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금(金)추 끝냈다”…본격 출하 해남배추의 ‘힘’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4. 11. 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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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대란의 ‘반전’…해남배추 출하하자 가격 하락세 급전환
‘시장 지배자’ 해남배추 출격…식탁·물가, 두 마리 토끼 잡나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전국 최대 배추 주산지 전남 해남 배추밭에서 가을 수확이 한창이다. 배추밭마다 분주한 일손과 수확한 김장배추를 전국으로 실어 나르는 화물차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12일 오후, 전남 해남군 산이면 구교리 한 배추밭. 여섯명의 남녀 외국인 노동자들이 500평 남짓의 배추밭에서 날이 넓적한 사각형 칼로 허리를 펼 새도 없이 초록 배추의 밑동을 잘라냈다. 한쪽에선 1톤 트럭에 베어진 배추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느라 바빴다.

12일 오후, 전남 해남군 산이면 구교리 한 배추밭. 7명의 남녀 외국인 노동자들이 500평 남짓의 배추밭에서 날이 넓적한 사각형 칼로 허리를 펼 새도 없이 초록 배추의 밑동을 잘라냈다. 한쪽에선 1톤 트럭에 베어진 배추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느라 바빴다. ⓒ시사저널 정성환 기자

'풍·흉년' 피해간 해남 배추밭…수확 '한창'

이날 수확한 배추 500통은 1톤 트럭에 실려 절임공장으로 보내졌다. 수확을 마친 배추밭에는 버려져 푸대접 받다가 요즘 '못난이 김치'로 인기를 끌고 있는 푸성귀들도 널려있었다. 

배추 농사를 20년째 짓고 있는 김동영(65·해남 산이면)씨는 "9월까지 이어진 폭염과 집중 호우에 걱정이 컸다"며 "하지만 점차 배추 속이 풍성해지는 결구가 시작되고 일교차가 커지면서 비교적 작황이 좋은 편이다"고 안도했다. 김 씨는 "배추 속이 단단해지고 단맛이 들어 다행"이라며 "예년과 비슷하게 5만 박스를 출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반면 배추절임공장을 운영하는 신신숙 씨(54·여 해남 문내면)는 "작년에는 한 박스에 7포기가 들어갔지만 올해는 배추가 작아 8~9포기가 들어간다"고 토로했다. 그나마22㎏  다행인 것은 태풍이 오지 않아 병충해 등이 예년보다 덜했다는 것이다. 현재 생육상태는 양호하다. 

해남은 전국 가을배추 재배량의 25%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최대 주산지이다. 월동배추로 불리는 겨울배추는 무려 56%를 차지한다. 사실상 과점 시장의 지배자다. 재배농가들은 연간 3500여만원씩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올해 해남 배추 재배면적은 가을배추는 2259ha로 소폭 감소했고, 재배 농가 수도 2567가구에서 1832가로 대폭 줄었다. 다만, 겨울배추 재배량은 1998ha로 소폭 늘어났다. 올해 해남 배추농사는 변덕스런 날씨에 덕분(?)에 풍년과 흉년의 중간 성적표를 받았다는 것이 농가의 지배적 견해다.

12일 오후, 속이 꽉 찬 가을배추(김장배추) 수확이 한창인 전남 해남군 산이면 구교리 한 배추밭 ⓒ시사저널 정성환

"센 놈이 왔다"…고랭지서 못잡은 배춧값 폭등 

올해 해남지역 배추농사는 지속되는 폭염과 갑작스러운 폭우로 어려움도 있었다. 올해 가을배추(김장배추)는 정식기(定植機)에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 여파로 배추 육모에 어려움을 겪으며 정식 시기가 다소 늦어졌다. 배추는 생육 적정온도가 10~20도 수준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가을철 집중호우로 피해가 발생했다.

배추는 시세가 매년 널뛰기하는 도박성 채소이기도 하다. 가격이 폭등해 '금(金)배추'라는 별명이 붙는 해가 있다. 반면에 가격이 인건비도 못 건질 정도로 폭락해 멀쩡한 배추밭을 트랙터로 갈아엎기까지 하는 해가 있다. 생산비와 부대비용, 정부수매가 조차도 못 건질 정도로 가격이 하락하면 차라리 배추밭을 갈아엎는 것이 더 손해가 적기 때문이다.

풍년에는 역설에 울고, 흉년에는 물가 상승 주범으로 몰리는 게 배추농가의 슬픈 현실이다. 일각에선 배추는 고춧가루와 더불어 한국의 밥상 물가에 중요한 채소로, 배춧값을 잡지 못하면 정권 지지율 폭락은 시간문제라는 말이 정설처럼 통한다. 

배추가격이 널뛰기를 하는 이유는 수요 제철이 가을에서 겨울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에 재배 가능한 강원과 충북지역 고랭지배추가 배춧값 안정화에 큰 역할을 하는데, 고랭지 배추의 작황이 좋지 않으면 그야말로 금추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올 9월 기준 기후변화로 인해 고랭지 배추 수확량이 줄었다. 김장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소비자들의 흉작을 우려와 수급 불균형이 겹쳐 배추값은 폭등했다. 한때 배추 1포기가 1만원을 넘나드는, 말 그대로 '금추' '채소 대란'이었다.  

그러던 차에 센 놈이 왔다. 가을배추 시장의 강자 해남배추다. 폭등하던 그 배춧값이 전국 최대 배추 주산지인 해남에서 본격적인 출하에 들어가며 김장용 배추 가격이 급속히 안정세로 접어들었다.구매자의 '금 배추' 고민도 끝났다. 배춧값은 더 안정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풍년도 흉년도 아닌 어정쩡한 작황과 함게 원치 않았던 굳은 날씨가 수확 시기를 강제 지연시키면서 배추 수급이 스스로 균형점을 찾아 간 셈이다.  

1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배추 한 포기의 소매가격은 11일 기준 3877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10일 가격(9132원)을 고려하면 한 달 만에 무려 57.5% 하락했다. 1년 전, 평년과 유사한 수준이 됐다. 심지어 대형마트 배추는 포기당 1000원대로 떨어졌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포기당 8700원이던 배추 가격이 한 달 만에 5분의 1 이하로 하락했다.

또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가 발표한 '11월 농업관측정보 엽근채소'에 따르면 배추 도매가는 지난달 상순 10㎏ 기준 2만4900원에서 지속해 하락해 하순에는 1만240원으로 절반 수준까지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한 달 만에 배추 값이 뚝 떨어진 것은 가을배추 물량이 대거 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9월 말까지 이어진 폭염과 집중 호우로 고랭지 여름 배추의 작황이 악화해 배추 가격은 포기당 1만원에 근접할 정도로 급상승했다. 

그러다 이달부터 해남 등에서 가을배추가 나오자 가격이 안정세로 접어들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정부가 2만4000톤의 배추 계약 재배 물량을 시장에 공급하고 농촌할인 지원금을 뿌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해남군과 정치권의 정부에 대한 중국산 배추 수입 중단 요구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명현관 해남군수와 지역구 박지원 국회의원은 최근 해남을 찾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장관에게 수입 중단을 간곡히 요청해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 냈다. 일시적인 공급량 부족으로 배추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수입산 배추를 들여오면 수확기 가격폭락으로 이어져 농민들의 피해가 불보듯 예상된다면서다. 

해남군은 배추 작황 관리에도 행정력을 집중했다. 매몰된 20% 모종에 대한 보식작업과 재배 전 면적에 대한 방제 및 영양제 공급, 생육 상황을 점검하는 등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배추밭에서 농민들과 함께 사투를 벌였다. 

명현관(오른쪽 두번째) 해남군수가 10월 24일 마산면 배추 재배 농가 현장을 찾아 생육 상태 등을 점검하고 있다. ⓒ해남군

속이 꽉찬 해남배추로…"11월 22일 이후 김장하세요"

군은 해남배추가 본격 출하되면서 김장배추 수급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여 김장 물가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일교차가 커지면서 배추 특유의 단맛이 강해지고, 속이 꽉 차면서 단단해지는 만큼 일반 가정의 경우 11월 20일 이후 김장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김장 시기를 일주일만 늦추기만 해도 평년 가격으로 김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해남 문내면에 위치한 절임공장 텃밭영농조합을 찾은 명현관 해남군수는 "해남배추가 막 출하됐기 때문에 김장 시기를 조금 늦추면 김장대란은 없을 것"이라며 "해남배추가 본격적으로 수확되는 11월 20일 이후 편안하게 김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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