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총회 의장국 수장이 “석유·가스는 신의 선물”
3년간 산유국서 총회…화석연료 퇴출 지연 우려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3년 연속 산유국인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리고 있는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시작부터 ‘화석연료 옹호’ 논란이 일고 있다. 글로벌 탄소 감축 합의를 모색해야 할 의장국 대통령이 “석유와 가스는 신의 선물”이라고 발언해, 기후총회가 화석연료를 옹호하는 무대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더 거세질 조짐이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각) 자국 수도 바쿠에서 열리고 있는 기후총회에서 의장국 대통령 자격으로 기조연설 무대에 올라 “석유·가스·풍력·태양·금·은·구리 등은 모두 천연자원으로, 국가가 이를 소유하고 시장에 공급하는 것에 대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석유와 가스는 신의 선물”이라고 강조까지 했다.
그의 발언은 기후총회 의장국인데도 화석연료 증산 계획을 내놓는 등 아제르바이잔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 ‘서구의 이중잣대’, 곧 “서구 가짜 미디어” 등의 “모략과 협박”이라고 반발하며 나왔다. 그는 “총회 의장국 대통령으로서 계속 추진해오던 ‘녹색 에너지 전환’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도 덧붙였는데,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한 산유국들은 화석연료 생태계를 감축 없이 그대로 유지하면서 탄소 포집 등 ‘기후공학’적인 방법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을 친환경적인 에너지 전환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아제르바이잔은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77.7%가 석유 품목일 정도로 화석연료 경제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수도 바쿠의 랜드마크는 화석연료의 타오름을 상징하는 ‘불꽃 타워’고, 주요 관광 상품 역시 석유가 가득 담긴 욕조에서 목욕하는 ‘석유 목욕’이다. 이 나라 석유 생산량은 전세계 23위(2016년 기준)인데, 기후총회 의장국이 된 뒤로도 2033년까지 30% 늘린다는 계획을 내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화석연료의 제한 또는 중단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를 주재할 의장국이 된 것이다.
영국 비비시(BBC) 등 외신들은 아제르바이잔이 의장국으로 선정된 배경을 두고 러시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총회는 동유럽, 아메리카, 서유럽,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순으로 열리는데, 직전 총회가 아시아권인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만큼 29차 총회는 동유럽에서 개최되는 순서였다. 불가리아와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등이 개최 의사를 밝힌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던 러시아가 유럽연합(EU) 소속 국가 개최에 반대하면서 후보국이 좁혀졌다. 그러자 옛 소련 붕괴 뒤 30년 넘게 아르메니아와 영토 분쟁 중이던 아제르바이잔이 개최지 선정 전 양국 간 전쟁 포로를 교환하는 합의를 이뤄냈다. 개최지로 선정되기 위해선 해당 지역 내 모든 국가 동의가 필요하다는 규약을 잘 활용해 의장국이 된 것이다.
기후단체들은 3년 연속 산유국에서의 총회 개최가 전 세계 화석연료 퇴출 합의를 뒤로 늦출 것이라고 우려한다. 직전 아랍에미리트 총회에서도 산유국들의 반발로 최종 합의문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이라는 문구 대신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전환’(Transitioning away)이라는 반쪽짜리 표현이 담겼다. 지구온난화로 국토가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군소도서국가연합은 해당 합의문을 ‘사망진단서’라고 비판했다. 직전 총회에 2천명이 넘는 석유 산업 로비스트가 파견돼 곳곳에선 ‘화석연료를 지속가능하게 사용하자’는 홍보전이 펼쳐지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알리예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 기후환경단체 ‘오일체인지인터내셔널’은 “화석연료의 지속적인 생산과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기후 회의를 이용하는 건 기후변화 최전선에 있는 국가에 매우 무례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스웨덴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아제르바이잔의 이웃 나라 조지아에서 “권위주의적 석유 생산국에서 기후총회를 개최하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라 비판하며 반대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이번 총회의 ‘녹색 세탁’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계속될 전망이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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