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2천조 아래로···외국인도, 개미도 ‘국장’을 믿지 않는다[뉴스분석]

김경민 기자 2024. 11. 1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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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며 ‘트럼프 트레이드를 겪고 있는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증시 지수가 표시되어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65.49p(2.64%) 하락한 2417.08, 코스닥 지수는 20.87p(2.94%) 내린 689.65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2.90원 오른 1406.40에 마감했다. 2024.11.13 한수빈 기자

국내 증시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증시 부양을 위해 정부가 추진한 밸류업 프로그램도, 여야정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도 ‘트럼프 트레이드’ 한 방에 기대 효과가 모두 날라가버렸다. 여기엔 일단 환율 상승과 외국인 이탈 등 수급 측면의 문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할 무역정책 변화에 한국 정부가 잘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국내 증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대장주 삼성전자의 기술 리더십 회복에 대한 불신, 주주권익 회복에 소극적인 정부·기업에 대한 실망감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모두 2% 넘게 급락하며 종가 기준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65.49포인트(2.64%) 내린 2417.08에 거래를 마쳤고, 코스닥은 20.87포인트(2.94%) 떨어진 689.65에 장을 마감했다. 코스피 시가총액(약 1998조원)은 지난 8월5일 ‘블랙먼데이’ 이후 처음으로 2000조원을 밑돌았다.

블랙먼데이가 일시적인 주가 급락의 영향이었다면 지금의 주가 수준은 추세적 하락의 결과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증시의 부진에는 반도체 업황 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 기조로 인한 수출 전망 악화, 고환율에 따른 수급 부담 등이 영향을 미쳤다. 보다 구조적으로는 ①정부와 삼성전자에 대한 신뢰 저하 ②부족한 주주권익 보호와 수익률 부진에 따른 외국인과 국내 투자자 이탈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도, 삼성전자도 못 믿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6일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의 팜비치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선거일 밤 행사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미 하반기 이후 수출이 고점을 찍고 감소할 것이란 전망과 국내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경쟁력 악화 우려에 국내 증시는 답답한 흐름을 보여왔다. 트럼프의 당선은 이러한 악재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관세 인상을 비롯한 보호무역 기조로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코스피는 약 7%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상대할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추가 악재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거론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관세 폭탄 등 트럼프 2기의 정책 요구에 잘 대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지만, 그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시에) 제일 크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주가 폭락 역시 반도체 업황 악화를 넘어 리더십 등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4.53% 급락한 5만600원에 거래를 마치며 4년5개월 만에 최저가로 떨어졌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삼성전자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응 전략을 시장에 제시하면서 투자자의 불안을 달래줘야 하는데 이런 모습이 전혀 안 보인다”며 “(삼성전자 경영진이) 침묵으로 일관할수록 시장 불안은 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수익률 격차·미흡한 주주권에 떠나는 투자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증시의 수급이 유지된다면 그나마 방어를 기대해볼 수 있지만 외국인과 개인투자자의 국내 증시에 대한 불신도 만만치 않다.

상장사들이 주주권익 보장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국내 증시에선 기업의 성과가 투자로 이어지고 주가가 상승해 다시 투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외국인과 개인투자자 모두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요구하는 상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특히 개미투자자의 부담 완화를 내세워 금투세 폐지에 앞장서는 정치권이 정작 기업 부담을 고려해 상법 개정에는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커지고 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밸류업은 용두사미가 됐고, 정부는 콘트롤타워가 없고, 여당에는 주주 입장에서 자본시장을 논하는 국회의원이 없다”며 “주주로써 보호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외국인은 한국 시장을 떠날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한국 증시 수익률 비교

벌어지는 수익률 격차도 투심을 악화시키고 있다. 연초 대비 미국 S&P500지수는 약 26% 올랐지만,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9%,20%하락했다. 개미투자자들 사이에선 “미국주식에서 (투자수익을 거둬) 세금을 낸다면 국장(국내 주식시장)에선 원금을 낸다”는 자조섞인 말까지 나온다. ‘국장회의론’에 개미투자자의 해외증시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지난 11일 기준으로 연초 대비 53.6% 증가한 1035억달러(약 145조원)까지 늘어났다.

문제는 이같은 불신이 자본시장을 넘어서 최악의 경우 경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강달러 압력이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자본시장의 약세가 계속되면 주가하락→투자자 이탈→환율 상승→기준금리 인하 지연→경기회복 지연→주가하락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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