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동장은 HIV감염인의 장애 등록 신청 반려할 권한 없어”

에이치아이브이(HIV)장애인정을위한전국연대가 13일 오후 대구지법 앞에서 등록 반려 처분 취소 소송 선고 결과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법원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의 장애 등록을 거부한 행정청의 처분을 무효라고 판단했다. 다만, 에이치아이브이 감염인의 장애 등록 가능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대구지법 행정1단독 배관진 판사는 13일 에이치아이브이 감염인 여운(72)씨에 대한 장애인 등록 반려 처분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배 판사는 여씨가 대구 남구청장과 남구 대명6동장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 등록 반려 처분 취소 소송에서 대구 남구청장에 대한 소는 각하하고, 남구 대명6동장에 대한 소만 인용했다. 장애인등록법 상 장애인 등록 신청을 반려할 권한이 없는 동장이 처분해 이를 무효한다는 의미다. 반려 처분 권한은 구청장에 있다.

앞서 여씨는 지난해 10월 대구시 남구 대명6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장애인 등록 신청을 했지만, 장애진단심사용 진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등록을 거부당하자, 지난 1월 소송을 냈다.

이번 소송은 에이치아이브이 감염인도 장애 등록을 인정해야 한다는 국내 첫 행정소송으로, 장애인복지법이 규정한 장애 유형을 확대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재판에서 장애 등록 가능 여부는 다뤄지지 않았다. 여씨의 법률 대리인 조인영 변호사는 “이번 재판에서 에이치아이브이 감염인도 장애 등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체적 판단을 다투지 않고, 반려 처분 주체가 누구인지만 다뤄졌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안내받은 절차에 따라 장애 신청을 한 것인데, 행정청의 무심함과 무책임으로 당사자는 재판이 진행되는 지난 7개월 동안 시간만 흘려보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재판이 끝난 뒤 대구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운씨는 “시간을 많이 들여 이번 소송을 해왔는데, 이런 결과를 받게 돼 아쉽다”면서도 “장애인으로 인정받으면 좀 더 편견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해서 시작한 소송이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으로도 파도를 일으키듯이 끝까지 소송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시 대구 남구청에 장애 등록 신청을 하고, 이후 결과에 따라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에이치아이브이장애인정을위한전국연대는 “이번 소송은 사회의 굳건한 차별에 균열을 내는 첫 시도였다. 에이치아이브이 감염인을 비롯한 등록되지 못한 배제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속해서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에이치아이브이 감염인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규정된 장애 유형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증도 등을 개별 심의해 판단할 수 있도록 한 예외적 장애 인정 심사 제도가 있지만, 이 제도의 시행규칙에도 에이치아이브이 감염인은 없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