 말했다. 이 원장은 "한화에어로의 주장은 연구기관이 정부 돈을 받아 기업체에 물품을 제작하는 용역을 맡겼는데 그 기업체가 물품의 지식재산권을 공동소유하자고 나서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항우연은 연구개발혁신법에 따라 한화에어로와 지식재산권을 공동소유할 수 없다고 본다. 연구개발혁신법 제16조에 근거하면 이번 계약을 통해 새롭게 발생하는 모든 지식재산권은 주관연구개발기관인 항우연 소유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법이 바뀌지 않는 한 공동소유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원장은 "현재 한국 우주 산업은 다양한 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이윤을 낼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단일 기업이 기술을 독점하는 일이 일어나면 생태계가 엉망이 될 수 있다"면서 한화에어로가 지재권을 공동 소유해 타 기업에 대한 기술 이전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수 가능성을 우려했다.

항우연은 현재 시스템처럼 다른 기업에 기술 이전이 가능하도록 항우연 단독으로 지재권을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어 "기술에 대한 권리를 갖고 싶으면 항우연에 기술이전료를 받고 정당하게 가져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상률 항우연 원장. 항우연 제공

지난달 열린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계약 전 지재권 협상 과정에서 항우연이 불리한 조건을 내걸었을 때 계약을 포기하면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포기하면) 국가가 하는 사업에 최대 2년간 참여하지 못하는 등의 제재를 받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조달청과 진행한 수의계약이기 때문에 한화에어로는 이같은 제재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말했다.  

이 원장은 "한화가 우주 산업에 뛰어들었을 때 파트너로서 굉장히 든든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앞으로도 한화와 함께 해나가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관련 법이 바뀌거나 원만한 합의를 하는 등 빨리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차세대발사체 개발 계획은 올해 말 열리는 체계 설계 검토회의(System Design Review·SDR)에서 최종 확정된다. 최근 우주항공업계에 따르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설계 계획이 대폭 바뀔 가능성이 크다.

이 원장은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발사체를 만들겠다', '값싼 재사용 발사체를 만들겠다'처럼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이 수정되길 바란다"면서 "투자 비용의 경우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비용,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돈, 재제작 비용 등 구체적인 부분까지 계산돼야 한다"고 했다. 또 차세대발사체 개발 계획이 대거 변경된다면 예비타당성조사 설계 계획을 기반으로 꾸려진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와의 계약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언급했다. 

● "우주청, 연구개발은 연구기관에 맡기고 큰 그림 그렸으면"

이 원장은 우주청이 국내 우주산업을 키우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라고 내세우는 것에 대해 적극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 원장이 생각하는 우주산업 생태계는 선순환 구조다. 그는 "기업이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면 이 제품을 가지고 이윤을 창출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파는 선순환 고리가 이어져야 산업이라 부를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항우연이 산업체에 용역을 맡기면서 정부 예산을 나눠줬기 때문에 산업 생태계로 보기 어렵다"며 "상장한 우주 기업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 이같은 우주산업 생태계가 구축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여러 대기업이 들어와 우주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다만 우주청이 넓은 시각에서 우주청의 방향을 그리면 좋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개진했다. 산하에 10여 개 연구기관을 두고 있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처럼 구체적인 연구개발은 각 연구기관에 맡기고 중심에서 R&D의 방향성을 정하고 연구기관 업무를 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발사체 개발의 경우 우주청에서 '100톤(t) 추력을 내는 발사체를 개발해라'라는 큰 그림을 그려주면 이를 위해 어떤 연료를 쓸지, 어떤 형태의 엔진을 만들지 같은 세부 내용은 연구기관이 결정해 개발하면 된다는 것이다. 연구기관과 우주청이 같은 일을 중복해서 할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발사체 R&D 방향은 가급적 빨리 정리돼야 한다는 게 이 원장의 생각이다. 스페이스X를 비롯한 다른 우주 기업의 발사체 기술은 계속 고도화되기 때문에 자칫 늦게 개발을 시작했다가 기술 수준이 한참 뒤처질 수 있어서다. 이 원장은 "완전 재사용 발사체, 국내 발사 수요만 충족하는 발사체 혹은 해외 위성 발사 수요를 30% 차지하는 발사체 등 구체적이면서도 큰 방향이 빠르게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1988년 300kg 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는 고체연료 발사체만 개발한 뒤 더 이상 발사체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았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해외시장을 포기하고 자국 발사 수요만 충족하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원장은 한국도 이스라엘과 같은 선택과 집중을 우주 분야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차기 원장, 새롭게 도약하는 '뉴 항우연' 초석 다지기를"

항우연의 당면 현안은 내년으로 예정된 누리호 4차 발사다. 준비 상황에 대해 이 원장은 "현재로서 내년 말로 예정한 4차 발사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물론 체계종합기업인 한화가 참여하는 새로운 사업 구도로 진행되고 있어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며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으며 이번 사업을 통해 누리호의 신뢰성을 높이고 기술을 이전받게 되는 기업이 누리호의 중량 저감과 성능 개량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으로 항우연의 역할에 대해 이 원장은 "R&D에서 항우연보다 다른 산업체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은 과감히 산업체로 넘길 것"이라면서 "항우연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항공우주 분야의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데 힘쓰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높아지는 항우연 이직률에 대해 이 원장은 "저연차 직원들의 처우가 타 연구원에 비해 많이 낮아서 이직이 잦아지고 있다"면서 "항우연이 우주항공청 산하로 이관됐기 때문에 우주항공 분야의 전략적 중요성과 전문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의 필요성을 강조해 출연연 상위 수준으로 개선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차기 항우연 원장이 항우연 조직 문화 개선을 통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뉴스페이스 시대에 국내 우주산업에도 기여할 수 있는 2단계로 나아가게 만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1단계는 지난 35년 동안 끊임 없는 연구 개발로 누리호 등 중요한 기술을 완성한 것을 의미한다면 다음 버전의 항우연의 초석을 제시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직원들이 똘똘 뭉쳐 큰 틀에서 항우연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1986년부터 몸 담았던 항우연에서의 정년이 1년 남짓 남았습니다. 퇴직 후에도 항우연을 대한민국 우주항공 R&D을 이끄는 자랑스러운 기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리호 3차 발사 장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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