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크톤’ 오정세 “연적에게도 '따뜻한 남자'…‘처음’이 생각나게 해”[인터뷰]
남들보다 늦게 첫발 내딛는 이들에 응원을
김해숙처럼 늘 즐겁게 작품 활동할 것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사람 체온이 참 신기해. 대충 미적지근하니 다 거기서 거기일 것 같은데 막상 닿으면 다 달라. 첨 봤을 때부터 알아봤어.”
결혼식 당일 신부를 납치한 남자 ‘해조’(우도환 분)가 신부를 빼앗긴 ‘어흥’(오정세 분)에게 고백하는 말이다. 남자가 남자에게, 그것도 연적(戀敵)에게 ‘넌 참 따뜻한 사람이야’란 말을 듣는 이 남자는 누굴까.
넷플릭스 시리즈 ‘Mr.플랑크톤’에서 풍영어씨 충해공파 18대 종손이자 유서 깊은 종갓집 5대 독자 한의사 ‘어흥’으로 분한 배우 오정세를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쉽게 이해 가지 않는 이 브로맨스에 대해 ‘플랑크톤’의 로드무비(Roadmovie)적 특성에서 일부 기인한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1년 동안 간간히 시내에서 만나 커피 한잔하고 영화 보면서 이어가는 만남보다, 타지에서 우연히 만난 누군가와 2박의 여행을 하면 그게 더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요. 그 사람과 되게 가까워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흥과 해조가 극 후반부에 이틀간 함께 차로 동행하는데 아마 이때 서로를 많이 이해하게 되고 마음을 열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흥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여자를 뺏어간 남자와 달달한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오정세는 “짝사랑에 결국 실패한 제 지인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세상에 그런 마음도 있더라. 결국 내 사람이 못되더라도 그저 이 사람이 ‘같은 하늘 아래에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한다”고 전했다. 정말 사랑한다면 나를 떠난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은 남자를 응원할 수도 있다고.
‘플랑크톤’을 쓴 조용 작가는 오정세가 ‘문상태’ 역으로 열연을 펼친 ‘싸이코지만 괜찮아’의 작가이기도 하다. 오정세는 “조 작가님의 다음 작품은 어떤 형태가 되었든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어흥이라는 인물을 손 내밀어 주셔서 즐겁게 했다”며 애정과 신뢰를 드러냈다.
흥은 상태의 순수함과 약간의 어수룩함을 물려받은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어머니 범호자 여사(김해숙 분)는 성인이 된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고 한다. 원치 않는 맞선에 끌려나가기도 수십 번. 어머니를 닮은 맞선녀들 앞에서 흥은 설렘은 커녕 불안을 느낀다. 그러다 연못가에 앉은 ‘재미씨’를 우연히 마주한 날, 빵! ‘처음 사랑’에 빠지고야 만다.
오정세는 “흥에게 재미씨는 ‘처음 사랑’이다. 흔히 하는 말인 ‘첫사랑’과는 다르니 꼭 구분해서 써달라”고 강조했다.
재미씨는 수많은 맞선녀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의도하지 않은 만남의 시작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미의 반응이 스파크를 튀게 만들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위로해줘야지!’하고 다가간 게 아니었어요. 그냥 손수건을 건넸을 뿐인데, 재미씨가 ‘사실 울고 싶었다’면서 눈물을 쏟아내면서 시원해 해요. 사탕을 주니까 엄청 좋아하길래 ‘더 드릴까’ 했더니 단박에 ‘필요 없다’고 하죠. 흥에겐 나로 인해서 누군가가 기뻐하고 슬퍼하고 위로 받는 경험이 처음이었을 거예요. 그렇게 차츰 감정이 쌓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떠한 조건도 없는 사랑을 약속하는 순정남 흥은 띠동갑 재미에게 내내 존대말을 한다. 인터뷰 중에도 내내 극중에서 그랬던 것처럼 “재미씨”가 불려졌다. ‘유미씨’나 ‘이유미 배우’, 또는 ‘재미’라고는 한 번 부르지 않았다. 그는 “‘재미씨’랑 만났던 정서, 시간이 길고 진해서 자연스럽게 지금도 ‘재미씨’가 편하게 나오게 되는 거 같다”고 했다.
흥은 40에 가까운 나이에 사랑을 비롯해 처음으로 어머니의 뜻과 반대로 시작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 인물이다.
“흥이란 인물을 제안받고 나서, 제 머릿속에 제일 상단에 떠오른 단어는 ‘처음’이었어요. ‘처음 사랑’, ‘처음 가출’, ‘처음 이별’. 흥이 결말에서 산행 유튜버가 된 장면은 어흥이 비로소 홀로 시작하는 ‘처음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저도 20살 때까지는 제 자의에 의해서 살아오진 않았던 것 같아요. 왜 내가 살아야 하고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몰랐어요. 제 의지대로 내딛은 첫발은 대학교 전공(신문방송학)을 선택한 것이었어요.”
때문에 이번 작품은 특히 흥처럼 조금 늦게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최근 몇년 간 오정세가 출연한 드라마는 모두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그는 다작을 하면서도 매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분해 나타난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준다.
쉴새 없는 작품활동이 이제 좀 지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너 신나는 거 왜 이렇게 자꾸 해?라는 질문 같다”는 답을 내놓았다.
“생각해보면 하고 싶었던 열망이 있었는데 기회가 없었던, 굶주렸던 시절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작품이 계속 오니까, 매 작품이 저한테 항상 신나는 작업이었죠. ‘악귀’에 이어 두 번째로 가족으로 만난 김해숙 선배를 보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어요. 항상 모든 현장에 즐겁게 오시거든요. 나도 지금 잘 걸어가고 있는데 나중에도 (해숙 선배처럼) 현장을 즐겁게 왔다갔다 해야지 생각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건네준 편지와 제1146회차 로또 용지에는 이번 작품에 대해 배우 오정세가 이해한 바가 적혀있었다.
「세상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가장 하찮은 존재(플랑크톤)인줄 알았지만 당신은 세상을 지탱하는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소중한 존재로 말하는 이 작품이 참 가슴 따숩습니다. 앞이 안보이는 당신의 길 끝에도 아름다운 별하늘이 기다리고 있길 바랍니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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